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노스 리더십을 좋아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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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들은 하늘에서 왕이 내려오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들 스스로 리더 역할을 맡고자 하는 개구리는 없었고, 다만 외부에서 자신들을 이끌어 줄 강력한 리더가 나타나기를 바랐을 뿐이다. 신이 내려준 첫 번째 리더인 나무 기둥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자, 개구리들은 다시 리더를 바꿔달라고 요청했고, 이번엔 자신들을 잡아먹기 시작한 황새와 마주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대중이 스스로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 외부에서 내려온 리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심리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기보다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강력한 리더를 원하며, 이로 인해 결정을 미룰 수 있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그러나 리더십에 대한 이런 인식 부족은 오히려 개인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마블 코믹스의 타노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우주의 자원이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생명체 절반을 제거함으로써,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려 한다. 타노스의 이러한 계획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전체 우주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은 무시된다. 결국 강력한 리더가 대중의 바람대로 대의를 위해 잔혹한 결정을 내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무방비 상태의 개인에게 돌아가게 된다.
스스로 선택하기를 회피하고 리더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자 하는 대중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고통을 간과하게 만든다. 결국, 아무리 집단의 이득이 커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개인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이다. 이 딜레마는 전체와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잘 보여주며, 대중이 원하는 잔혹한 리더가 만들어 내는 최선의 결과가 반드시 모두에게 최선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회사에서 나만 제정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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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부재할 때, 내부 갈등과 비효율이 심화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마치 주인이 통제하지 않는 여러 마리의 개들이 서로 다투듯이, 회사에서도 리더십이 약화되면 구성원들은 각자의 방어적 자세를 강화하고 불필요한 정치적 행동에 휘말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견제하고, 중요한 대화나 결정을 할 때마다 증거를 남기려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조직은 점점 더 비효율적으로 변해간다. 업무와 결정 과정이 복잡해지고, 구성원들이 본래 역할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지와 안전을 지키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기 시작한다.
이처럼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조직의 신뢰가 무너지고 방어적 분위기가 확산되면, 소통은 더욱 어려워지고 업무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더는 일관성 있는 원칙을 지키고 구성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조직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리더십의 원칙은 작은 것이라도 하나가 무너지면 ‘깨진 유리창 효과’처럼 전체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 작은 원칙이라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의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다른 원칙도 의미를 잃기 시작하고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리더십 철학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비자는 인간 본성의 이기심을 전제로 규율과 법도를 통해 조직을 운영하는 것을 강조했으며, 마키아벨리는 필요할 때 냉철하게 결단을 내려 조직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리더십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며, 작은 원칙이라도 일관성 있게 지키고 실천하는 데서 조직의 신뢰와 질서가 나온다.
이때 강한 원칙이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지만, 사실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원칙 그 자체가 아니라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지 못하는 데 있다. 리더는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을 설정하고, 이를 지키는 모습을 통해 조직의 신뢰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만약 현재의 원칙이 구성원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리더는 필요에 따라 새로운 원칙을 설정하여 신뢰를 다시 세워야 한다.
결국 리더의 역할은 조직을 단순히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안정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리더의 방향성에 자발적으로 공감하고 이해할 때, 조직은 방어적 태도를 버리고 협력적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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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역할을 맡다 보면 종종 조직의 소속감과 영향력 사이에서 딜레마를 느끼게 된다. 특히 여러 팀에 걸친 전사적 전략과 개선을 담당하는 역할일수록, 해당 팀들이 업무 상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이 잦다. 이는 팀마다 각자의 목표와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해당 팀의 사각지대를 짚어내고 문제 해결을 제안할 경우, 이를 비판으로 받아들이며 방어적인 태도로 응대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러한 상황은 역할 특성상 빈번하게 발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넓은 범위를 다루는 역할과 특정 팀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에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 특정 팀에 속할 경우, 목표와 성과를 공유하는 동료들과 응집력 있는 관계를 형성하며 협력할 수 있다. 이러한 조직 내 유대감과 신뢰는 동료들과의 협력에서 오는 동기 부여와 함께 효율적인 성과를 창출하게 된다. 반면, 여러 팀을 아우르는 전사적 역할에서는 개별 팀과의 유대보다는 조직 전체의 성과와 개선에 중점을 둬야 한다. 이로 인해 특정 팀의 협력과 신뢰를 얻기보다는 각 팀의 반발과 방어적 태도에 직면할 확률이 높아지며,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더 큰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수행할 때는 개인적으로도 특정 태도와 전략이 요구된다. 첫째로, 방어적인 반응을 개인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역할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어적인 태도는 그 자체로 업무를 향한 반발이자 조직의 특성에서 오는 현상일 뿐,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는 분리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업무 상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일상적으로 업무의 목표와 성과에만 집중하려는 태도가 도움이 된다. 개인적인 인정이나 평판보다는 전사적 관점에서 목표 달성과 문제 해결을 중시함으로써, 감정적 피로를 줄이고 일관성 있는 업무 접근이 가능해진다. 이때 최대한 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되 방어적인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방향으로 스스로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역할의 특성상 상사나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조직 관리의 특성상, 각 팀의 반응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자칫 관계 관리의 부족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사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내외적인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대한 확신이 중요해진다.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일관된 접근 방식을 통해 해당 목표를 추진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다.
궁극적으로, 조직 내 여러 팀과의 관계를 관리하며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역할은 지속적인 마음의 무장과 목표 의식이 필요하다. 역할에 대한 불필요한 감정적 반응을 배제하고, 보다 중립적이며 협력적인 태도로 업무에 집중하려는 자세가 도움이 된다.
나는 솔로에서 보는 존재와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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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를 즐겨보며 사람들의 성향과 본성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이성에게 호감을 얻고자 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작은 사회실험처럼 보인다. 프로그램 속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가 흥미롭다. 하지만 최근 한 출연자의 범죄 이력이 촬영 이후에 밝혀져, 방송에서 해당 출연자의 모든 장면을 편집하고 그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든 사건이 있었다. 이를 보면서 단순히 연애 관찰을 넘어선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로 다가온 깨달음은, 사람의 존재가 타인의 인식에 따라 쉽게 지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사회 속에서 우리가 관계를 맺고 인식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켰다. 누군가가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존재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인식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와 시선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다. 프로그램 편집을 통해 특정 인물이 완벽히 사라진 모습을 보며, 실생활에서도 특정한 목적이나 관심의 부재로 인해 쉽게 누군가가 ‘투명인간’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방송 편집과 조작의 강력함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화면에 비치는 모습은 철저히 제작자가 선택한 일부에 불과하다. 이는 내가 사진을 찍으며 프레임을 정하는 과정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실제 현실에는 수많은 복잡한 요소가 존재하지만, 그 중 무엇을 담고 무엇을 생략할지는 모두 촬영자와 편집자의 주도권에 달려 있다. 방송이 선택적으로 편집한 세상이 마치 현실의 전부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가 얼마나 강력하게 사람들의 시각을 통제하고 조작할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 두 가지 관점은 내가 ‘나는 솔로’를 보는 재미에 또 다른 의미를 더해주었다. 프로그램 속 인간의 본성을 관찰하는 흥미뿐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존재와 인식, 그리고 미디어의 영향력까지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 생긴 것이다.
이 모든 기능들이 다 필요할까?
예상치 못한 일정 지연이 발생했다. 사용자 유입을 위해 2주 내 출시해야 할 바이럴 이벤트가, 새로 추가된 보상 시스템 때문에 한 달 이상 걸릴 수 있다는 개발팀의 피드백이 돌아온 것이다. 이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모든 기능을 한 번에 담으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핵심 목표에 맞춰 릴리즈를 쪼개는 것이었다.
릴리즈를 쪼갠다는 것은 곧 전달할 가치를 독립적으로 분리하는 일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우선시할 가치는 빠른 유입 창출로, 사용자 초대 보상 기능은 후순위에 놓아도 무방했다. 이를 바탕으로 팀을 설득하기 위해 세 가지 주요 포인트를 제시했다. 첫째,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는 재화 보상이 아닌 유입 촉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초대 보상 기능 역시 중요했지만, 당장 이벤트를 시작해 유저를 유입하는 것이 훨씬 시급한 목표였다. 둘째, 이번 프로젝트는 단발성 이벤트이기 때문에 완벽한 아키텍처가 필수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번 이벤트는 2~3번 정도 실행될 임시 성격의 시스템이므로 초기부터 모든 기능을 세트로 구현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셋째, 보상 기능의 릴리즈는 이벤트와 병렬로 진행해도 큰 리스크가 없음을 강조했다. 초대자 보상 시점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이벤트 정책을 통해 유저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어 목표 달성에는 지장이 없었다.
명확하고 논리적인 이 접근법에 팀은 쉽게 수긍했다. 당초 모든 기능을 한 번에 포함한 릴리즈를 계획했던 관성에서 벗어나, 목표 중심의 단계적 릴리즈 방안으로 전환하자는 설명에 반발 없이 동의가 이루어졌다. 덕분에 이벤트는 예정대로 출시되어 빠르게 유입 효과를 시도할 수 있었고, 초대자 보상 시스템은 병행 개발로 후속 릴리즈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프로젝트의 디펜던시를 과감히 분리하고 본질적인 목표에 집중한 덕분에 우리는 복잡한 일정 속에서도 핵심 가치를 우선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침팬치 폴리틱스와 우리의 정치
최근 유시민 작가가 소개한 ‘침팬지 폴리틱스’를 읽었다. 침팬지 사회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을 관찰한 이 책은 인간과 침팬지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권력의 상층부에 올라선 개체는 끝없는 불안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 하고, 그 바로 아래 위치한 2위는 기회만 생기면 1위를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 단순하고도 치열한 구도는 인간 사회의 권력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특히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저마다 취하는 ‘우쭐 과시’ 행동이 흥미로운데, 회사에서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이 처음 만난 상대에게 반말을 하고 지시를 내리거나, 나이를 앞세워 권위를 행사하려는 모습이 그 대표적 사례다.
침팬지 사회에서 1위 개체가 자신을 더 크고 위협적으로 보이게 하며 경쟁자를 압도하려는 행동은 단순히 힘을 과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상대방의 도전 의지를 꺾고 자신의 자리를 더욱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권력 과시는 인간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생존의 도구가 아닌 지능이 만들어낸 복잡한 권력 욕구의 표현이다.
침팬지 폴리틱스를 읽으면서 인간의 정치가 독특하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라,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장 내의 정치도 조금은 다르게 보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권력 다툼을 오히려 조금은 떨어져서 게임처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서로 지위를 과시하거나 권력을 얻기 위해 줄다리기를 벌이는 모습을 더 이상 피곤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높은 지능을 가진 사회에서는 이런 정치적 행동이 자연스럽게 벌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이 다툼의 한가운데서도 한 발 물러나 상황을 조금 더 즐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처럼 지위에 대한 갈망과 불안이 갈등을 부른다는 점은, 인간의 국제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투키디데스가 설명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떠올리게 한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며 기존 강대국의 자리를 위협할 때 필연적으로 갈등과 전쟁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기존의 강대국은 자신의 지배적 위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더 과감하게 자신을 과시하고 방어 태세를 강화하며, 반대로 신흥 강국은 이러한 방어를 뚫기 위해 더욱 공격적으로 도전한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안을 점점 키워가며 결국 충돌에 이르게 된다.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보여주는 권력 다툼 역시 마찬가지다. 1위와 2위라는 위치만으로도 발생하는 갈등은, 개인의 생존을 넘어서 더 높은 지능과 결합된 권력의 본능적 갈망으로 인해 멈추지 않는 싸움으로 번진다. 지능이 높은 개체일수록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커지며, 이는 침팬지와 인간 사회 모두에서 같은 양상으로 반복된다. 권력의 상층부에 올라서는 순간, 강자는 자신을 과시하며 자리를 유지하고, 도전자는 끊임없이 그 자리를 넘보게 된다.
결국 침팬지와 인간 모두에서 권력 구조는 단순한 자원을 넘어선 상징적 의미를 가지며, 이는 단순한 경쟁 이상의 심리적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보듯이, 사회적 위치에 대한 욕망과 불안이 존재하는 한, 갈등의 순환은 개인과 집단을 넘어 멈추지 않고 반복될 것이다.
흰가운과 야광조끼가 가지는 동일한 마법
오늘 아침 출근길, 아파트에서 경비 아저씨가 교통을 관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신호등이 바뀌었는데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차를 지나가게 하는 그의 손짓에 나는 잠시 의문이 들었다. ‘왜 저렇게 뒤 상황을 보지 않고 지시를 내리지?’ 그 순간 나는 무심코 사람들이 그 지시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의문을 넘어서, 사람들은 왜 권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특정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걸까? 그 의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많은 권위를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각적인 요소는 권위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주차 안내요원의 손에 들린 빨간 안내봉만 보아도 우리는 그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전문가라고 쉽게 믿어버린다. 실제로 그는 하루 아르바이트생일지도 모르고, 교통 흐름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만, 우리는 그가 들고 있는 아이템 하나만으로 그의 권위를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야광조끼 효과라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콘서트장이나 운동 경기장 같은 장소에서 야광조끼를 입고 있으면 사람들은 그가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동으로 생각하고, 별다른 의심 없이 통과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야광조끼라는 시각적 신호가 그 사람의 자격이나 역할에 대해 선입견을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 야광조끼를 보고 무조건 ‘공사 관계자다’라고 단정 짓고,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진짜 역할이나 자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일은 드물다.
의사의 하얀 가운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사람들은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가 실제로 의사인지, 혹은 얼마나 숙련된 전문가인지에 대한 검증 없이, 그저 가운 하나로 전문성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 아이템은 사람들에게 그 사람이 전문가임을 믿게 하고, 그 신뢰는 곧 선입견으로 굳어진다.
다니엘 카너먼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는 사람들이 ‘빠르게 생각하는 뇌’로 일상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깊이 고민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선입견과 직관에 의존해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주차 요원의 안내봉, 야광조끼, 의사의 흰 가운이 모두 그러한 빠른 결정을 돕는 시각적 요소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권위가 진짜로 신뢰할 만한지 판단하지 않고 그저 따르게 되는 데 있다. 그 순간에 잘못된 권위에 의존한 결정이 결국 큰 리스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권위를 따르는지 보여준다. 주차 안내요원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나, 의사의 말에 무조건 신뢰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권위에 의존하고 싶은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 권위가 진짜로 적절한지 검증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늘 옳은 선택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권위에 대해 의심하는 습관을 기르는 일이다. 주차 요원의 지시도, 의사의 말도, 심지어 야광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의 행동조차도 그 자체로 절대적인 권위일 수는 없다. 우리는 그 권위가 적절한지, 그 지시가 합리적인지 늘 한 번 더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불필요한 위험을 줄이고, 잘못된 결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쓰는 과정은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나는 특정 사건이나 감정에 자극받아 즉흥적으로 내 생각을 풀어놓는다. 그만큼 당시의 나는 감정과 사고가 증폭된 상태라서 평소보다 편향된 시각에서 글을 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감정이 시간이 지나 가라앉고, 생각이 차분히 정리된 후에 다시 그 글을 읽어보면, 마치 제3자의 시선으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느낀 감정과 사고를 거리를 두고 평가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런 점에서 글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도구다.
물론 당시의 내가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럽게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특정한 상황을 지나치게 일반화했다는 점에서 논리적인 비약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글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생생한 감정과 사고를 다시 차분한 상태에서 크로스체크하는 과정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글을 다시 읽는 일은 나에게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다.
글을 쓰는 동기는 주로 내가 실제로 겪은 사건들에서 온다. 사건에서 받은 감정이나 생각이 번뜩 떠오를 때, 나는 그 순간의 감정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그리고 무미건조한 느낌으로 글로 풀어낸다. 글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통찰이다. 감정이 넘쳐나는 순간에도, 나는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이 특별히 발전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 나의 성향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나에게 큰 카타르시스를 준다. 내 머릿속의 생각과 감정을 논리적으로 풀어놓으면서 느끼는 해방감이 글을 쓰는 주된 이유다. 글을 다 쓰고 나면 특별한 감정이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완결 자체가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쓰는 그 과정에서 감정이 흘러가고, 생각이 정리되는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며 나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는 순간, 나는 글을 쓰는 행위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낀다.
내가 나서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들
나는 성격이 급하고, 업무 처리 속도가 빠른 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속도를 기다리는 것이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내가 1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담당자가 하루가 지나도 피드백을 주지 않을 때는 속이 타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도 모르게 담당자의 몫을 대신 처리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너십이라는 것은 매우 묘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누군가가 대신 나서서 처리하게 되면, 담당자가 그 일에 대해 오너십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는 특히 일정이 빡빡한 상황에서 더 크게 다가온다. 일의 흐름이 지연될 때마다 나는 그 일에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관여할수록 담당자의 책임감은 약해지고, 장기적으로 위임이 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나서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결국 시간 지연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누군가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제공하지 않으면, 그 딜레이가 누적되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가장 큰 것이다.
나는 나에게 오는 질문에 대해 거의 1분 내로 답을 주는 편이다. 하지만 다른 담당자들은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답답함이 더 커진다. 매니저라면 자기가 생각하던 일을 멈추고, 누군가 요청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업무의 흐름이 원활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빠르게 피드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동안 이런 답답함을 참아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몫이라고 여겨왔다.
내가 1분 만에 답하지 않으면, 담당자가 5분 안에 답했을 수도 있다. 기다리는 것이 담당자의 오너십을 지켜주고,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참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특히 타이트한 일정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답답함이 더 커지는데, 이럴 때 마지노선을 두고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적어도 1시간 정도 기다려보고, 그 이후에 개입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담당자가 스스로 처리하는 것은 오너십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스스로 해결한 경험은 담당자가 다음에도 더 능동적으로 일하게 만들고, 결국 더 나은 협업과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담당자의 성장을 도울 수 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직 전체의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당장의 답답함을 참는 것이 결국 더 큰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제복은 멋있어
어릴 때는 제복이 멋있게 보였다. 보이스카우트나 학창 시절 교복처럼, 제복을 입으면 특별한 소속감이 느껴졌고, 친구들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의 제복은 단지 옷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나를 어떤 그룹에 속하게 해주고, 그 속에서 안정감을 주는 보호막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제복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운전을 하다 교통 경찰이 제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제복은 이제 더 이상 단순히 멋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속에는 무거운 책임과 함께 제약이 담겨 있었다. 제복을 입는다는 것은 그 조직의 규칙과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어릴 적에는 그저 멋져 보였던 제복이, 이제는 종속감을 상징하는 도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요즘 직장에서 정장을 덜 입는다고 해서 이런 소속감과 책임의 구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원증, 명함, 직함 같은 것이 오늘날의 직장인들에게는 제복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명함을 내밀 때, 그 사람은 단순히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 조직의 일원으로 행동하게 된다. 사원증은 소속감을 주는 동시에, 그 조직의 규율과 기대를 따르도록 만든다. 명함 역시 그 사람의 역할과 책임을 대변하며, 그 순간 상대방과 조직의 대표로 마주하게 한다.
정장이 그랬듯, 사원증이나 명함도 직장인들에게는 단순한 상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들은 소속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책임과 종속성을 함께 부여한다. 회사의 이름이 적힌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는 동안에는 회사의 일원으로서 행동해야 하고, 명함을 건넬 때는 조직의 얼굴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따른다.
결국 제복이든 정장이든, 사원증이든 명함이든 모두 소속과 종속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부심과 안정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은 일정 부분 제약받는다. 어릴 적에는 그저 제복의 겉모습만 보았지만, 이제는 그 이면에 담긴 책임과 압박을 더 분명하게 느낀다.
직장 생활에서 사원증과 명함을 마주할 때마다, 그것이 나에게 요구하는 기대와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은 상징물들이 나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 속에서 나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어쩌면 오늘날의 제복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