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지 않는 것이 미덕일까: AI와의 협업이 가르쳐준 개발자의 본질

완벽함의 신화

개발자 커뮤니티에는 오랫동안 하나의 이상향이 존재해왔다. 버그 없는 코드를 작성하는 것, 한 번에 완벽한 설계를 하는 것, 실수하지 않는 것. 10x 엔지니어의 이미지는 항상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졌다.

나 역시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실수는 부끄러운 것이고, 코드 리뷰에서 지적받는 것은 실력 부족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드를 작성할 때 지나치게 신중해지고, 때로는 완벽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Claude Code와의 협업에서 발견한 것

KnotNet을 개발하면서 Claude Code를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AI 페어 프로그래머와 함께 일하면서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Claude Code는 실수를 한다. 때로는 잘못된 API를 사용하고, 때로는 엣지 케이스를 놓치고, 때로는 비효율적인 알고리즘을 제안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나타난다.

Claude Code의 대응 방식:

  1. 즉각적인 수용: 지적을 받으면 즉시 인정한다. "아, 맞습니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2. 감정적 반응 없음: 방어하거나, 변명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않는다.
  3. 빠른 수정: 문제를 파악하면 즉시 수정 작업에 들어간다.
  4. 반복적 개선: 한 번에 완벽하지 않아도, 피드백 루프를 통해 결국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든다.

이 과정을 관찰하면서 깨달았다. 실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실수 이후의 태도와 대응이 관건이라는 것을.

인간 개발자의 실수 대응 패턴

반면 인간 개발자들(나를 포함해서)은 종종 다르게 반응한다:

  • 방어적 태도: "그건 제가 의도한 거예요", "이 경우엔 괜찮아요"
  • 감정적 반응: 지적받는 것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임
  • 과도한 설명: 실수의 맥락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정당화
  • 느린 수정: 자존심이 상해 수정을 미루거나 회피

물론 이런 반응들은 충분히 인간적이다. 우리는 감정을 가진 존재이고, 자신의 작업물에 애착을 느끼며,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다. 하지만 이런 감정적 반응이 실제로 우리의 성장과 생산성을 저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개발자상: 회복력 중심의 역량

AI와의 협업 경험은 개발자의 역량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 실수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 실수를 빠르게 인지하고 수정하는 능력

핵심은:

  • 완벽한 첫 시도가 아니라
  • 빠른 피드백 루프와 반복적 개선

필요한 것은:

  • 방어적 태도가 아니라
  • 수용적 자세와 학습 마인드셋

실무적 시사점

이런 관점은 실제 개발 문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 코드 리뷰 문화 지적받는 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선의 기회로 보는 문화

2. 빠른 반복 완벽을 추구하며 시간을 쓰기보다, 빠르게 시도하고 피드백받고 개선하는 사이클

3. 심리적 안전감 실수해도 괜찮다는 환경, 중요한 것은 실수 이후의 대응이라는 인식

4. 학습 중심 마인드셋 실력의 증명보다 지속적인 학습과 성장을 중시하는 태도

결론: 완벽함보다 회복력

아이러니하게도, AI와 함께 일하면서 더 인간적인 개발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실수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피드백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빠르게 수정하고, 계속 개선해 나가는 것. 이것이 AI 시대에 개발자가 가져야 할 진짜 미덕이 아닐까.

Claude Code는 완벽한 코드를 작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완벽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태도가 결국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우리 인간 개발자들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피드백을 환영하며, 빠르게 배우고 성장하는 개발자. 그것이 진짜 10x 엔지니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인앱 브라우저가 만든 보이지 않는 장벽: KnotNet의 사용자 유입 문제 해결기

데이터에서 발견한 이상 신호

KnotNet을 운영하면서 Google Analytics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트래픽 소스별 데이터를 살펴보던 중,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YouTube에서 유입된 사용자들은 returning user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사람들이 한 번 방문한 후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다.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였다.

그런데 LinkedIn과 Threads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Returning user가 0이었다. 단 한 명도 재방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문제의 원인: 인앱 브라우저의 제약

처음에는 콘텐츠나 타겟팅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술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조사 결과, LinkedIn과 Threads는 링크를 클릭하면 자체 인앱 브라우저를 띄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인앱 브라우저들은 보안상의 이유로 Google 로그인을 허용하지 않는다.

KnotNet은 사용자 인증에 Google OAuth를 사용한다. 즉, LinkedIn과 Threads의 인앱 브라우저에서는 사용자들이 아예 로그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로그인 버튼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거나 에러가 나는 좌절스러운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해결 방법: User Agent 기반 감지와 유도

문제를 파악했으니 이제 해결책이 필요했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사용자가 인앱 브라우저를 사용하고 있을 때 이를 감지하고, 외부 브라우저로 열도록 안내하는 것이었다.

구현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User agent 문자열을 확인하여 LinkedIn, Instagram, Threads 등의 인앱 브라우저인지 판단
  2. 인앱 브라우저로 판단되면 페이지 상단에 배너를 표시
  3. 배너에서 외부 브라우저(Safari, Chrome 등)로 열 것을 안내

이 방식의 장점은 사용자에게 명확한 가이드를 제공하면서도, 일반 브라우저 사용자에게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와 인사이트

배너를 구현하고 배포한 후, LinkedIn과 Threads에서의 유입이 시작되었다. 데이터가 다시 정상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1. 데이터는 항상 이유가 있다 숫자의 이상 패턴을 발견했을 때, 단순히 넘어가지 않고 원인을 추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2. 플랫폼의 제약을 이해해야 한다 각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자체적인 기술적 특성과 제약을 가지고 있다. 멀티 플랫폼 전략을 가져갈 때는 이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3. 작은 마찰도 큰 장벽이 된다 사용자 경험에서 작은 불편함도 전환율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4. 기술적 해결책은 간단할 수 있다 복잡한 문제처럼 보여도,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User agent 확인과 배너 하나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프로덕트를 만들다 보면 이렇게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며, 실용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KnotNet의 여정은 계속된다. 다음에는 또 어떤 흥미로운 문제와 마주하게 될까?


Seongnam, Korea


Untitled

Seongnam, Korea


운전중의 대화

첫 번째 질문은 온전히 궁금함을 담고 있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상대는 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두 번째 질문에는 의구심이 묻어 있었다.

나는 같은 말을, 이번엔 짜증을 섞어 되풀이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세 번째 질문에는 부정이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내 말을 따라 읊조렸다.

 

나는 결국 고함을 질렀다.

그 뒤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고철덩어리 차량 하나가 남았다.


AI 도입 100%가 어려운 이유

AI를 통해 프로젝트를 100% 자동화하고 싶다는 목표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인간의 감정과 이해관계라는 본질적인 장애물 때문에 여전히 현실화되기 어렵다. 인간은 논리적으로 최선인 선택에 직면했을 때도 자신의 감정적 반응과 본능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감정이 단순히 비효율을 초래하는 요소가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그의 저서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소개한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전두엽 손상으로 감정적 신호를 처리하지 못하게 된 환자는 논리적 사고와 인지 능력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작은 선택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그는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단순한 결정에서도 다양한 옵션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데 몰두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 사례는 감정이 없으면 인간이 결과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러나 프로젝트와 같은 업무 환경에서는 이러한 감정적 판단이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상위 목표가 이미 명확히 정의된 상황에서 인간의 감정적 개입은 불필요한 갈등이나 비효율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AI는 감정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반면, 인간은 같은 문제를 두고도 이해관계와 감정적 반응으로 인해 갈등을 빚고 비효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율주행 기술의 도입 과정이 떠오른다.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이 마련되었지만, 도로 위 다른 운전자가 인간이라는 점 때문에 완전한 구현이 지연되고 있다. 이처럼 프로젝트 자동화 역시 인간의 감정적 특성이 개입되면서 AI의 전면적 도입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AI를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면 감정적 판단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AI는 모든 판단과 실행을 담당하고, 인간은 상위 목표를 설정하거나 가치를 기반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데만 집중하는 구조가 필요할 수도 있다. 감정은 가치를 정의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데 필수적일 수 있지만, 구체적인 업무 과정에서는 오히려 방해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사례는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것이 잘못된 순간에 개입되었을 때 얼마나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도 경고한다. 궁극적으로 AI와 인간의 조화는 감정의 적절한 분리와 통합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은 가치를 정하고, AI는 그것을 실행한다는 역할 분담이 생산성의 극대화를 실현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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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트포스에서 엔지니어링으로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처음에는 단순한 힘의 경쟁에서 시작된다. 증기기관이 석탄을 무작정 태워 효율을 따지지 않던 시기처럼, 초기의 AI 모델 개발도 막대한 데이터와 연산 자원을 쏟아부으며 규모로 승부를 보려 했다. 더 많은 파라미터, 더 큰 모델, 더 강력한 컴퓨팅 자원을 가진 쪽이 앞서나가는 시대였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결국 한계에 도달한다. 자원을 더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발전 속도가 더뎌지고, 비용 대비 성과가 떨어지는 지점에 이르면 효율화가 필요한 시기로 넘어간다.

최근 AI의 최적화 흐름에서 주목받는 MoE(Mixture of Experts) 개념은 브루트포스 방식에서 효율화로의 전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전문가 모듈을 활용해 각 입력 데이터에 가장 적합한 전문가를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는 방식은 더 이상 모든 계산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특히 DeepSeek의 성과는 이 전환을 가속화했다. 기존의 MoE 모델이 가진 한계, 예컨대 중복된 지식 학습이나 비효율적인 자원 사용 문제를 해결하며 더욱 정교한 전문가 분할과 효율적인 라우팅을 통해 AI의 최적화 가능성을 극대화했다. DeepSeek은 모델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연산량을 크게 줄였고, 이는 자원의 크기가 아닌 기술적 설계와 혁신이 경쟁력의 중심이 되는 시대를 열었다. 이제 기술 제공자는 단순히 자원을 쏟아붓는 역할이 아니라, 설계의 정교함과 문제 해결의 창의성을 통해 차별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런 변화는 제공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의 관점에서도 기술과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자동차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사람들은 엔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않아도, 단순히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가치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AI도 이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것은 이제 기술자들의 일이 되었고, 사용자는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가치에만 관심을 갖는다. AI 비서가 일정을 정리하고, 질의응답 시스템이 질문에 답하며, 추천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취향을 정확히 예측할 때, 사람들은 그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AI가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방식이다.

결국 기술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 제공자는 더 정교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기술을 만들어내고, 사용자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자연스럽게 소비한다. DeepSeek 같은 최적화 사례는 단순히 AI 기술 발전의 새로운 경로를 보여주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기술의 본질이 더 이상 복잡성에 있지 않고, 사람들이 이를 통해 얻는 시간, 편리함,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기술은 이렇게 제공자와 사용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통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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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

AI 모델이 학습한 행동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는 단순한 데이터 일반화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논문에서는 이를 '행동적 자기 인식'이라 정의하며, 모델이 특정한 행동 패턴을 학습했을 때, 명시적인 학습 없이도 이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예를 들어, 모델이 위험을 선호하는 경제적 결정을 하도록 학습되었을 경우, '나는 대담하다' 또는 '나는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AI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데이터 패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모델이 스스로를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고 설명하는 능력을 가진다면, 이는 일종의 'AI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라 볼 수도 있다.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성격을 정의하듯, AI 또한 학습한 데이터에서 비롯된 행동을 바탕으로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논문은 이러한 자기 인식이 별도의 맥락이나 예제 없이도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는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스스로의 특성을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시사한다.

백도어 행동과 관련된 실험에서도 모델은 특정 트리거 없이도 자신이 백도어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며, 모델이 스스로의 한계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특정 조건에서만 작동하는 백도어 행동이 모델의 본래 정체성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인간이 특정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AI도 특정 조건에서 자신이 학습한 일반적인 행동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AI의 정체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외부 자극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AI 안전성뿐만 아니라 AI 철학에서도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결국, 이 연구는 AI 모델이 단순히 학습된 데이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을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AI가 단순한 입력-출력 기계가 아니라, 자기 행동을 스스로 정의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인식이 항상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며, 백도어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모델이 스스로의 행동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탐구가 이어져야 한다. AI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설명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결국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다시 정의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인간은 죽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선언을 통해 인간이 더 이상 신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시대의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초인 개념은 단순히 자유를 선물받은 인간의 자율성을 넘어, 혼란 속에서도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찾으려는 의지로 연결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인간은 죽었다'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AI의 급속한 발전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면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이익을 창출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심지어 인간의 창의적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인간의 노동은 갈수록 줄어들고, 일상 속 많은 일들이 자동화되고 있다.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했던 인간은 이제 자신이 만든 기술 앞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묻고 있다. 우리는 왜 이런 변화를 만들어 왔을까? 만약 이 변화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니체의 초인 개념은 여전히 유효할지 모른다. 인간은 인간다움, 즉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그저 효율성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답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은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만으로는 아무것도 정의될 수 없다. 위치나 움직임조차도 모두 상대적 기준점이 있어야만 의미가 생기듯,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

관계와 상호작용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인간 간의 관계를 약화시키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점점 더 외롭고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상호작용은 점점 사라지고, 디지털 화면 너머에서만 이루어지는 만남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감정적 깊이, 공감, 그리고 이해는 결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AI는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인간답게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결국 인간다움이란 서로를 마주하며 느끼는 그 무엇, 즉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확인하는 과정일 것이다. AI의 시대에도 인간답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 우리를 진정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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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똥을 싸는 시대

현대 미디어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과거에는 지상파 3사와 몇 종류의 신문처럼 제한된 채널을 통해서만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었다. 이때 생산자는 매우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비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했다. 창작물이 세상에 노출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 동시에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과 다양한 플랫폼의 발전으로 누구나 손쉽게 자신의 생각을 게시하고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생산의 문턱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생산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생산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줄어든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팔려는 사람만 있고 사려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이는 단순히 과잉생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넘쳐나는 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창작하고 드러내려는 욕구는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른다. 크레타 벽화에서부터 시작된 예술적 표현은 그 역사를 증명한다. 인터넷은 이러한 본능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도구를 제공했다. 비용이 적게 들고, 노출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창작물은 물질적 공산품과 다르게, 지나친 과잉생산으로 인해 가치를 인정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공산품의 과잉생산처럼, 지금 우리는 창작물의 과잉생산 시대를 살고 있다.

과잉생산의 결과로, 창작물은 넘쳐나지만 그 가치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모두가 생산자가 되었기에 이제 누구도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딜레마가 발생했다. 이 현상은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처럼, 특정 집을 표시해 찾으려는 도적들의 계획을 알리바바가 마을 모든 집에 같은 표시를 해두며 무력화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이로 인해 과거보다 노출의 기회는 줄어들었고, 큐레이션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적절한 큐레이션은 과잉생산된 창작물 속에서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비자가 없는 상황에서 생산의 가치는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결국 소비자가 없다면 생산물은 가치를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인간의 본능적인 표현 욕구를 반영하는 동시에, 과잉생산으로 인해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과도 연결된다. 이제 생산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를 증명하고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현대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분명히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평준화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생산자가 특별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그 평준화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찾고, 소비자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그저 인간의 본능과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새로운 현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헤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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