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을 자유
이천 롯데 아울렛에 갔다. 여느 때처럼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정장 차림의 앳되어 보이는 여자 사람이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으시는거냐 물었다. 나는 여기는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장소인지 되물었다. 그랬더니 그건 아니라고 하면서 하늘을 찍은거냐고 물었다. 나는 하늘을 찍은게 아닌데, 이 장소는 사진 찍는게 안되는 곳이냐 다시 물었다. 안전요원은 그게 아니고 다른 의도를 가지고 촬영을 하실 수도 있어서... 하였다. 내가 다시 어떤 다른 의도를 말하는건지 물었다. 안전요원은 몸둘 바를 모른채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렇게 당황할꺼면 애초에 왜 말을 건 것일까. 이 사건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우리나라 특성상 카메라의 시야에 노출되는 것을 비정상적으로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건 2000년대 초 SLR 클럽을 비롯한 여러 사진 애호가들이 커다랗고 시커먼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뭐라도 되는양 행세하며 눈살 찌푸리는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일 수 있다. 성추행 등의 불미스러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사진을 찍을 권리가 박해 받아서는 안된다. 공공장소에서 특정 인물을 특정하지 않으면 나는 그 장면을 찍을 권리가 있다. 그건 내 눈으로 장면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전요원으로서 뭔가 임무를 수행하고 싶었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안전요원의 행동은 여러가지 면에서 실수다. 내가 범법행위를 저지른다고 생각했다면,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서 나를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고, 그런 결정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쇼핑 중인 고객을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의심했으면 안된다. 아니, 의심해도 되지만 나에게 그 생각을 들켜서는 안된다. 언제나 당당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프레임은 중요하다. "뭘 찍으시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내가 뭘 찍는다고 답할 의무는 없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는 사진 찍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곳인가요?"라는 말로 되받아친 것이다.
나의 사진은
비비안 마이어는 사후에 필름 뭉치가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고, 사울 레이터 역시 당대에는 유명해지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사후에 내가 찍어놓은 수천장의 사진이 유명해 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라고 봐야지.
거미와 동네 옷가게
산책을 하다 보면 커다란 거미줄이 꽤 자주 보인다. 촘촘히 짜여진 거미줄의 가운데는 노란배에 검은색 가로줄이 있는 거미가 앉아 있다. 커다란 거미줄을 보면서 저것을 만드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람에 찢어질 수도 있고, 비가 내리면 다 망가질 수도 있을텐데, 그 때마다 거미는 힘든 보수 공사를 해야 할 것이다. 이 넓은 공원에서 거미줄에 벌레가 걸릴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 그 때까지 거미는 굶주린 채로 인내해야 하겠지.
거미를 보다가 갑자기 동네옷가게가 떠올랐다. 전통시장의 골목에 허름한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옷가게가 있다. 무척이나 화려하지만 유행이 지나버린 것 같은 다양한 옷들이 옷걸이에 걸려있다. 알록달록한 무늬를 보면 거미줄 가운데 있는 거미가 떠오른다. 과연 이 허름한 옷가게에는 옷을 사는 사람들이 오기는 올까. 옷을 몇 개 팔면 먹고 살 정도로 벌 수 있을까. 그 자리에 앉아서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옷가게 주인의 운명은 거미줄 가운데 있는 거미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저런 주제 넘은 걱정을 하다가 현실을 떠올려 보았다. 거미가 죽지 않고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은 가끔씩 덫에 걸려드는 벌레가 있다는 것일테고, 옷가게 주인이 임대료를 지불하고 옷을 전시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가 먹고 살만큼 옷을 사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임대료를 낼 필요가 없는 건물주이든가.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몬 카스테라
길을 걷다가 불현듯 배가 고파져 주위를 둘러보고 가장 가깝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빵집으로 들어간다. 주위에는 많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바쁜듯이 그 앞을 지나다닌다. 이곳은 버스터미널 같은 느낌이 든다. 멈춰있는 사람보다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다. 밀어야 할지 당겨야 할지 모르는 쇠문을 밀고 빵집 안으로 들어간다. 빵을 팔고 있지만 손님이 올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빵집 주인이 슬쩍 쳐다보고는 이내 하던 일을 계속한다. 가게 안을 한 번 스윽 둘러본다. 구석자리에는 중년 여성 둘이 언제 시켰는지 모를 커피를 사이에 두고 수다에 열중하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 혼자만 서있는 주목받는 느낌을 오래 견딜 수가 없어 진열대 위의 빵을 하나 집어든다. 빵은 갈색인지 검은색인지 모를 색에 스펀지 같은 구멍이 있다. 빵을 하나 들고서 따뜻한 커피를 주문한다. 쓴맛 밖에 느낄 수 없는 몹쓸 아메리카노가 나오기 전이다.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작은 테이블에 빵을 두고 오래 앉기는 힘든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기다린다. 배가 고파 빵을 먹고 싶지만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린다. 커피와 함께 먹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빵집 주인은 테이블로 커피를 가져다 준다. 커피에는 크림과 설탕이 적절히 섞여 부드러운 실크같은 색이다. 이제야 빵을 한 입 베어문다. 빵의 살결에 이가 파고들어가는 시간을 최대한 끌어본다. 폭신한 식감이 다가오며 단맛이 느껴진다. 단맛 뒤에 쌉쌀한 시나몬의 맛이 따라온다. 내가 무심결에 집어든 벽돌 같은 빵은 시나몬 카스테라 조각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폭신한 빵의 조직 사이사이로 커피가 스며들며 빵을 스르르 녹인다. 카스테라와 따뜻한 커피의 조합을 발견하고 신은 스스로에게 얼마나 만족했을까. 빵집에는 별다른 볼일이 없었으므로 카스테라와 커피를 다 먹자마자 문을 열고 나온다. 나는 다시 분주한 거리의 일원이 되어 다리를 바쁘게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