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재에게 과거의 족쇄를 채우는 회사
기업이 핵심 인재를 채용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 그 원인은 종종 조직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핵심 인재는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새로운 접근과 혁신적 방식을 통해 변화를 이끌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이들의 역량을 온전히 활용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방식을 효율화하는 데 그치기를 기대한다면, 그 인재는 시스템 안에 갇혀 본연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다. 시스템이 기존 방식의 답습을 강요하는 환경이라면, 새로운 인재가 들어와도 결국은 그 한계 안에서만 활동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허용하는 수준에 맞추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다면 핵심 인재가 지닌 혁신적 사고와 기획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이 기대하는 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결국, 이렇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스템 하에서는 핵심 인재가 오히려 기존 직원과 같은 수준으로 머물게 되고, 회사의 성장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시스템적 한계로 인해 핵심 인재는 좌절감에 빠지며, 조직에서의 성취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는 그들의 동기를 떨어뜨리고, 조직에 머무르는 기간을 단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이러한 환경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구성원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회사는 기존의 방식과 관행을 강화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는 혁신적인 성과보다는 정체된 문화와 비효율만을 반복하게 되고, 내부 문제는 점차 외부로 드러나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회사를 외면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설령 새로운 인재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이러한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는 같은 한계에 부딪혀 결국 이탈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스템 한계를 과감히 극복하고 새로운 인재가 조직 내에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고착된 문화와 기존의 시스템 하에서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조직이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문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보편적 문제 해결의 열쇠: 유저스토리와 잡스토리의 차이
잡스토리는 유저스토리와 달리 특정한 페르소나나 개별 경험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과 컨텍스트를 기반으로 문제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더 큰 강점을 가진다.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에서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예측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잡스토리의 장점을 설명하는 데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사람은 각기 다른 배경과 환경에 있지만 결국 유사한 상황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패턴화된 행동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의 가치를 생각하는 단계에서는 특정 페르소나의 사례에 집중하기보다는, 범용적인 상황과 고통을 다룰 수 있는 잡스토리의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유저스토리에서는 20대 여성이 온라인 쇼핑을 할 때 겪는 특정 경험을 다룬다고 가정해보자. 유저스토리에서 다룬 이 구체적인 사례는 30대 남성, 혹은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에게는 쉽게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잡스토리의 형식을 빌려 “온라인 쇼핑 고객은 제시간에 배송되지 않을 때 불만을 느낀다”는 식으로 풀어내면 특정한 연령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고객의 보편적인 페인포인트에 주목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보다 넓은 사용자 층이 공유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가치 제안을 설계할 수 있다. 결국 유저스토리는 구체적인 페르소나의 맥락 안에서 제품의 피처 설계에 유용할 수 있지만, 보편적인 문제 해결과 제품의 가치 창출을 위한 기초는 잡스토리에서 시작하는 편이 더 적합하다.
제품의 가치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특정 유저의 독특한 경험에 치우치기보다는 공통적인 상황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일반화할 때, 고객이 실제로 느끼는 고통을 해소하는 데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잡스토리는 이러한 공통적 페인포인트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 더욱 강력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원칙이 원칙이라 불리는 이유
오나라의 왕 합려는 손무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궁녀들을 대상으로 군사 훈련을 시켜 보라고 지시했다. 손무는 180명의 궁녀들을 두 부대로 나누고, 합려가 가장 총애하는 궁녀 두 명을 각 부대의 대장으로 임명한 후 간단한 명령 체계를 설명했다. 하지만 첫 훈련이 시작되자 궁녀들은 명령을 장난으로 여기고 웃기만 했고, 손무는 다시 한번 명령 체계를 설명했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결국 손무는 두 부대장 궁녀의 처형을 명령했는데, 합려가 자신의 총애하는 궁녀들을 살려달라고 했으나, 손무는 “장수가 군을 이끄는 중에는 왕명이라도 받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처형이 이루어진 후 궁녀들은 즉각적으로 명령을 따르게 되었다.
손무가 보여준 이 사건은 단순한 처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왕의 명령조차 무시하며 끝까지 원칙을 지켜내려는 손무의 태도는, 규율을 어기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점을 명확히 각인시켰다. 조직의 원칙이 말로만 존재할 때 사람들은 이를 쉽게 무시하지만, 행동으로 일관성 있게 지켜질 때 비로소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작은 원칙이라도 지켜지지 않거나,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아무런 피드백이 없다면 사람들은 즉각 원칙을 무시하게 되고, 이는 원칙을 허울 좋은 구호로 전락시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에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치 않다. 원칙을 정하고 이를 지키게 하는 모니터링 과정이 매우 번거롭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칙을 만든 사람조차 그 원칙을 무시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탓하기만 해서는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는다. 원칙이 조직 내에서 힘을 가지려면, 이를 정하는 주체가 일관성과 지속성을 가지고 스스로 그 원칙을 존중하고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원칙이 단순한 규정이 아닌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이라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때문이다.
조직이 목표를 이루려면 모든 구성원이 같은 방향을 보고 일관되게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크고 작은 원칙들이 흔들림 없이 지켜져야 하고, 그 원칙들이 진정성을 갖춘 상태로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아야 한다. 손무의 경우처럼 작은 원칙이라도 깨지기 시작하면 전체적인 신뢰가 무너지고, 이는 조직의 결속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원칙이 일관된 행동으로 꾸준히 지켜질 때 사람들은 이를 따르게 되며, 그에 따라 목표 달성의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손무가 궁녀들을 훈련하며 보여준 원칙의 중요성은 시대와 상황을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말뿐인 원칙은 한두 번만 깨져도 힘을 잃고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게 된다. 그러나 원칙이 반드시 지켜진다는 믿음이 일관된 행동과 태도로 자리 잡는다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T발 너 C야? T에 대한 오해
T와 F는 공감의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흔히 MBTI에서 사고형 T는 공감을 잘 못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는 오해에 가깝다. F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고자 하는 방식으로 공감을 요구한다면, T는 상황의 흐름과 합리성을 통해 공감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공감을 ‘잘한다, 못한다’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차이다.
F는 감정적 공감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받고자 한다.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F가 기대하는 공감은 자연히 자신의 감정 중심으로 형성된다. 이 방식에서 공감은 본질적으로 ‘나의 감정을 알아주길 바라는’ 행위로 자리잡는다. 따라서 F는 감정의 흐름을 중시하고, 자신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될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로 인해 F는 때로 ‘왜 내 감정을 몰라주는가’라는 불만을 느끼기 쉽고, T의 공감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
반면 T의 공감 방식은 다소 다르다. T는 문제 해결 위주의 사고를 통해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을 표현한다. T에게 공감은 감정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와 상황에 공감하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행위에 가깝다. T는 공감을 단순히 감정적 위로로 끝내지 않고, 문제에 공감하기 때문에 해결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이를테면 어떤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을 도울 때, T는 그저 감정적으로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방식으로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T가 단순히 공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감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차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T가 상황적 해결책을 제시할 때, F는 “내 기분을 왜 몰라주는가”라며 공감의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F 입장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동조해주길 기대하는 반면, T는 문제를 해결할 때 그 사람의 어려움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T는 ‘논리만 앞세우고, 공감을 모른다’는 오해를 사게 된다.
결국 T와 F의 공감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뤄진다. F는 감정에 기반한 공감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이해받고자 하며, 이는 자연히 개인적이다. 반대로 T는 논리와 개연성이 확보된 상황에서 공감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전체 관점을 이해하는 데 집중한다. 이 차이를 단순히 공감의 유무로 판단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감이 작동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T와 F는 각자 방식에 따라 공감을 표현할 뿐, 그 깊이와 진정성에서 부족한 것이 결코 아니다.
변화와 계획 사이: MBTI로 보는 유연성의 기술
MBTI에서 J와 P 성향의 차이는 주로 계획을 선호하는 정도로 설명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계획이 변경될 때의 반응 방식이다. J 성향은 정해진 계획이 틀어질 때 스트레스를 받기 쉽고, 돌발 상황이나 예기치 않은 변화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때가 많다. 반면 P 성향은 변화나 불확실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두 성향은 서로 상반되면서도 각기 필요한 장점을 가진다. 특히 불확실성이 큰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P 성향이 가진 강점이 도드라진다. 변화무쌍한 상황에 민첩하게 반응하며 나름의 해법을 찾아가는 P 성향은 급격히 바뀌는 외부 환경 속에서 일종의 적응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J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이런 환경에 놓이면 외부에서 P처럼 보일 때가 있다.
실제로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계획대로 일이 흘러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원래 J 성향을 가진 사람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P처럼 보일 수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이 본래 가진 성향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게 만들며, 이런 내적 갈등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J 성향의 사람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특히 원래 성향대로라면 계획과 절차에 따라 결과를 만들어가야 할 사람이 지속적으로 돌발 상황에 놓이면, 불가피하게 자신의 성향과 상충하는 행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향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양쪽 성향이 모두 균형 잡힌 태도를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MBTI는 각 성향을 단순히 나누는 도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이 성향들을 조합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훈련하는 데 유용하다. 어느 한쪽 성향에 치우친 채 극단적으로 행동하게 되면 균형감이 깨지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약화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극단적인 방법보다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J와 P 성향을 조합해 상황마다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연습은, 중용의 덕을 실천하는 방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즉, 자기 성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황에 적합한 유연성을 발휘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I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MBTI의 E와 I 유형은 흔히 외향성과 내향성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이해된다. 많은 사람이 외향형(E)이면 사교적이고 활발하며, 내향형(I)이면 조용하고 고립된 삶을 선호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판단은 실제 이들의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며, 오히려 오해를 낳는다. 내향성이나 외향성은 대인관계나 말의 양이 아니라,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식의 차이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말이 많거나 자기 표현을 잘하면 외향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향형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다. 특히 MBTI의 주기능이나 부기능이 외향 논리를 가진 내향형의 경우, 의견을 밝히고 생각을 펼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내향적인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에너지는 사람과의 교류가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충전되기 때문이다. 반면, 외향형은 조용히 지내더라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렇기에 외향형 중에서도 분위기를 띄우거나 활발하게 행동하지 않더라도 모임을 제안하고 참여하려는 이들이 많다.
내향형이면서도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경우는 이런 오해를 더욱 깊게 만든다. 사람들은 내향적이라면 혼자서 조용히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에 나서면 자연히 외향적인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것과 외향적인 성향은 별개의 문제다.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것은 역할의 문제이지, 외향성과 내향성의 문제가 아니다. 필연적인 필요가 생기면 내향적인 사람도 얼마든지 일을 주도할 수 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느냐의 문제이다. 회사에서는 활발히 의견을 개진하며 이끌어나가는 사람이, 퇴근 후에는 혼자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며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듯 말이다.
이렇듯 외향성과 내향성은 단순한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외향형이라 해도 혼자 있을 때 집중력이 높아질 수 있고, 내향형이라 해도 필요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주도할 수 있다. 본질적인 차이는 오로지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가에 있다.
익명성이 만들어 내는 솔직함의 덫
익명성은 사람들이 평소 실명으로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직장 관련 커뮤니티 앱에서는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을 익명으로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익명성의 장점은 사람들이 보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 방식이 반복되다 보면 점차 실명으로는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되고, 결국 익명성에 의존하는 비정상적인 소통 방식이 조직 내에 고착될 위험이 커진다.
익명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쏟아지는 목소리는 활발한 소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명 대화에서는 누구도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만 소통하는 단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문제와 불만이 익명의 공간에만 쌓이게 되면서, 실명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에서는 표면적인 대화만 반복되는 왜곡된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자리 잡게 된다. 예를 들어, 직장 커뮤니티 앱에서 구성원들이 회사의 정책이나 운영 방침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을 하면서도, 정작 회의 자리에서는 비슷한 의견을 쉽게 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는 회사가 구성원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고 대응할 기회를 잃게 만들며, 결국 신뢰를 떨어뜨려 조직을 더욱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익명성에 의존하는 소통 방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솔직한 이야기는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만 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실명으로 솔직한 비판이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점차 꺼리게 만들며, 진지한 논의나 비판을 자연스럽게 익명성 뒤로 밀어 넣는다. 실명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상호 비난이나 불편함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우려가 생기면서, 오히려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가 굳어지면 실명 대화에서는 주요 이슈가 다루어지지 않고, 익명의 공간에만 불만과 비판이 쌓이는 왜곡된 소통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는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조직 전체의 문제 해결 능력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건강한 소통 문화를 방해하게 된다.
약점은 버리고 강점 강화를 하라면서요?
세상에 전해지는 대부분의 조언은 일반화되어 적용되기 쉽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을 때도 많다. 대표적으로 ‘강점을 강화하라, 약점은 버려라’는 조언이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강점을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강점만 강화한다고 해서 항상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는 영역에서는 약점의 보완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자들이 보완해온 부분에서 격차가 생기고, 이는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강점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약점을 보완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문제는 약점의 보완이 강점 강화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약점이란 대부분의 경우 자신에게 맞지 않거나 능숙하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더 큰 투자를 요구한다. 특히 경쟁이 극심해진 환경에서 효율성이 낮은 작업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스스로 리스크를 높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선택은 바로 약점을 외주화하거나 위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디테일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중요한 경우라도 그 디테일이 목표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해당 작업을 맡을 담당자가 이미 디테일에 강점이 있는 경우라면 이를 위임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반면, 그 디테일이 목표 성과에 큰 영향을 주거나 이를 담당할 인력조차도 디테일에 강점이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약점을 외주화해 에너지를 덜어내고, 자신이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결론적으로,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최소화하라는 조언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경쟁이 극심하고, 더 완벽한 준비가 요구되는 상황이 도래할 때, 약점은 오히려 리스크가 되기 쉽다. 따라서 약점의 보완이 중요해지는 시점에서는 직접 보완하기보다는 외주화를 통해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몰입, 일상의 모든 순간을 바꾸는 힘
몰입은 단순히 특정 일을 할 때만 필요한 특별한 상태가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몰입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인형의 눈알을 붙이는 단순한 작업조차 온전히 집중해 몰입할 때, 그 작업의 깊이가 달라지고, 진정한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몰입은 일의 종류나 난이도와 무관하게,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일에 어떻게 몰입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도 달라진다.
몰입의 경험이 주는 만족감은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과는 다르다. 몰입은 집중이 주는 몰입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글을 쓰거나 사진을 편집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것처럼, 몰입의 순간은 고요하면서도 깊은 만족을 준다. 그 순간의 경험은 신체적으로 피로감을 남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취감과 충실한 포만감으로 채워진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넘어, 몰입을 통해 우리는 더 큰 의미와 가치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몰입을 방해받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책 ‘도둑맞은 집중력’이 지적하듯, 우리의 주의력은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빼앗기고 있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 끝없이 울리는 알림은 우리의 관심을 갈라 놓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려는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몰입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도 그 도달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낀다. 몰입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분산시키려는 수많은 자극을 의식적으로 차단해야 하기에, 몰입의 과정은 이제 더욱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에서 강조하는 진정한 성장은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깊은 몰입의 순간을 쌓아가면서 이루어진다. 시간이 쌓이는 동안에도 집중이 흩어져 있다면, 그 시간은 양적으로만 의미가 있을 뿐 질적인 성과는 따라오지 않는다. 몰입된 상태에서 경험하는 시간은 더욱 큰 성취와 성장으로 이어진다. 몰입이 필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작은 작업에서조차 몰입을 통해 우리는 일의 깊이를 발견하고, 그 순간의 진정한 기쁨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몰입을 통해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진정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몰입의 경험은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고, 나아가 우리 자신을 충실히 쌓아올린다.
더 이상의 빠른 표범이 사라지는 시대
생산성의 향상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는 경쟁을 심화시키며 더 나은 삶을 약속했지만, 정작 그로 인한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더 빠른 가젤이 포식자의 위협을 피하려 진화하듯, 그 가젤을 잡기 위해 더 빠른 표범이 등장하고, 이보다 더 빠르게 도망치는 가젤이 다시 나타난다. 끝없이 순환하는 이 경쟁 속에서 서로는 서로의 한계를 끌어올리며 발전을 거듭하지만, 그 과정은 어느덧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전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 상황은 마치 군비 경쟁처럼, 한쪽의 발전이 상대방의 발전을 불러오며 본질적으로 나아질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해버린 것이다. 개인의 생산성은 계속해서 증가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삶의 여유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산성은 본래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의 행복과 만족이라면, 생산성의 향상이 그 목표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경쟁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AGI(인공지능 일반)의 등장으로 인간의 생산성은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생산성 경쟁을 주도하던 인간이 더는 AGI의 효율성에 필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인간이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 또한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다가오는 AGI 시대에는 생산성조차도 인간의 영역이 아닌 기계의 몫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더 이상 ‘생산성’이라는 잣대로 평가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할 때, 인간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각자가 지닌 고유한 특별함에 있다.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관심사와 열정을 통해 특별함을 발휘하고자 할 것이며, 이런 특별함을 서로 공유하며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때의 특별함은 단순히 성과나 성취의 기준이 아닌, 개인이 지닌 독특함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생산성 중심의 인간관계가 아닌, 관심과 취향에 따라 만들어진 인간관계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제공할 것이다. 이제 인간은 성과나 효율성에서 자유로워져 각자의 정체성에 기반한 네트워크 속에서 연결된다. 성과가 흔들릴 때마다 불안정해지는 기존의 소속감과 달리, 정체성에 기반한 소속감은 훨씬 더 끈끈하고 안정적이다. 각자가 지닌 정체성과 고유성을 중심으로 얻게 되는 소속감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하며, 인간은 그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이처럼 AGI 시대가 도래한다면, 인간은 본래의 인간다움을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고 강화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일 수 있다. 각자의 고유한 가치와 열정을 표현하며 안정적인 공동체 속에서 인정받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생산성 중심 사회가 제공하지 못했던 진정한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실현할 가능성 중 하나로 떠오른다. AGI 시대가 본격화되며 지금껏 놓쳐온 인간다움의 본질이 회복될지, 우리는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