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시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노인은 신문지가 가득 담긴 봉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잠시 후, 그 노인은 자기가 방금 배송을 끝냈는데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집주인이 팁을 준 것 같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나는 그의 말을 정확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묘한 인상을 받았다. 그가 주위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애쓰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작은 만남에서 나는 문득 현대의 소통 방식과 연결되는 점을 발견했다. 이제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 덕분에 누구나 특정한 대상에게 맞춘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게 된 시대다. 노인의 경우처럼 주위의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거는 대신, 기술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게만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생긴 셈이다. 이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가 더욱 효율적이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플랫폼을 알아보고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소통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노인은 이 기술의 혜택에서 다소 소외된 듯 보였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조차 어려워하는 세대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디지털 접근성의 문제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선다. 이는 말하고자 하는 이들이 더욱 구체적이고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에 반해, 일부 사람들은 그 기회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나 블로그 같은 플랫폼은 새로운 세대에게 더 많은 소통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 개인의 목소리를 넓은 세계에 전할 수 있는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메시지가 무작위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관심사에 맞춰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거대한 플랫폼의 공습 속에 사라지는 로컬 서비스들

현대 사회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는 결국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초기의 다양한 플랫폼들은 점차 특정 목적에 따라 시장이 한곳으로 집중되며 강력한 독점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집적화 현상은 한 국가 내에서 시작되지만, 이내 글로벌 경쟁으로 확장된다. 한때 한국의 대표적인 SNS였던 싸이월드는 페이스북에 밀려 사라졌고, 멜론 역시 유튜브 뮤직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지역적 특성이 강한 로컬 서비스들이 점차 글로벌 거대 플랫폼에 잠식되는 현상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로, 동네 상권이 점차 사라지고 거대한 쇼핑몰 중심으로 상권이 재편되는 흐름을 들 수 있다. 쇼핑몰은 다양한 상점들을 한곳에 모아 주차 편의성부터 쇼핑의 편리함까지 제공하며 고객을 끌어들이는데, 이런 이점 덕분에 소비자와 상점 모두 거대 집적 공간에 의존하게 된다. 결국 많은 서비스가 집적적 이익을 통해 군집 형태로 바뀌며, 쇼핑몰 내에서만 살아남는 상황으로 재편된다.
강력한 글로벌 플랫폼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상황 속에서도 독자적인 로컬 시장에서 자리를 지킨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아프리카TV와 쿠팡이 있다. 아프리카TV는 ‘숲’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면서도 한국적 정서에 특화된 콘텐츠를 제공하며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이는 한국적인 음지 문화에 특화된 콘텐츠로 차별화된 영역을 구축한 결과이지만, 규모 면에서는 글로벌 플랫폼과 맞서기 어려운 구조다.
두 번째 사례인 쿠팡은 더욱 독특하다. 쿠팡은 미국의 아마존이나 월마트 같은 거대 플랫폼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물류 환경 속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일상생활에 밀접한 제품을 신속하게 배달하는 쿠팡의 시스템은 물류센터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며 가능해졌고, 이는 국내 시장에서 큰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배송’이라는 물리적 특성은 글로벌 기업이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장점이 되었다. 그러나 쿠팡 역시 이 독보적 위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투자가 필수적이다.
결국 글로벌 플랫폼에 잠식되지 않고 시장을 지키는 로컬 서비스들은 다양성의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사례들이다. 당근마켓처럼 지역성을 강조하는 서비스가 로컬 시장에서 경쟁력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로컬 특화 전략은 확장성에 있어 명확한 한계를 가지며, 글로벌 진출이 필요할 때 오히려 약점이 되기도 한다. 또한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요소는 물리적인 요소에 비해 쉽게 복제되기 때문에, 글로벌 플랫폼을 상대로 방어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정된 로컬 시장에서 충분한 이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거나, 물리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 강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틈새 전략만으로는 장기적인 생존이 쉽지 않다. 이 모든 흐름은 로컬 서비스들이 점차 글로벌 플랫폼의 거대한 흐름에 흡수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 피할 방법은 마땅치 않으며, 로컬 시장에 집중하거나 규제라는 형태로 글로벌 플랫폼의 유입을 지연시키는 정도가 현실적인 대응책이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결국 다양한 플랫폼 생태계가 사라지고 획일화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정서를 반영한 로컬 서비스들은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다양성이야말로 로컬 서비스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며, 시장에 더 많은 선택지를 부여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AI 채용으로 인재 발굴의 한계를 넘을 수 있을까?

AI 기반 레퍼런스 체크는 채용 과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의 채용 과정에서 레퍼런스 체크는 주로 지원자의 경력과 평판을 통해 그 사람이 정말 적합한 인재인지를 마지막에 확인하는 절차에 머물렀다. 하지만 단 몇 번의 면접과 간접적인 레퍼런스로는 지원자의 성향과 마인드셋을 깊이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AI가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레퍼런스 체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까지의 AI는 사람들이 업무에서 남긴 기록이나 일상적인 히스토리를 바탕으로,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이나 사고방식, 가치관을 분석해내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단기적인 이미지 관리로 꾸며낸 모습이 아닌 진짜 성향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통해, 회사는 지원자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기존 레퍼런스 체크의 단편적 평가를 넘어, 채용 실패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AI 레퍼런스 체크의 활용 가능성은 더 나아가 채용 과정 전반에서 인재 발굴 단계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지금의 채용 방식은 주로 회사에 이미 지원한 사람 중 적합한 인재를 선별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AI 데이터를 통해 세상에 있는 다양한 인재 풀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제적으로 발굴해내는 방식이라면 채용의 가능성은 훨씬 넓어진다. 필요와 역량을 갖춘 최적의 인재를 정확하게 찾아냄으로써 팀과 조직의 조화를 높이고, 나아가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AI 기반 레퍼런스 체크가 모든 면에서 긍정적 반응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여전히 중요한 이슈로 남아있다. 회사가 AI를 통해 지원자의 숨겨진 성향이나 일상적인 사고방식까지 평가 지표로 삼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지원자의 사적인 이면까지 AI가 들여다보는 것이 정말로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윤리적 측면에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지원자의 자발적인 동의를 제시할 수 있다. 모든 지원자가 자신의 성향과 업무 스타일, 사고방식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진정성과 강점을 자신 있게 드러내고 싶은 지원자라면 AI 레퍼런스 체크에 동의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방식이다. 자신의 데이터를 공개하는 데 동의한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의 진정성이나 성향에 대해 스스로 신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며, 반대로 공개를 원하지 않는 지원자는 상대적으로 약점이나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AI 레퍼런스 체크 동의 여부 자체가 그 사람의 진정성과 신뢰성을 평가하는 또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결국 AI 기반 레퍼런스 체크는 지원자가 자신의 진정성을 자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기업에게는 더욱 적합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 방식을 제시한다. 다만, 프라이버시 보호와 윤리적 검토를 충분히 수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AI가 제공하는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지원자의 성향과 사고방식, 진정성이 검증된 채용 과정이 구현된다면, 기업과 지원자 모두에게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힘의 논리에 밀린 초기 스타트업 문화

회사의 문화가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때로는 힘든 도전이 되곤 한다. 작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회사가 커지면서, 초기의 자유롭고 독창적인 분위기는 점차 퇴색되고, 외부에서 유입된 새로운 기준들이 자리를 차지해 나간다. 특히 외국인 A가 회사를 비롯한 여러 외국계 직원들과 함께 들어오면서 기존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되었고, A는 ‘글로벌 표준’이라는 기준으로 회사의 모든 것을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A는 회사 위키페이지에 붙여진 여자 아이돌 사진을 문제 삼으며,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일반적인 회사 상황에서 아이돌 사진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는 처음부터 자유로운 분위기로 시작해 왔고, 이러한 변화는 외부의 시각이 아닌, 직원들 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A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아이돌 사진이 부적절할 수 있지만, 과도하게 성적인 의미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편협하다고 느꼈다. A와 논쟁을 벌이면서 제시한 논점 중 하나는 문신에 대한 것이었다. A는 아이돌 사진을 문제시했으나, 동시에 한국 문화에서 오히려 더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문신을 개인의 취향이라며 합리화했다. 문화라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배경과 가치관이 혼합된 상대적인 것이기에, 한쪽의 기준을 ‘글로벌 표준’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오히려 폭력적이라 생각되었다. 회사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성과 합의를 바탕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A는 자신의 문화적 우위를 전제로 강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불편함은 어느 날 슬랙의 공개 채널에서 논쟁으로 이어졌다. 회사 전체에 이 문제가 개인 간의 갈등을 넘어서는 중요한 문화적 이슈임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외국계 직원들이 점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회사의 기득권층이 그들로 바뀌면서, 결국 초기의 문화와 정체성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 HR에서는 외국인 A의 요청으로 아이돌 사진을 내리라는 공식 공지를 내렸고, 그 순간 초기의 스타트업 정신을 지키려던 노력은 힘의 논리 앞에 무너졌다. 그렇게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면서,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이 경험은 문화의 차이가 단순히 개인의 호불호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관계 속에서 다양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음을 느끼게 했다.


차장이 더 이상 화내지 못한 이유

한 차장이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의 첫 회의가 열렸다. 그는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오래 일했던 터라, 직원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충분히 드러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날 회의 중 대리 두 명이 실수하자 차장은 이유가 가벼운 문제에도 예전처럼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강하게 지적하기 시작했다. 순간 회의실은 조용해졌지만, 보통 상사의 다그침에 위축될 법한 이 분위기 속에서 한 대리가 차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차장님, 왜 그러세요?”
그 예상치 못한 반응에 차장은 잠시 당황한 듯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한참을 말을 멈추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또 다른 대리마저 미묘한 동의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대리들은 차장의 권위적인 태도에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상황을 넘어선 차장의 급발진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차장은 결국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했고, 이후로는 자신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누그러뜨렸다.
이 경험은 개인의 성향이나 과거 경험이 회사의 문화에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차장이 예전 회사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권위적 방식은 여기서는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 속에서 그런 방식이 묵살되면서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조직 문화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조직 내에서 구성원의 성향은 단순히 개인적인 특성에 머물지 않고, 그가 경험해온 환경과 회사의 문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전의 보수적인 문화에서는 차장의 방식이 권위 있는 리더십으로 받아들여졌겠지만, 평등을 중시하는 새로운 문화 속에서 차장의 방식은 오히려 부적절하고 과한 것으로 비쳤던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성향이나 태도는 어떤 특정한 문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교정될 수 있다. 자유롭고 열린 분위기가 자리 잡힌 조직은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책임감을 가지며 소통하게 만든다. 또한 이런 올바른 문화는 조직 내 부정적인 경향성을 가진 사람들조차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어쩌면 기업 문화는 단순히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나 분위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문화가 올바르다면 구성원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경험에서 기인한 부정적인 태도마저 변화시키며, 회사 전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 문화는 단지 외형적인 환경이나 일하는 방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올바르고 긍정적인 문화가 있을 때 구성원은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나아가 그 문화를 통해 개인의 고정된 성향을 넘어선 변화까지 가능하게 한다.


내가 답없는 글을 쓰는 이유

세상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고, 해결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남아있는 문제도 많다. 특히 회사 운영이나 조직문화, 거시적인 경제 문제와 같은 큰 주제들에서 우리는 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만을 접하게 된다. 경영 서적이나 전문가들의 논의에서도 종종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정작 마지막에 제시되는 해결책은 공허하게 들릴 때가 많다. 구체적인 방안이 없거나 단순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식의 추상적인 제안들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해결책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관련된 역학관계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채 ‘모두가 합의해야 한다’는 비현실적 전제로 성급히 끝맺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뻔한 결론을 제시하는 대신,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 집중하여 글을 쓰고 있다.
사실, 문제 해결이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문제를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조직문화의 개선이나 경제 문제와 같은 복잡한 영역에서는 해결을 시도하는 순간마다 해결을 막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갈등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된 사람이 조금만 늘어나도 의견 충돌이 발생하며, 문제는 처음보다 훨씬 복잡해진다. 적은 규모의 문제라도 여러 사람의 이해가 얽히기 시작하면 점차 제어하기 어려운 수준의 복잡성으로 확대된다.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것은 어렵고도 긴 과정이다.
더불어 문제 해결의 핵심은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때때로 ‘가짜 노동’을 하고 있다는 문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애초에 불필요한 일에 자원을 쏟아붓는 일이 빈번히 벌어진다. 혹은, 신입사원의 퇴사율이 높아지는데 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주말 등산과 같은 활동을 통해 친목 도모를 시도하는 사례가 있다. 근본 원인을 잘못 짚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화된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해결책을 적용할수록 조직의 피로도는 누적되고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래서 나는 문제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해결의 90%가 이뤄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복잡한 문제들을 앞에 두고 정작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고,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복잡성을 깊이 고민할수록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무리하게 결론을 내기보다는 문제의 인식 단계에 집중해 독자와 고민을 공유하고자 한다.
세상 대부분의 문제는 당장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문제의 본질과 복잡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작점에 설 수 있다면, 때로는 그 인식만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결핍의 심리학

돈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자기 삶에서 결핍된 것일수록 더 자주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돈이 아니라며 계속해서 돈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려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돈을 늘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말 자체는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말을 반복한다면 오히려 돈이라는 대상에 매여 있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반복해서 언급하는 주제는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이라는 해석이 있다. 악플이라도 다는 것이 무플보다는 낫다는 말처럼, 우리는 관심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하지 않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악플이라도 단다면, 그 대상에 대해 적어도 어느 정도의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주제는 그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벌을 계속해서 언급하는 사람은 학벌에 대한 갈망이나, 나아가 학벌을 자신의 결핍으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이나 약점, 혹은 부족함을 거꾸로 과시하려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힘이 있는 사람은 굳이 자신의 힘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작은 강아지가 유난히 크게 짖는 것처럼, 영향력이 크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그와 반대로 진정으로 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아도 그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진짜로 힘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누군지 알아?’ 같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그의 힘과 영향력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이 무엇을 자주 언급하는가 하는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내면의 갈등과 결핍을 반영해 주는지도 모른다. 진짜로 자유로운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그 자유로움이 드러나고, 진짜로 힘 있는 사람은 조용히 있어도 그 영향력이 드러난다.


뒷담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다른 사람이 전하는 내 이야기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 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내 얘기가 타인의 입을 통해 전달되면 본래의 뜻이 그대로 전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는 상대를 배려하며 덧씌웠던 조심성과 예의가 자연스레 사라지기 쉽다. 눈치를 보며 단어를 골라 말하는 대신, 좀 더 직설적이고 강한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이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발화자 본인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전달자의 개입이다. 전달자는 아무리 객관적이려 해도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가치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해석하고 미묘한 노이즈를 더하면서 본래와는 다른 느낌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원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된 얘기가 당사자에게 돌아가기도 한다.
이렇듯 왜곡된 이야기는 본래보다 훨씬 부정적이거나 뜻밖의 의미로 변해 전해지기 쉽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전하는 내 이야기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 말이 처음 의도와는 달리 전해졌을 가능성을 인정하고,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내 마음의 평온을 지키는 데 더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굳이 전달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하는 순간, 본의 아니게 내가 느낀 감정이나 해석이 담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원래 뜻을 지키려 노력해도 듣는 이에게는 새로운 해석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 싶다면, 내가 들은 이야기를 굳이 다른 이에게 옮기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새로운 인재에게 과거의 족쇄를 채우는 회사

기업이 핵심 인재를 채용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 그 원인은 종종 조직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핵심 인재는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새로운 접근과 혁신적 방식을 통해 변화를 이끌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이들의 역량을 온전히 활용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방식을 효율화하는 데 그치기를 기대한다면, 그 인재는 시스템 안에 갇혀 본연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다. 시스템이 기존 방식의 답습을 강요하는 환경이라면, 새로운 인재가 들어와도 결국은 그 한계 안에서만 활동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허용하는 수준에 맞추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다면 핵심 인재가 지닌 혁신적 사고와 기획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이 기대하는 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결국, 이렇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스템 하에서는 핵심 인재가 오히려 기존 직원과 같은 수준으로 머물게 되고, 회사의 성장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시스템적 한계로 인해 핵심 인재는 좌절감에 빠지며, 조직에서의 성취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는 그들의 동기를 떨어뜨리고, 조직에 머무르는 기간을 단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이러한 환경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구성원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회사는 기존의 방식과 관행을 강화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는 혁신적인 성과보다는 정체된 문화와 비효율만을 반복하게 되고, 내부 문제는 점차 외부로 드러나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회사를 외면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설령 새로운 인재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이러한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는 같은 한계에 부딪혀 결국 이탈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스템 한계를 과감히 극복하고 새로운 인재가 조직 내에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고착된 문화와 기존의 시스템 하에서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조직이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문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보편적 문제 해결의 열쇠: 유저스토리와 잡스토리의 차이

잡스토리는 유저스토리와 달리 특정한 페르소나나 개별 경험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과 컨텍스트를 기반으로 문제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더 큰 강점을 가진다.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에서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예측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잡스토리의 장점을 설명하는 데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사람은 각기 다른 배경과 환경에 있지만 결국 유사한 상황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패턴화된 행동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의 가치를 생각하는 단계에서는 특정 페르소나의 사례에 집중하기보다는, 범용적인 상황과 고통을 다룰 수 있는 잡스토리의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유저스토리에서는 20대 여성이 온라인 쇼핑을 할 때 겪는 특정 경험을 다룬다고 가정해보자. 유저스토리에서 다룬 이 구체적인 사례는 30대 남성, 혹은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에게는 쉽게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잡스토리의 형식을 빌려 “온라인 쇼핑 고객은 제시간에 배송되지 않을 때 불만을 느낀다”는 식으로 풀어내면 특정한 연령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고객의 보편적인 페인포인트에 주목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보다 넓은 사용자 층이 공유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가치 제안을 설계할 수 있다. 결국 유저스토리는 구체적인 페르소나의 맥락 안에서 제품의 피처 설계에 유용할 수 있지만, 보편적인 문제 해결과 제품의 가치 창출을 위한 기초는 잡스토리에서 시작하는 편이 더 적합하다.
제품의 가치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특정 유저의 독특한 경험에 치우치기보다는 공통적인 상황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일반화할 때, 고객이 실제로 느끼는 고통을 해소하는 데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잡스토리는 이러한 공통적 페인포인트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 더욱 강력한 도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