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논리에 밀린 초기 스타트업 문화
회사의 문화가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때로는 힘든 도전이 되곤 한다. 작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회사가 커지면서, 초기의 자유롭고 독창적인 분위기는 점차 퇴색되고, 외부에서 유입된 새로운 기준들이 자리를 차지해 나간다. 특히 외국인 A가 회사를 비롯한 여러 외국계 직원들과 함께 들어오면서 기존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되었고, A는 ‘글로벌 표준’이라는 기준으로 회사의 모든 것을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A는 회사 위키페이지에 붙여진 여자 아이돌 사진을 문제 삼으며,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일반적인 회사 상황에서 아이돌 사진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는 처음부터 자유로운 분위기로 시작해 왔고, 이러한 변화는 외부의 시각이 아닌, 직원들 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A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아이돌 사진이 부적절할 수 있지만, 과도하게 성적인 의미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편협하다고 느꼈다. A와 논쟁을 벌이면서 제시한 논점 중 하나는 문신에 대한 것이었다. A는 아이돌 사진을 문제시했으나, 동시에 한국 문화에서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문신을 개인의 취향이라며 합리화했다. 문화라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배경과 가치관이 혼합된 상대적인 것이기에, 한쪽의 기준을 ‘글로벌 표준’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오히려 폭력적이라 생각되었다. 회사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성과 합의를 바탕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A는 자신의 문화적 우위를 전제로 강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불편함은 어느 날 슬랙의 공개 채널에서 논쟁으로 이어졌다. 회사 전체에 이 문제가 개인 간의 갈등을 넘어서는 중요한 문화적 이슈임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외국계 직원들이 점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회사의 기득권층이 그들로 바뀌면서, 결국 초기의 문화와 정체성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 HR에서는 외국인 A의 요청으로 아이돌 사진을 내리라는 공식 공지를 내렸고, 그 순간 초기의 스타트업 정신을 지키려던 노력은 힘의 논리 앞에 무너졌다. 그렇게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면서,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이 경험은 문화의 차이가 단순히 개인의 호불호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관계 속에서 다양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음을 느끼게 했다.
차장이 더 이상 화내지 못한 이유
한 차장이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의 첫 회의가 열렸다. 그는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오래 일했던 터라, 직원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충분히 드러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날 회의 중 대리 두 명이 실수하자 차장은 이유가 가벼운 문제에도 예전처럼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강하게 지적하기 시작했다. 순간 회의실은 조용해졌지만, 보통 상사의 다그침에 위축될 법한 이 분위기 속에서 한 대리가 차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차장님, 왜 그러세요?”
그 예상치 못한 반응에 차장은 잠시 당황한 듯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한참을 말을 멈추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또 다른 대리마저 미묘한 동의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대리들은 차장의 권위적인 태도에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상황을 넘어선 차장의 급발진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차장은 결국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했고, 이후로는 자신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누그러뜨렸다.
이 경험은 개인의 성향이나 과거 경험이 회사의 문화에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차장이 예전 회사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권위적 방식은 여기서는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 속에서 그런 방식이 묵살되면서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조직 문화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조직 내에서 구성원의 성향은 단순히 개인적인 특성에 머물지 않고, 그가 경험해온 환경과 회사의 문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전의 보수적인 문화에서는 차장의 방식이 권위 있는 리더십으로 받아들여졌겠지만, 평등을 중시하는 새로운 문화 속에서 차장의 방식은 오히려 부적절하고 과한 것으로 비쳤던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성향이나 태도는 어떤 특정한 문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교정될 수 있다. 자유롭고 열린 분위기가 자리 잡힌 조직은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책임감을 가지며 소통하게 만든다. 또한 이런 올바른 문화는 조직 내 부정적인 경향성을 가진 사람들조차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어쩌면 기업 문화는 단순히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나 분위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문화가 올바르다면 구성원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경험에서 기인한 부정적인 태도마저 변화시키며, 회사 전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 문화는 단지 외형적인 환경이나 일하는 방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올바르고 긍정적인 문화가 있을 때 구성원은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나아가 그 문화를 통해 개인의 고정된 성향을 넘어선 변화까지 가능하게 한다.
내가 답없는 글을 쓰는 이유
세상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고, 해결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남아있는 문제도 많다. 특히 회사 운영이나 조직문화, 거시적인 경제 문제와 같은 큰 주제들에서 우리는 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만을 접하게 된다. 경영 서적이나 전문가들의 논의에서도 종종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정작 마지막에 제시되는 해결책은 공허하게 들릴 때가 많다. 구체적인 방안이 없거나 단순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식의 추상적인 제안들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해결책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관련된 역학관계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채 ‘모두가 합의해야 한다’는 비현실적 전제로 성급히 끝맺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뻔한 결론을 제시하는 대신,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 집중하여 글을 쓰고 있다.
사실, 문제 해결이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문제를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조직문화의 개선이나 경제 문제와 같은 복잡한 영역에서는 해결을 시도하는 순간마다 해결을 막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갈등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된 사람이 조금만 늘어나도 의견 충돌이 발생하며, 문제는 처음보다 훨씬 복잡해진다. 적은 규모의 문제라도 여러 사람의 이해가 얽히기 시작하면 점차 제어하기 어려운 수준의 복잡성으로 확대된다.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것은 어렵고도 긴 과정이다.
더불어 문제 해결의 핵심은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때때로 ‘가짜 노동’을 하고 있다는 문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애초에 불필요한 일에 자원을 쏟아붓는 일이 빈번히 벌어진다. 혹은, 신입사원의 퇴사율이 높아지는데 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주말 등산과 같은 활동을 통해 친목 도모를 시도하는 사례가 있다. 근본 원인을 잘못 짚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화된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해결책을 적용할수록 조직의 피로도는 누적되고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래서 나는 문제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해결의 90%가 이뤄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복잡한 문제들을 앞에 두고 정작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고,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복잡성을 깊이 고민할수록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무리하게 결론을 내기보다는 문제의 인식 단계에 집중해 독자와 고민을 공유하고자 한다.
세상 대부분의 문제는 당장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문제의 본질과 복잡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작점에 설 수 있다면, 때로는 그 인식만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결핍의 심리학
돈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자기 삶에서 결핍된 것일수록 더 자주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돈이 아니라며 계속해서 돈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려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돈을 늘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말 자체는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말을 반복한다면 오히려 돈이라는 대상에 매여 있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반복해서 언급하는 주제는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이라는 해석이 있다. 악플이라도 다는 것이 무플보다는 낫다는 말처럼, 우리는 관심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하지 않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악플이라도 단다면, 그 대상에 대해 적어도 어느 정도의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주제는 그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벌을 계속해서 언급하는 사람은 학벌에 대한 갈망이나, 나아가 학벌을 자신의 결핍으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이나 약점, 혹은 부족함을 거꾸로 과시하려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힘이 있는 사람은 굳이 자신의 힘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작은 강아지가 유난히 크게 짖는 것처럼, 영향력이 크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그와 반대로 진정으로 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아도 그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진짜로 힘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누군지 알아?’ 같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그의 힘과 영향력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이 무엇을 자주 언급하는가 하는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내면의 갈등과 결핍을 반영해 주는지도 모른다. 진짜로 자유로운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그 자유로움이 드러나고, 진짜로 힘 있는 사람은 조용히 있어도 그 영향력이 드러난다.
뒷담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다른 사람이 전하는 내 이야기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 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내 얘기가 타인의 입을 통해 전달되면 본래의 뜻이 그대로 전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는 상대를 배려하며 덧씌웠던 조심성과 예의가 자연스레 사라지기 쉽다. 눈치를 보며 단어를 골라 말하는 대신, 좀 더 직설적이고 강한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이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발화자 본인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전달자의 개입이다. 전달자는 아무리 객관적이려 해도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가치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해석하고 미묘한 노이즈를 더하면서 본래와는 다른 느낌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원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된 얘기가 당사자에게 돌아가기도 한다.
이렇듯 왜곡된 이야기는 본래보다 훨씬 부정적이거나 뜻밖의 의미로 변해 전해지기 쉽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전하는 내 이야기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 말이 처음 의도와는 달리 전해졌을 가능성을 인정하고,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의 평온을 지키는 데 더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굳이 전달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하는 순간, 본의 아니게 내가 느낀 감정이나 해석이 담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원래 뜻을 지키려 노력해도 듣는 이에게는 새로운 해석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 싶다면, 내가 들은 이야기를 굳이 다른 이에게 옮기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새로운 인재에게 과거의 족쇄를 채우는 회사
기업이 핵심 인재를 채용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 그 원인은 종종 조직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핵심 인재는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새로운 접근과 혁신적 방식을 통해 변화를 이끌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이들의 역량을 온전히 활용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방식을 효율화하는 데 그치기를 기대한다면, 그 인재는 시스템 안에 갇혀 본연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다. 시스템이 기존 방식의 답습을 강요하는 환경이라면, 새로운 인재가 들어와도 결국은 그 한계 안에서만 활동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허용하는 수준에 맞추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다면 핵심 인재가 지닌 혁신적 사고와 기획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이 기대하는 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결국, 이렇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스템 하에서는 핵심 인재가 오히려 기존 직원과 같은 수준으로 머물게 되고, 회사의 성장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시스템적 한계로 인해 핵심 인재는 좌절감에 빠지며, 조직에서의 성취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는 그들의 동기를 떨어뜨리고, 조직에 머무르는 기간을 단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이러한 환경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구성원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회사는 기존의 방식과 관행을 강화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는 혁신적인 성과보다는 정체된 문화와 비효율만을 반복하게 되고, 내부 문제는 점차 외부로 드러나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회사를 외면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설령 새로운 인재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이러한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는 같은 한계에 부딪혀 결국 이탈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스템 한계를 과감히 극복하고 새로운 인재가 조직 내에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고착된 문화와 기존의 시스템 하에서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조직이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문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보편적 문제 해결의 열쇠: 유저스토리와 잡스토리의 차이
잡스토리는 유저스토리와 달리 특정한 페르소나나 개별 경험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과 컨텍스트를 기반으로 문제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더 큰 강점을 가진다.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에서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예측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잡스토리의 장점을 설명하는 데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사람은 각기 다른 배경과 환경에 있지만 결국 유사한 상황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패턴화된 행동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의 가치를 생각하는 단계에서는 특정 페르소나의 사례에 집중하기보다는, 범용적인 상황과 고통을 다룰 수 있는 잡스토리의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유저스토리에서는 20대 여성이 온라인 쇼핑을 할 때 겪는 특정 경험을 다룬다고 가정해보자. 유저스토리에서 다룬 이 구체적인 사례는 30대 남성, 혹은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에게는 쉽게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잡스토리의 형식을 빌려 “온라인 쇼핑 고객은 제시간에 배송되지 않을 때 불만을 느낀다”는 식으로 풀어내면 특정한 연령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고객의 보편적인 페인포인트에 주목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보다 넓은 사용자 층이 공유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가치 제안을 설계할 수 있다. 결국 유저스토리는 구체적인 페르소나의 맥락 안에서 제품의 피처 설계에 유용할 수 있지만, 보편적인 문제 해결과 제품의 가치 창출을 위한 기초는 잡스토리에서 시작하는 편이 더 적합하다.
제품의 가치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특정 유저의 독특한 경험에 치우치기보다는 공통적인 상황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일반화할 때, 고객이 실제로 느끼는 고통을 해소하는 데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잡스토리는 이러한 공통적 페인포인트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 더욱 강력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원칙이 원칙이라 불리는 이유
오나라의 왕 합려는 손무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궁녀들을 대상으로 군사 훈련을 시켜 보라고 지시했다. 손무는 180명의 궁녀들을 두 부대로 나누고, 합려가 가장 총애하는 궁녀 두 명을 각 부대의 대장으로 임명한 후 간단한 명령 체계를 설명했다. 하지만 첫 훈련이 시작되자 궁녀들은 명령을 장난으로 여기고 웃기만 했고, 손무는 다시 한번 명령 체계를 설명했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결국 손무는 두 부대장 궁녀의 처형을 명령했는데, 합려가 자신의 총애하는 궁녀들을 살려달라고 했으나, 손무는 “장수가 군을 이끄는 중에는 왕명이라도 받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처형이 이루어진 후 궁녀들은 즉각적으로 명령을 따르게 되었다.
손무가 보여준 이 사건은 단순한 처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왕의 명령조차 무시하며 끝까지 원칙을 지켜내려는 손무의 태도는, 규율을 어기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점을 명확히 각인시켰다. 조직의 원칙이 말로만 존재할 때 사람들은 이를 쉽게 무시하지만, 행동으로 일관성 있게 지켜질 때 비로소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작은 원칙이라도 지켜지지 않거나,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아무런 피드백이 없다면 사람들은 즉각 원칙을 무시하게 되고, 이는 원칙을 허울 좋은 구호로 전락시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에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치 않다. 원칙을 정하고 이를 지키게 하는 모니터링 과정이 매우 번거롭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칙을 만든 사람조차 그 원칙을 무시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탓하기만 해서는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는다. 원칙이 조직 내에서 힘을 가지려면, 이를 정하는 주체가 일관성과 지속성을 가지고 스스로 그 원칙을 존중하고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원칙이 단순한 규정이 아닌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이라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때문이다.
조직이 목표를 이루려면 모든 구성원이 같은 방향을 보고 일관되게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크고 작은 원칙들이 흔들림 없이 지켜져야 하고, 그 원칙들이 진정성을 갖춘 상태로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아야 한다. 손무의 경우처럼 작은 원칙이라도 깨지기 시작하면 전체적인 신뢰가 무너지고, 이는 조직의 결속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원칙이 일관된 행동으로 꾸준히 지켜질 때 사람들은 이를 따르게 되며, 그에 따라 목표 달성의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손무가 궁녀들을 훈련하며 보여준 원칙의 중요성은 시대와 상황을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말뿐인 원칙은 한두 번만 깨져도 힘을 잃고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게 된다. 그러나 원칙이 반드시 지켜진다는 믿음이 일관된 행동과 태도로 자리 잡는다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T발 너 C야? T에 대한 오해
T와 F는 공감의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흔히 MBTI에서 사고형 T는 공감을 잘 못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는 오해에 가깝다. F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고자 하는 방식으로 공감을 요구한다면, T는 상황의 흐름과 합리성을 통해 공감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공감을 ‘잘한다, 못한다’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차이다.
F는 감정적 공감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받고자 한다.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F가 기대하는 공감은 자연히 자신의 감정 중심으로 형성된다. 이 방식에서 공감은 본질적으로 ‘나의 감정을 알아주길 바라는’ 행위로 자리잡는다. 따라서 F는 감정의 흐름을 중시하고, 자신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될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로 인해 F는 때로 ‘왜 내 감정을 몰라주는가’라는 불만을 느끼기 쉽고, T의 공감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
반면 T의 공감 방식은 다소 다르다. T는 문제 해결 위주의 사고를 통해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을 표현한다. T에게 공감은 감정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와 상황에 공감하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행위에 가깝다. T는 공감을 단순히 감정적 위로로 끝내지 않고, 문제에 공감하기 때문에 해결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이를테면 어떤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을 도울 때, T는 그저 감정적으로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방식으로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T가 단순히 공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감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차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T가 상황적 해결책을 제시할 때, F는 “내 기분을 왜 몰라주는가”라며 공감의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F 입장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동조해주길 기대하는 반면, T는 문제를 해결할 때 그 사람의 어려움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T는 ‘논리만 앞세우고, 공감을 모른다’는 오해를 사게 된다.
결국 T와 F의 공감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뤄진다. F는 감정에 기반한 공감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이해받고자 하며, 이는 자연히 개인적이다. 반대로 T는 논리와 개연성이 확보된 상황에서 공감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전체 관점을 이해하는 데 집중한다. 이 차이를 단순히 공감의 유무로 판단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감이 작동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T와 F는 각자 방식에 따라 공감을 표현할 뿐, 그 깊이와 진정성에서 부족한 것이 결코 아니다.
변화와 계획 사이: MBTI로 보는 유연성의 기술
MBTI에서 J와 P 성향의 차이는 주로 계획을 선호하는 정도로 설명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계획이 변경될 때의 반응 방식이다. J 성향은 정해진 계획이 틀어질 때 스트레스를 받기 쉽고, 돌발 상황이나 예기치 않은 변화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때가 많다. 반면 P 성향은 변화나 불확실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두 성향은 서로 상반되면서도 각기 필요한 장점을 가진다. 특히 불확실성이 큰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P 성향이 가진 강점이 도드라진다. 변화무쌍한 상황에 민첩하게 반응하며 나름의 해법을 찾아가는 P 성향은 급격히 바뀌는 외부 환경 속에서 일종의 적응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J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이런 환경에 놓이면 외부에서 P처럼 보일 때가 있다.
실제로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계획대로 일이 흘러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원래 J 성향을 가진 사람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P처럼 보일 수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이 본래 가진 성향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게 만들며, 이런 내적 갈등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J 성향의 사람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특히 원래 성향대로라면 계획과 절차에 따라 결과를 만들어가야 할 사람이 지속적으로 돌발 상황에 놓이면, 불가피하게 자신의 성향과 상충하는 행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향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양쪽 성향이 모두 균형 잡힌 태도를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MBTI는 각 성향을 단순히 나누는 도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이 성향들을 조합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훈련하는 데 유용하다. 어느 한쪽 성향에 치우친 채 극단적으로 행동하게 되면 균형감이 깨지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약화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극단적인 방법보다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J와 P 성향을 조합해 상황마다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연습은, 중용의 덕을 실천하는 방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즉, 자기 성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황에 적합한 유연성을 발휘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