변화와 계획 사이: MBTI로 보는 유연성의 기술

MBTI에서 J와 P 성향의 차이는 주로 계획을 선호하는 정도로 설명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계획이 변경될 때의 반응 방식이다. J 성향은 정해진 계획이 틀어질 때 스트레스를 받기 쉽고, 돌발 상황이나 예기치 않은 변화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때가 많다. 반면 P 성향은 변화나 불확실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두 성향은 서로 상반되면서도 각기 필요한 장점을 가진다. 특히 불확실성이 큰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P 성향이 가진 강점이 도드라진다. 변화무쌍한 상황에 민첩하게 반응하며 나름의 해법을 찾아가는 P 성향은 급격히 바뀌는 외부 환경 속에서 일종의 적응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J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이런 환경에 놓이면 외부에서 P처럼 보일 때가 있다.
실제로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계획대로 일이 흘러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원래 J 성향을 가진 사람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P처럼 보일 수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이 본래 가진 성향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게 만들며, 이런 내적 갈등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J 성향의 사람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특히 원래 성향대로라면 계획과 절차에 따라 결과를 만들어가야 할 사람이 지속적으로 돌발 상황에 놓이면, 불가피하게 자신의 성향과 상충하는 행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향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양쪽 성향이 모두 균형 잡힌 태도를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MBTI는 각 성향을 단순히 나누는 도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이 성향들을 조합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훈련하는 데 유용하다. 어느 한쪽 성향에 치우친 채 극단적으로 행동하게 되면 균형감이 깨지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약화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극단적인 방법보다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J와 P 성향을 조합해 상황마다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연습은, 중용의 덕을 실천하는 방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즉, 자기 성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황에 적합한 유연성을 발휘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I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MBTI의 E와 I 유형은 흔히 외향성과 내향성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이해된다. 많은 사람이 외향형(E)이면 사교적이고 활발하며, 내향형(I)이면 조용하고 고립된 삶을 선호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판단은 실제 이들의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며, 오히려 오해를 낳는다. 내향성이나 외향성은 대인관계나 말의 양이 아니라,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식의 차이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말이 많거나 자기 표현을 잘하면 외향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향형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다. 특히 MBTI의 주기능이나 부기능이 외향 논리를 가진 내향형의 경우, 의견을 밝히고 생각을 펼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내향적인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에너지는 사람과의 교류가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충전되기 때문이다. 반면, 외향형은 조용히 지내더라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렇기에 외향형 중에서도 분위기를 띄우거나 활발하게 행동하지 않더라도 모임을 제안하고 참여하려는 이들이 많다.
내향형이면서도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경우는 이런 오해를 더욱 깊게 만든다. 사람들은 내향적이라면 혼자서 조용히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에 나서면 자연히 외향적인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것과 외향적인 성향은 별개의 문제다.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것은 역할의 문제이지, 외향성과 내향성의 문제가 아니다. 필연적인 필요가 생기면 내향적인 사람도 얼마든지 일을 주도할 수 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느냐의 문제이다. 회사에서는 활발히 의견을 개진하며 이끌어나가는 사람이, 퇴근 후에는 혼자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며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듯 말이다.
이렇듯 외향성과 내향성은 단순한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외향형이라 해도 혼자 있을 때 집중력이 높아질 수 있고, 내향형이라 해도 필요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주도할 수 있다. 본질적인 차이는 오로지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가에 있다.


익명성이 만들어 내는 솔직함의 덫

익명성은 사람들이 평소 실명으로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직장 관련 커뮤니티 앱에서는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을 익명으로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익명성의 장점은 사람들이 보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 방식이 반복되다 보면 점차 실명으로는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되고, 결국 익명성에 의존하는 비정상적인 소통 방식이 조직 내에 고착될 위험이 커진다.
익명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쏟아지는 목소리는 활발한 소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명 대화에서는 누구도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만 소통하는 단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문제와 불만이 익명의 공간에만 쌓이게 되면서, 실명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에서는 표면적인 대화만 반복되는 왜곡된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자리 잡게 된다. 예를 들어, 직장 커뮤니티 앱에서 구성원들이 회사의 정책이나 운영 방침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을 하면서도, 정작 회의 자리에서는 비슷한 의견을 쉽게 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는 회사가 구성원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고 대응할 기회를 잃게 만들며, 결국 신뢰를 떨어뜨려 조직을 더욱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익명성에 의존하는 소통 방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솔직한 이야기는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만 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실명으로 솔직한 비판이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점차 꺼리게 만들며, 진지한 논의나 비판을 자연스럽게 익명성 뒤로 밀어 넣는다. 실명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상호 비난이나 불편함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우려가 생기면서, 오히려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가 굳어지면 실명 대화에서는 주요 이슈가 다루어지지 않고, 익명의 공간에만 불만과 비판이 쌓이는 왜곡된 소통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는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조직 전체의 문제 해결 능력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건강한 소통 문화를 방해하게 된다.


약점은 버리고 강점 강화를 하라면서요?

세상에 전해지는 대부분의 조언은 일반화되어 적용되기 쉽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을 때도 많다. 대표적으로 ‘강점을 강화하라, 약점은 버려라’는 조언이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강점을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강점만 강화한다고 해서 항상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는 영역에서는 약점의 보완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자들이 보완해온 부분에서 격차가 생기고, 이는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강점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약점을 보완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문제는 약점의 보완이 강점 강화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약점이란 대부분의 경우 자신에게 맞지 않거나 능숙하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더 큰 투자를 요구한다. 특히 경쟁이 극심해진 환경에서 효율성이 낮은 작업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스스로 리스크를 높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선택은 바로 약점을 외주화하거나 위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디테일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중요한 경우라도 그 디테일이 목표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해당 작업을 맡을 담당자가 이미 디테일에 강점이 있는 경우라면 이를 위임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반면, 그 디테일이 목표 성과에 큰 영향을 주거나 이를 담당할 인력조차도 디테일에 강점이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약점을 외주화해 에너지를 덜어내고, 자신이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결론적으로,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최소화하라는 조언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경쟁이 극심하고, 더 완벽한 준비가 요구되는 상황이 도래할 때, 약점은 오히려 리스크가 되기 쉽다. 따라서 약점의 보완이 중요해지는 시점에서는 직접 보완하기보다는 외주화를 통해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몰입, 일상의 모든 순간을 바꾸는 힘

몰입은 단순히 특정 일을 할 때만 필요한 특별한 상태가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몰입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인형의 눈알을 붙이는 단순한 작업조차 온전히 집중해 몰입할 때, 그 작업의 깊이가 달라지고, 진정한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몰입은 일의 종류나 난이도와 무관하게,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일에 어떻게 몰입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도 달라진다.

몰입의 경험이 주는 만족감은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과는 다르다. 몰입은 집중이 주는 몰입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글을 쓰거나 사진을 편집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것처럼, 몰입의 순간은 고요하면서도 깊은 만족을 준다. 그 순간의 경험은 신체적으로 피로감을 남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취감과 충실한 포만감으로 채워진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넘어, 몰입을 통해 우리는 더 큰 의미와 가치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몰입을 방해받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책 ‘도둑맞은 집중력’이 지적하듯, 우리의 주의력은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빼앗기고 있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 끝없이 울리는 알림은 우리의 관심을 갈라 놓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려는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몰입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도 그 도달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낀다. 몰입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분산시키려는 수많은 자극을 의식적으로 차단해야 하기에, 몰입의 과정은 이제 더욱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에서 강조하는 진정한 성장은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깊은 몰입의 순간을 쌓아가면서 이루어진다. 시간이 쌓이는 동안에도 집중이 흩어져 있다면, 그 시간은 양적으로만 의미가 있을 뿐 질적인 성과는 따라오지 않는다. 몰입된 상태에서 경험하는 시간은 더욱 큰 성취와 성장으로 이어진다. 몰입이 필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작은 작업에서조차 몰입을 통해 우리는 일의 깊이를 발견하고, 그 순간의 진정한 기쁨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몰입을 통해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진정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몰입의 경험은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고, 나아가 우리 자신을 충실히 쌓아올린다.


더 이상의 빠른 표범이 사라지는 시대

생산성의 향상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는 경쟁을 심화시키며 더 나은 삶을 약속했지만, 정작 그로 인한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더 빠른 가젤이 포식자의 위협을 피하려 진화하듯, 그 가젤을 잡기 위해 더 빠른 표범이 등장하고, 이보다 더 빠르게 도망치는 가젤이 다시 나타난다. 끝없이 순환하는 이 경쟁 속에서 서로는 서로의 한계를 끌어올리며 발전을 거듭하지만, 그 과정은 어느덧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전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 상황은 마치 군비 경쟁처럼, 한쪽의 발전이 상대방의 발전을 불러오며 본질적으로 나아질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해버린 것이다. 개인의 생산성은 계속해서 증가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삶의 여유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산성은 본래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의 행복과 만족이라면, 생산성의 향상이 그 목표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경쟁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AGI(인공지능 일반)의 등장으로 인간의 생산성은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생산성 경쟁을 주도하던 인간이 더는 AGI의 효율성에 필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인간이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 또한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다가오는 AGI 시대에는 생산성조차도 인간의 영역이 아닌 기계의 몫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더 이상 ‘생산성’이라는 잣대로 평가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할 때, 인간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각자가 지닌 고유한 특별함에 있다.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관심사와 열정을 통해 특별함을 발휘하고자 할 것이며, 이런 특별함을 서로 공유하며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때의 특별함은 단순히 성과나 성취의 기준이 아닌, 개인이 지닌 독특함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생산성 중심의 인간관계가 아닌, 관심과 취향에 따라 만들어진 인간관계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제공할 것이다. 이제 인간은 성과나 효율성에서 자유로워져 각자의 정체성에 기반한 네트워크 속에서 연결된다. 성과가 흔들릴 때마다 불안정해지는 기존의 소속감과 달리, 정체성에 기반한 소속감은 훨씬 더 끈끈하고 안정적이다. 각자가 지닌 정체성과 고유성을 중심으로 얻게 되는 소속감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하며, 인간은 그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이처럼 AGI 시대가 도래한다면, 인간은 본래의 인간다움을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고 강화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일 수 있다. 각자의 고유한 가치와 열정을 표현하며 안정적인 공동체 속에서 인정받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생산성 중심 사회가 제공하지 못했던 진정한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실현할 가능성 중 하나로 떠오른다. AGI 시대가 본격화되며 지금껏 놓쳐온 인간다움의 본질이 회복될지, 우리는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불편함이 만들어 내는 가치

변화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반복된다. 우리는 모두 변화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변화가 안고 있는 어려움과 불편함에 대해 한 발 물러서기 마련이다. 특히, 내가 추진하는 변화가 조직 전체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큰 규모라면, 이는 기존에 자리 잡은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만큼이나 이해와 설득이라는 난제를 함께 동반한다.

사람들은 보통 변화에 반발한다. 특히 거버넌스나 프로세스와 같은 구조적인 변화는 더 강한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변화는 조직 전체에 걸쳐 강제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한 개인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 흐름에 따라야 한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만의 효율성을 잃는 일로 여겨질 수 있고,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는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대개 이런 변화는 소규모 그룹을 대상으로 배경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진행하는 것이 정석으로 여겨지지만, 내가 담당한 변화는 일종의 ‘광역 타격’에 가까웠다.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주는 수동성에 불만을 느끼기 쉽고, 이에 대한 반응을 접하는 나 역시 어느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거버넌스의 도입이 꼭 필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뛰어난 개인들이 아무리 많은 성과를 낸다 해도, 그들을 통해 전체의 효율을 담보할 수는 없다. 즉, 상향 평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거버넌스나 프로세스라는 체계적 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뛰어난 개인에게 자칫 족쇄처럼 느껴질 수 있다.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형태로 전달되는 큰 변화일수록, 왜 이런 일이 필요한지, 왜 지금 해야 하는지를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마주했던 반응들도 대부분 무관심하거나, 굳이 바꿔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새로운 프로세스를 시도해 보고 싶어도 개념 자체가 어렵다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향 평준화’라는 커다란 명분이 현장에서는 당장의 필요와 맞물리지 않을 때 반발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때가 있다. 프로세스의 효용을 발견하고 이를 실제로 경험한 일부가 조금씩 긍정적인 경험을 공유할 때다. 그들이 주도적으로 템플릿을 활용하고, 이로 인해 업무가 원활해진 사례들을 보며, 내가 전하고자 했던 변화가 조직에 조금씩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변화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점진적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그 어떤 결과보다 값지게 다가온다. 템플릿이 반복해서 사용된다는 사실은 그 유용성을 증명하는 일이며, 정말 쓸모없는 변화였다면 이미 모두가 외면했을 것이다.

변화는 단지 현재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상태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기존 상태가 문제가 아니더라도, 전체 효율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체계성과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큰 변화는 모두에게 구체적인 비전을 즉시 제공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화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꾸준히 강조하려고 한다. 특히 기존 방식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설명함으로써, 왜 우리가 이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세부적인 어려움과 장기적인 손실을 함께 설명할 때 변화의 필요성은 자연스럽게 와닿는다. 이는 단순히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없이는 불가피하게 닥쳐올 문제를 피할 수 없음을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며 점진적으로 정착된 변화는 조직의 일상에 스며들고,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체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더 나은 길로 나아가게 된다.


사람들이 사소한 것에 화를 내는 이유는?

사람들이 왜 여유가 없고, 왜 사소한 일에 쉽게 화를 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는 단순히 그들의 성격 탓이 아닐 수도 있다. 깊이 생각하는 데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만큼 시간과 집중을 요구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일상적인 생존의 스트레스 속에서 깊은 사고를 할 여유조차 가지기 어렵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보다 단순하고 빠른 결정을 내리고, 이분법적인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고민할 때마다, 스스로를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매슬로의 욕구 이론을 보면, 기본적인 생존 욕구나 안전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높은 차원의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나 역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나는 그들의 환경을 이해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려고 한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면, 그들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나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화를 나에게 돌리기보다는 그들이 겪는 어려움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동정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 덕분에, 나는 그들이 화를 내는 상황에서도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분노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상관없이, 그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성장의 여부는 그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내 역할은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진 능력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데 있다고 본다.

회사에서의 소통에서도 나는 효율성을 중시한다. GTD 방식을 통해 내가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머릿속에 여러 가지를 동시에 떠안는 부담을 줄이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사고를 요구하기보다는, 내가 미리 생각한 결론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대부분 문제가 없지만, 만약 상대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면 날카로운 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회사의 비즈니스 논리를 명분으로 삼아 설득하려 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상위 관리자를 만나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상대방과의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기대치 조절이다. 모든 스트레스는 기대 수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가 나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가정하고 대화한다. 상대가 아직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되지 못한 상태일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그에 맞춰 기대를 낮춘 채로 대화를 시도한다. 이는 갈등을 줄이고, 상대방과 더 원활하게 소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성공은 언제올지 모른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래깅 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래깅 효과는 어떤 행동의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현상을 말한다. 마치 채찍을 휘두를 때 손잡이와 끝부분이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행동이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약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이렇게 행동과 결과 사이에 지연이 있을 때 사람은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해 동기 부여를 잃기 쉽다.

많은 경우 성과는 시간이 지나야 나타나지만, 당장의 결과를 보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노력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도 한동안 구독자 수가 줄어들어 영상 제작 의욕이 점차 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가끔 예상치 못한 순간에 교육 문의가 들어오기도 하고, 기존 영상의 조회수가 폭발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꾸준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성과가 없을 때보다 성과가 나올 때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성과가 보이면 그 순간에는 만족감에 젖어 더 큰 성과를 기대하게 되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꾸준히 하던 루틴이 쉽게 깨어지곤 한다.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성과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이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 결국 핵심이다. 이런 꾸준함이 진정한 성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를 위해 유튜브 채널 운영 주기를 조절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하나씩 영상을 올리려 했지만, 그 주기를 맞추는 것이 점차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국 주기를 한 달에 한 번으로 바꾸었고, 오히려 이 방식이 더 적합했다. 채널의 특성상 최신성을 요구하는 콘텐츠가 아니기에 주기를 조절했음에도 큰 변화는 없었고, 무엇보다 루틴을 깨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콘텐츠 제작 시에 소스가 없으면 난감한 경우가 많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도 마련했다.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이나 말이 떠오를 때마다 음성으로 녹음하고, 자동으로 요약해 노션이나 옵시디언에 정리해둔다. 이런 프로세스를 통해 생각을 놓치지 않고 정리해두면, 그 아이디어들이 모여 글로 작성되거나 유튜브 영상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준비된 소스들이 쌓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안정감을 준다. 그 덕분에 심리적 압박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꾸준함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결국 꾸준함을 지속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재미’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그 말들을 기록하고 정리해두면서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 이 재미가 있기에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다.

꾸준함은 단순히 성과를 향해 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성과와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생각보다 소소한 곳에서 온다. 소스가 쌓여 있을 때 주는 안정감, 그리고 그 과정을 재미있게 느낄 때, 꾸준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좋은게 좋은거 맞아?

“좋은 게 좋다”는 말은 겉보기에는 서로 간의 윈윈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주 사용한다.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소소한 손해는 감수할 수 있지만, 문제는 테이커들이 주로 이 말을 이용해 자신은 받기만 하면서도 결코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버와 테이커가 있다면, 기버는 협력의 출발점이 되지만, 테이커는 언제나 받아들이기만 한다. 기브앤테이크가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테이커들은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익을 취하고도 나누지 않는다. 결국 기버들은 자신의 호의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호의가 반복적으로 이용당하면, 기버는 지치고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과거에 테이커와의 관계에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이 처음부터 주차비 같은 사소한 금액조차 내지 않으면서도,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세 번 정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나는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 사람은 당황했지만, 본인의 행동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듯했다. 나에게는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관계를 끊는 게 최선이었다.

테이커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을수록 나만 피폐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테이커인지 아닌지를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테이커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낫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기 시작하면, 인생 자체가 점점 더 힘들어질 뿐이다.

결국, 나는 사람과 그들이 하는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관계를 맺는다. 인생에 신경 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테이커들과의 불건전한 관계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 그들과 관계를 끊고 나니 인생이 더 단순해졌다. 인생에서 불필요한 복잡함을 제거하고, 나에게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