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더스 조각피자
미국에서 처음으로 코스코에 갔을 때 받은 느낌은, 아니 느낌이라기 보다는 내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단어는 '자본주의'였다. 풍부한 자본과 인간의 욕망이 잘 버무려져 보이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 근처에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종종 가게 된다. 푸드코트에서 파는 조각 피자는 대략 3500원 정도이다. 가격대를 보고 두 개는 먹어야 배가 부를 것이라 생각한 나를 비웃듯 트레이더스의 조각 피자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이 가격으로 나를 배불릴 수 있으니 자본주의의 맛을 계획주의 경제가 당해낼 수가 있나.
사진 찍을 자유
이천 롯데 아울렛에 갔다. 여느 때처럼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정장 차림의 앳되어 보이는 여자 사람이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으시는거냐 물었다. 나는 여기는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장소인지 되물었다. 그랬더니 그건 아니라고 하면서 하늘을 찍은거냐고 물었다. 나는 하늘을 찍은게 아닌데, 이 장소는 사진 찍는게 안되는 곳이냐 다시 물었다. 안전요원은 그게 아니고 다른 의도를 가지고 촬영을 하실 수도 있어서... 하였다. 내가 다시 어떤 다른 의도를 말하는건지 물었다. 안전요원은 몸둘 바를 모른채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렇게 당황할꺼면 애초에 왜 말을 건 것일까. 이 사건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우리나라 특성상 카메라의 시야에 노출되는 것을 비정상적으로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건 2000년대 초 SLR 클럽을 비롯한 여러 사진 애호가들이 커다랗고 시커먼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뭐라도 되는양 행세하며 눈살 찌푸리는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일 수 있다. 성추행 등의 불미스러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사진을 찍을 권리가 박해 받아서는 안된다. 공공장소에서 특정 인물을 특정하지 않으면 나는 그 장면을 찍을 권리가 있다. 그건 내 눈으로 장면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전요원으로서 뭔가 임무를 수행하고 싶었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안전요원의 행동은 여러가지 면에서 실수다. 내가 범법행위를 저지른다고 생각했다면,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서 나를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고, 그런 결정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쇼핑 중인 고객을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의심했으면 안된다. 아니, 의심해도 되지만 나에게 그 생각을 들켜서는 안된다. 언제나 당당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프레임은 중요하다. "뭘 찍으시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내가 뭘 찍는다고 답할 의무는 없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는 사진 찍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곳인가요?"라는 말로 되받아친 것이다.
나의 사진은
비비안 마이어는 사후에 필름 뭉치가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고, 사울 레이터 역시 당대에는 유명해지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사후에 내가 찍어놓은 수천장의 사진이 유명해 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라고 봐야지.
거미와 동네 옷가게
산책을 하다 보면 커다란 거미줄이 꽤 자주 보인다. 촘촘히 짜여진 거미줄의 가운데는 노란배에 검은색 가로줄이 있는 거미가 앉아 있다. 커다란 거미줄을 보면서 저것을 만드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람에 찢어질 수도 있고, 비가 내리면 다 망가질 수도 있을텐데, 그 때마다 거미는 힘든 보수 공사를 해야 할 것이다. 이 넓은 공원에서 거미줄에 벌레가 걸릴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 그 때까지 거미는 굶주린 채로 인내해야 하겠지.
거미를 보다가 갑자기 동네옷가게가 떠올랐다. 전통시장의 골목에 허름한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옷가게가 있다. 무척이나 화려하지만 유행이 지나버린 것 같은 다양한 옷들이 옷걸이에 걸려있다. 알록달록한 무늬를 보면 거미줄 가운데 있는 거미가 떠오른다. 과연 이 허름한 옷가게에는 옷을 사는 사람들이 오기는 올까. 옷을 몇 개 팔면 먹고 살 정도로 벌 수 있을까. 그 자리에 앉아서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옷가게 주인의 운명은 거미줄 가운데 있는 거미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저런 주제 넘은 걱정을 하다가 현실을 떠올려 보았다. 거미가 죽지 않고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은 가끔씩 덫에 걸려드는 벌레가 있다는 것일테고, 옷가게 주인이 임대료를 지불하고 옷을 전시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가 먹고 살만큼 옷을 사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임대료를 낼 필요가 없는 건물주이든가.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