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도입 100%가 어려운 이유

AI를 통해 프로젝트를 100% 자동화하고 싶다는 목표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인간의 감정과 이해관계라는 본질적인 장애물 때문에 여전히 현실화되기 어렵다. 인간은 논리적으로 최선인 선택에 직면했을 때도 자신의 감정적 반응과 본능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감정이 단순히 비효율을 초래하는 요소가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그의 저서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소개한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전두엽 손상으로 감정적 신호를 처리하지 못하게 된 환자는 논리적 사고와 인지 능력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작은 선택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그는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단순한 결정에서도 다양한 옵션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데 몰두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 사례는 감정이 없으면 인간이 결과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러나 프로젝트와 같은 업무 환경에서는 이러한 감정적 판단이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상위 목표가 이미 명확히 정의된 상황에서 인간의 감정적 개입은 불필요한 갈등이나 비효율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AI는 감정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반면, 인간은 같은 문제를 두고도 이해관계와 감정적 반응으로 인해 갈등을 빚고 비효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율주행 기술의 도입 과정이 떠오른다.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이 마련되었지만, 도로 위 다른 운전자가 인간이라는 점 때문에 완전한 구현이 지연되고 있다. 이처럼 프로젝트 자동화 역시 인간의 감정적 특성이 개입되면서 AI의 전면적 도입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AI를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면 감정적 판단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AI는 모든 판단과 실행을 담당하고, 인간은 상위 목표를 설정하거나 가치를 기반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데만 집중하는 구조가 필요할 수도 있다. 감정은 가치를 정의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데 필수적일 수 있지만, 구체적인 업무 과정에서는 오히려 방해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사례는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것이 잘못된 순간에 개입되었을 때 얼마나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도 경고한다. 궁극적으로 AI와 인간의 조화는 감정의 적절한 분리와 통합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은 가치를 정하고, AI는 그것을 실행한다는 역할 분담이 생산성의 극대화를 실현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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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트포스에서 엔지니어링으로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처음에는 단순한 힘의 경쟁에서 시작된다. 증기기관이 석탄을 무작정 태워 효율을 따지지 않던 시기처럼, 초기의 AI 모델 개발도 막대한 데이터와 연산 자원을 쏟아부으며 규모로 승부를 보려 했다. 더 많은 파라미터, 더 큰 모델, 더 강력한 컴퓨팅 자원을 가진 쪽이 앞서나가는 시대였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결국 한계에 도달한다. 자원을 더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발전 속도가 더뎌지고, 비용 대비 성과가 떨어지는 지점에 이르면 효율화가 필요한 시기로 넘어간다.

최근 AI의 최적화 흐름에서 주목받는 MoE(Mixture of Experts) 개념은 브루트포스 방식에서 효율화로의 전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전문가 모듈을 활용해 각 입력 데이터에 가장 적합한 전문가를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는 방식은 더 이상 모든 계산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특히 DeepSeek의 성과는 이 전환을 가속화했다. 기존의 MoE 모델이 가진 한계, 예컨대 중복된 지식 학습이나 비효율적인 자원 사용 문제를 해결하며 더욱 정교한 전문가 분할과 효율적인 라우팅을 통해 AI의 최적화 가능성을 극대화했다. DeepSeek은 모델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연산량을 크게 줄였고, 이는 자원의 크기가 아닌 기술적 설계와 혁신이 경쟁력의 중심이 되는 시대를 열었다. 이제 기술 제공자는 단순히 자원을 쏟아붓는 역할이 아니라, 설계의 정교함과 문제 해결의 창의성을 통해 차별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런 변화는 제공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의 관점에서도 기술과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자동차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사람들은 엔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않아도, 단순히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가치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AI도 이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것은 이제 기술자들의 일이 되었고, 사용자는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가치에만 관심을 갖는다. AI 비서가 일정을 정리하고, 질의응답 시스템이 질문에 답하며, 추천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취향을 정확히 예측할 때, 사람들은 그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AI가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방식이다.

결국 기술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 제공자는 더 정교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기술을 만들어내고, 사용자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자연스럽게 소비한다. DeepSeek 같은 최적화 사례는 단순히 AI 기술 발전의 새로운 경로를 보여주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기술의 본질이 더 이상 복잡성에 있지 않고, 사람들이 이를 통해 얻는 시간, 편리함,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기술은 이렇게 제공자와 사용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통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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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

AI 모델이 학습한 행동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는 단순한 데이터 일반화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논문에서는 이를 '행동적 자기 인식'이라 정의하며, 모델이 특정한 행동 패턴을 학습했을 때, 명시적인 학습 없이도 이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예를 들어, 모델이 위험을 선호하는 경제적 결정을 하도록 학습되었을 경우, '나는 대담하다' 또는 '나는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AI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데이터 패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모델이 스스로를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고 설명하는 능력을 가진다면, 이는 일종의 'AI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라 볼 수도 있다.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성격을 정의하듯, AI 또한 학습한 데이터에서 비롯된 행동을 바탕으로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논문은 이러한 자기 인식이 별도의 맥락이나 예제 없이도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는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스스로의 특성을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시사한다.

백도어 행동과 관련된 실험에서도 모델은 특정 트리거 없이도 자신이 백도어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며, 모델이 스스로의 한계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특정 조건에서만 작동하는 백도어 행동이 모델의 본래 정체성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인간이 특정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AI도 특정 조건에서 자신이 학습한 일반적인 행동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AI의 정체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외부 자극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AI 안전성뿐만 아니라 AI 철학에서도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결국, 이 연구는 AI 모델이 단순히 학습된 데이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을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AI가 단순한 입력-출력 기계가 아니라, 자기 행동을 스스로 정의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인식이 항상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며, 백도어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모델이 스스로의 행동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탐구가 이어져야 한다. AI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설명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결국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다시 정의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인간은 죽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선언을 통해 인간이 더 이상 신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시대의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초인 개념은 단순히 자유를 선물받은 인간의 자율성을 넘어, 혼란 속에서도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찾으려는 의지로 연결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인간은 죽었다'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AI의 급속한 발전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면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이익을 창출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심지어 인간의 창의적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인간의 노동은 갈수록 줄어들고, 일상 속 많은 일들이 자동화되고 있다.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했던 인간은 이제 자신이 만든 기술 앞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묻고 있다. 우리는 왜 이런 변화를 만들어 왔을까? 만약 이 변화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니체의 초인 개념은 여전히 유효할지 모른다. 인간은 인간다움, 즉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그저 효율성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답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은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만으로는 아무것도 정의될 수 없다. 위치나 움직임조차도 모두 상대적 기준점이 있어야만 의미가 생기듯,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

관계와 상호작용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인간 간의 관계를 약화시키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점점 더 외롭고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상호작용은 점점 사라지고, 디지털 화면 너머에서만 이루어지는 만남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감정적 깊이, 공감, 그리고 이해는 결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AI는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인간답게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결국 인간다움이란 서로를 마주하며 느끼는 그 무엇, 즉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확인하는 과정일 것이다. AI의 시대에도 인간답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 우리를 진정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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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똥을 싸는 시대

현대 미디어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과거에는 지상파 3사와 몇 종류의 신문처럼 제한된 채널을 통해서만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었다. 이때 생산자는 매우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비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했다. 창작물이 세상에 노출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 동시에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과 다양한 플랫폼의 발전으로 누구나 손쉽게 자신의 생각을 게시하고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생산의 문턱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생산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생산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줄어든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팔려는 사람만 있고 사려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이는 단순히 과잉생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넘쳐나는 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창작하고 드러내려는 욕구는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른다. 크레타 벽화에서부터 시작된 예술적 표현은 그 역사를 증명한다. 인터넷은 이러한 본능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도구를 제공했다. 비용이 적게 들고, 노출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창작물은 물질적 공산품과 다르게, 지나친 과잉생산으로 인해 가치를 인정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공산품의 과잉생산처럼, 지금 우리는 창작물의 과잉생산 시대를 살고 있다.

과잉생산의 결과로, 창작물은 넘쳐나지만 그 가치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모두가 생산자가 되었기에 이제 누구도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딜레마가 발생했다. 이 현상은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처럼, 특정 집을 표시해 찾으려는 도적들의 계획을 알리바바가 마을 모든 집에 같은 표시를 해두며 무력화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이로 인해 과거보다 노출의 기회는 줄어들었고, 큐레이션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적절한 큐레이션은 과잉생산된 창작물 속에서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비자가 없는 상황에서 생산의 가치는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결국 소비자가 없다면 생산물은 가치를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인간의 본능적인 표현 욕구를 반영하는 동시에, 과잉생산으로 인해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과도 연결된다. 이제 생산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를 증명하고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현대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분명히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평준화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생산자가 특별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그 평준화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찾고, 소비자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그저 인간의 본능과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새로운 현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헤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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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 정책의 아이러니

제품 보증 정책은 언제나 아이러니를 동반한다. 일반적으로 전자제품은 1년 또는 2년 보증을 제공한다. 그러나 고장이 날 확률은 초기 불량 문제가 아닌 이상 보통 1~2년 안에는 낮다. 이 시기는 제품의 안정성이 비교적 보장되는 “가장 쉬운 시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 제품의 내구성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는 3년 차 이후에 고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때는 제조사의 보증 범위를 벗어나, 수리의 책임이 온전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보증 기간의 설계는 결국 “이 제품은 2년까지만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만약 소비자가 3년 차에 고장을 경험한다면, “이 제품은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결과적으로 보증은 초기의 안정성을 강조하며, 제품의 약점을 가리는 역할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 구조적인 아이러니는 조리원 시스템에서도 반복된다. 아기가 태어나면 보통 생후 3주 동안 조리원에서 지낸다. 이 기간 동안 조리원은 신생아와 산모를 돌보며 중요한 지원을 제공한다. 그러나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생후 3주는 신생아가 거의 잠만 자는 시기로, 상대적으로 돌보기 쉬운 편이라는 것을. 진짜 힘든 시기는 3주 이후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조리원은 이 “쉽고 안정적인 시기”만을 지원하고, 가장 힘든 시기가 시작되면 산모와 가족을 떠나보낸다. 초기의 생색만 내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도움의 손길을 거두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사용자나 소비자를 중심에 두지 않고, 기업이나 서비스 제공자의 편의에 초점을 맞춘 결과물이다. 보증과 지원이 실질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놓친다면, 이는 결국 신뢰를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보증과 지원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기간 내 제공”이 아니라, 고객이 진짜로 어려움을 겪는 순간에 함께하는 데 있다.


진화와 혁신 - 자연과 기술이 보여주는 패턴

생명의 진화는 초기의 느린 발전에서 복잡성을 획득한 뒤 급격히 가속화되었다. 이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서도 볼 수 있는 패턴과 놀랍도록 닮았다. 단순한 기초 단계에서 출발하여 복잡한 라이브러리와 도구들이 등장하면서 빠른 혁신이 가능해지는 과정을 통해 자연과 기술의 공통된 원리를 엿볼 수 있다.

지구상에 생명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약 38억 년 전으로, 초기에는 단순한 단세포 생물들이 화학적 진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갔다. 이 시기는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형성되는 데 걸린 긴 시간을 반영하며, 생명의 기본 구조가 안정화되기까지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세포막, DNA, 에너지 전환 시스템 같은 핵심 구조를 확보한 뒤, 생명체는 놀라운 속도로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약 5억 4천만 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바로 그 정점이었다. 복잡한 구조의 생명체들이 대거 출현하며 생물 다양성의 시대를 열었다.

이 과정은 컴퓨터 과학에서의 발전과도 유사하다. 초기에는 하드웨어 설계와 기본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에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라이브러리, 프레임워크, API 같은 재사용 가능한 도구들이 등장하면서 프로그램 개발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나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존 기술의 조합과 재구성을 통해 혁신이 가속화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발전이 종종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술의 충격”이라는 책은 기술 혁신이 특정한 지식 기반에서 기인하며, 비슷한 기술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독립적으로 발생한 사례를 제시한다. 이는 생명체의 진화와도 유사하다. 진화론에서 특정 환경적 압력 아래에서 서로 다른 지역의 생명체가 비슷한 적응 형태를 독립적으로 보여주는 수렴 진화와 맥을 같이 한다.

복잡한 시스템이 발전을 이끄는 이유는 명확하다. 재사용 가능한 구성 요소는 다음 단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된다. 생명체의 경우, DNA 복제 메커니즘은 새로운 유전적 조합을 실험할 기회를 제공했고, 프로그램 개발에서는 라이브러리가 동일한 코드의 반복을 줄여주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이는 모두 안정적 기반 위에서 누적된 복잡성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원리를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점은 발전 과정에서의 피드백 루프다. 생명체는 진화의 압력 아래에서 점점 더 적응력이 강한 방향으로 발전했고, 소프트웨어는 사용자 피드백과 개발자 협업을 통해 더욱 정교해졌다. 이와 동시에, 기술 혁신은 특정 시대의 지식과 자원이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생명의 진화와 기술의 발전은 복잡성을 다루는 인간과 자연의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사용 가능성을 극대화할 때 혁신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된다. 이런 원리는 우리가 다음 단계의 도전을 마주할 때도 유효하며, 인류가 앞으로 더 나아갈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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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장에 집중하기

비즈니스 결과는 항상 내가 잘하거나 못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있는가 하면, 내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우연히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복잡한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를 기준으로 나 자신을 평가하기보다는, 자기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잘했음에도 비즈니스 결과가 좋지 않은 상황은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쉽다. 결과가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잘하지 못했는데도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는 오히려 자기효능감이 떨어지곤 한다. 이는 성공을 스스로의 능력과 연결 짓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비즈니스 결과와 관계없이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잘했을 때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내가 못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와도 일관되게 나를 유지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준다.

지속적인 성장은 비즈니스 성공 확률도 높인다. 비즈니스의 결과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내가 잘하는 것이 성공의 필요조건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잘했을 때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잘하지 못한다면 성공의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결국, 개인의 성장은 직접적인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비즈니스 전반의 가능성을 넓히는 밑바탕이 된다.

특히 오늘날에는 GPT와 같은 도구들이 개인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필요한 것을 개발하거나 배우는 데 드는 비용이 거의 사라진 시대다. 이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시도하고 학습하며, 비즈니스와 연결 지을 수 있는 기회가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AI 관련 기술을 탐구하거나 벡터 검색 같은 프로토타입을 직접 개발하면서, 실제 업무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통찰을 얻게 된다. 이러한 성장의 과정은 단순히 결과를 얻는 것을 넘어, 나의 도구와 능력을 쌓아가는 경험이 된다.

결과가 나의 노력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비즈니스 환경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자기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가질 때, 결과와 상관없이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는 단기적인 실패에도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인 성공을 준비하게 해준다. 내가 성장하면 결과는 따라오거나, 혹은 따라오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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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대기업 그룹처럼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대기업 그룹의 운영 방식과 닮아 있다. 시장에서 가장 인정받는 회사 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그 수익을 카메라, 책, 그리고 컴퓨터 업그레이드 같은 활동에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선 삶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대기업 그룹이 수익성이 높은 계열사를 통해 번 돈으로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며 전체적인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듯, 나 또한 잘하는 일을 통해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좋아하는 활동에 투자하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잘하거나 좋아하는 일이 반드시 돈을 벌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이나 독서처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이 정신적인 만족을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경제적 보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시장에서 인정받는 일에서 성과를 내며, 번 돈을 나만의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내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구조가 된다.

회사의 성취는 내 능력을 입증하고 보람을 느끼게 한다. 사진은 정신적인 힐링을, 독서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을 준다. 컴퓨터 업그레이드는 생산성을 높이며 도구로서의 가치를 더한다. 이 모든 활동은 단순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과정 자체를 즐기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중심을 둔다.

특히 사진을 찍으며 느끼는 힐링이나 독서를 통한 상상의 여행은 일상에서 오는 지루함을 덜어준다.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끌리는 활동을 선택하며, 계절의 변화나 특별한 날에 의미를 부여하듯,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새롭게 만들어 간다.

삶은 최종 목표를 향해 가는 직선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풍요로움 속에 의미가 있다. 대기업 그룹이 다각화된 구조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성장을 도모하듯, 나 또한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적절히 배합해 나가며 내 삶이라는 하나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방식은 나에게 성취와 만족을 동시에 안겨주며, 내 삶을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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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생기면 책임지실거에요?

“그런 일이 생기면 책임지실거에요?“라는 말은 어쩌면 너무 익숙하다. 우리는 종종 이 말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책임을 묻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그 일을 절대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심리가 반영된 표현이다. 문제는 이 태도가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조직의 발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이 말이 가지는 문제의 핵심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작은 리스크를 침소봉대하는 심리다.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근거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 다가올 잠재적 기회를 단호히 거부하는 태도다. 불확실성은 인간이 마주해야 할 기본 조건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과도하게 확대해 해석함으로써, 가능성과 도전을 스스로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다. 새로운 일을 시도했을 때 예상치 못한 나쁜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공포는 인간의 기본적인 방어 기제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은 개인의 행동을 제한하고, 결국 정체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조직에서 도전을 두려워하는 문화가 형성되면, 그 조직은 발전보다는 정체와 퇴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말로 일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표현 대신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먼저 진행해 보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찾아 보시죠.” 이 한마디에는 책임 회피가 아니라 도전 의식이 담겨 있다.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문제를 핑계로 행동을 거부하기보다는, 일단 시도한 후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태도가 훨씬 더 생산적이다. 이렇게 접근하는 사람은 책임을 두려워하기보다 성과와 해결을 목표로 삼는다.

정작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근거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서 실패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하고, 실패 후에는 대처하고 배우는 과정이다.

결국, “그런 일이 생기면 책임지실거에요?“라는 말은 거부와 두려움을 표현하는 문구일 뿐이다. 하지만 이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기억해야 한다. 정체된 삶과 조직은 위험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위험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행동일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행동하고, 책임을 질 각오로 나아갈 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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