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매너리즘, 모방이 가져온 위험한 함정
결정을 내릴 때 회사에서 “A사는 이렇게 했다”는 식의 사례를 근거로 삼는 방식이 반복되며, 논의와 고민이 사라진 상태로 중요한 사안들이 결정되는 과정을 많이 경험했다. 이러한 방식은 마치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느낌을 주었고, 깊은 사고 없이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상황에 맞는 맞춤형 해결책이 아니라면, 표면적인 따라 하기는 결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문제는 단순히 성공 사례만을 쫓는 것이 세부적인 차이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때로는 이러한 세부적인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인데, 이를 간과하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성과만을 따라 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의 책 ‘권력과 진보’에서 나오는 레셉스의 수에즈 운하 사례는 이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레셉스는 기술 진보와 멀리 보는 안목으로 찬사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운하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에 대한 세부적인 고민을 하지 않았다. 수많은 이집트인 부역 노동력에 의존한 그의 계획은 진보의 한 측면만을 바라본 결과였다. 세부적인 현실적 문제를 무시한 그의 비전은 결국 실패로 이어졌고, 자신감과 명료한 목적의식이 오히려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표면적인 성과에만 집중하여 성공을 모방하는 것은, 세부적인 차이를 간과함으로써 오히려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내가 경험했던 회사의 결정들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성공한 타 기업의 사례를 참고하지만, 그 배경이나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 결정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조직이 처한 고유한 상황과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결과였으며, 세부적인 차이를 고려한 맞춤형 접근 없이 단순히 모방한 방식은 결국 진정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게 했다.
모방의 또 다른 문제는, 모방하는 대상을 넘어서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성공한 사례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그 한계를 뛰어넘기 힘들며, 그 결과 항상 뒤따르는 위치에 머물게 된다. 표면적인 요소만을 복사하다 보면,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어려워진다. 고객의 본질적인 욕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고민과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모방으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진정한 혁신을 이뤄내기 어렵고, 결국 표면적인 성공에 그치거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본질을 배제한 단순한 따라 하기는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문제의 핵심을 놓치게 할 뿐이다.
AI보다 먼저, 나는 이미 RAG였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동일한 존재일까? 6살의 나와 46살의 나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공통점이 없는 서로 다른 인격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공유하는 기억의 조각들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는 많이 달라져 있다. 마치 두 개의 다른 주체가 같은 기억 저장소를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우리의 기억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데이터와 같다. 나는 과거의 데이터들 중 일부를 여전히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지만, 많은 기억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흐릿해졌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 하드디스크를 새로운 케이스와 CPU를 장착한 컴퓨터에 장착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마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전자에서 비롯된 기본적인 성향이나 몇몇 기억이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성향은 변해왔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도 완전하지 않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단지 몇 가지 기억을 공유할 뿐, 그 외에는 많이 달라진 별개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 머릿속에 남은 기억조차 없다면, 나는 과거의 나와 전혀 연결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라는 주장은 무의미해진다.
여기서 나는 기억이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정체성이나 가족과의 관계로 형성되는 정체성도 분명 존재하지만, 결국 내가 인식하는 나의 정체성은 기억에서 비롯된다. 기억이 없다면 나의 정체성 역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래된 기억이든, 불과 몇 분 전의 기억이든 모두 중요하다. 기억이 없다면 내가 나임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은 그저 기억의 파편들이다. 이 파편들이 있어야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잠깐씩 만나며 연결된다. 만약 이 기억들이 없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동일한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결국 공유된 기억에 달려 있다.
결론적으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기억이라는 작은 조각들 덕분에 연결된 존재일 뿐이다. 이 기억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동일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강아지와 말이 통한다
내 강아지는 귤을 유독 좋아한다. 내가 귤을 손에 들기만 해도 이 놈은 눈을 반짝이며 지그시 나를 바라본다. 말은 하지 않지만, 그 눈빛은 마치 “귤 하나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계속 나만 먹으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다. 오히려 말로 하는 것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 소통 방식은 나로 하여금 비언어적 표현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우리 삶에서, 특히 직장에서도 언어가 아닌 눈빛, 표정, 자세 등이 얼마나 많은 것을 전달하는지 실감하게 된다.
회의실에서 비언어적 소통은 매 순간 이루어진다. 질문에 대한 침묵이 지속될 때, 이 침묵은 대답 이상의 메시지를 전한다. 상사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눈을 피하는 순간들, 혹은 누군가 팔짱을 낀 채 다소 무심하게 뒤로 물러선 모습 등은 모두 팀의 상태를 암시한다. 하품이나 고개를 돌리는 작은 동작조차도 그 자리에 대한 무관심과 지루함을 드러내며,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거워진다. 반면, 누군가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발표자와 눈을 맞추는 작은 행위는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작용해 대화의 흐름을 이어가도록 만든다. 이렇듯 비언어적 반응은 미세한 제스처 하나로 분위기를 크게 바꾸며, 말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특히 침묵은 직장에서 강력한 무언의 신호로 작용한다. 상사의 침묵이 길어지면, 이는 팀원들에게 일종의 경고처럼 받아들여지며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는 단순히 “싫다”라는 말 한마디보다 훨씬 무겁고 명확한 신호로 다가와 팀 전체에 긴장감을 남긴다. 반대로 팀원들의 침묵은 상사에게 불만과 납득하지 못하는 마음, 혹은 무력감을 전달한다. 모두가 속내를 삼킨 채 말 없는 대치를 이어갈 때, 비언어적 소통은 오히려 강한 갈등의 씨앗이 된다.
결국 강아지와의 눈빛에서 느낀 것처럼, 직장에서 비언어적 표현은 말보다 깊이 있고 강력하게 우리의 의사를 전달한다. 침묵, 팔짱끼기, 고개 끄덕이기 같은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오히려 진심을 더 명확하게 드러내며 팀의 분위기를 움직이고, 때로는 한 마디보다도 깊은 흔적을 남긴다.
사공이 많으면 배에서 내리고 싶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라. 다시 말해 사람을 배제하기 위한 공식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선의를 가지고 도와주려는 사람도 확고히 배제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비밀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프로젝트는 한 사람의 린치핀에게 책임을 맡겨야 한다. 두 사람에게 공동책임을 맡기거나 태스크포스나 위원회를 만들어 이끌어서는 안 된다.” – 세스 고딘,
하나의 축구팀에는 반드시 한 명의 감독이 있어야 한다. 감독이 여러 명이라면 그 팀은 승리를 목표로 달리기 어렵다. 각 감독마다 철학과 전술이 다르기 마련이고, 선수들은 누구의 지시를 따라야 할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한 감독이 체력 향상에 중점을 두면 다른 감독은 전술 훈련을 강조할 수 있고, 이 상충된 의견 사이에서 선수들은 갈팡질팡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책임 소재마저 흐려져, 중요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혼란에 빠진다. 축구 경기에서조차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많은 사람이 모인 회의나 프로젝트에서는 그 혼란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프로젝트도 누군가 확고하게 책임지고 이끌어야 혼선이 생기지 않는다. 고딘의 말처럼,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관여할수록 비효율과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회의 역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져야 집중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회의에 들어와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이어가면, 정작 의사결정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발언권을 잃게 되고, 회의는 목표에서 점점 멀어진다.
이 상황은 세스 고딘이 경계하는 바로 그 모습이다. 여러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다 보면, 문제의 핵심은 흐려지고, 책임을 분명히 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여러 사람이 책임을 나눠 가지는 순간 일이 산으로 갈 가능성은 높아지고,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방향을 잃고 당혹스러워진다. 결국 ‘사공이 많으면 내리고 싶다’는 심정에 이르게 된다.
사람의 수가 많아진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필요 이상의 참여가 이루어지면 방향은 흐려지고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고딘의 말처럼 단순히 모두를 포함하여 평범하고 점진적으로 갈 것인지, 꼭 필요한 핵심 인력만으로 이루어져 명확하고 놀라운 결과를 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직무를 배제한 개인의 성장이 가능할까?
부하 직원을 관리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성장과 기술 축적에 시간을 쓰고 싶다는 직장인들의 비율이 72%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은 조직 내에서 성공을 이루기보다는 자유롭게 일하며 개인의 성장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실전을 경험하지 않고 온전히 성장할 수 있을까? 축구 선수들이 훈련만으로 실력을 다지기 어려운 것처럼, 직장인 역시 실전 경험 없이는 성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감독들이 신인 선수에게 경기 종료 1~2분 전이라도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를 주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 짧은 시간에도 실전의 압박감을 느끼고 경기의 흐름을 직접 경험하며 감각을 익혀야만 진정한 실력 단련이 가능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개인의 성장이 직무와 별개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조직 내 실전 경험이 필요한 이유는 실무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성장만을 중시해 직장에서의 성공을 외면한다면, 이는 마치 출전을 거부하고 개인 훈련에만 몰두하는 선수와 다를 바 없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얽히고설키는 상황을 겪으며 각자의 의견을 조율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해가는 경험을 통해서만 복잡한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축구에서 선수가 실전을 통해 다양한 상대와 전략을 겪으며 실력을 다지는 것처럼, 직장에서도 실무를 통해 복잡한 상황을 관리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전 경험의 가치는 결국 커뮤니케이션 복잡성을 다루는 데서 드러난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성장하는 과정은 단순히 업무 수행 능력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허브로서 기능하며 조직의 성과에 기여할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이러한 역할은 수많은 실전을 통해서만 쌓이는 일종의 경험치다. 다양한 이견을 조율하고,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고 정제해 필요한 곳으로 전달하며, 문제의 방해 요소를 제거해 프로젝트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과정이 바로 그 예다. 특히 조직의 성과를 책임지고, 다양한 부서와 협력해야 하는 위치에 이를수록 커뮤니케이션 복잡도는 배가된다. 이러한 복잡성을 체감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리더십이 단련되고, 실전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역량이 쌓이게 된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경험은 실무를 통해 얻어지는 배움의 본질이자, 직장에서 인정받는 기반이 된다. 각각의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에서 빠르게 핵심 정보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일, 의견이 갈리는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의견을 조율하는 일, 즉시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 신속한 결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실전에서의 경험은 단순히 훈련이나 이론적 지식으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실력의 기초가 된다. 직장인들은 그러한 실전 경험의 누적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며 더 큰 프로젝트와 책임을 맡게 되는 것이다.
축구 선수들이 더 많은 출전 기회를 통해 각기 다른 상대를 겪으며 경기 감각과 실력을 쌓아가듯, 직장인 역시 실전 경험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커뮤니케이션하며 업무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된다.
혼자가 더 나은 이유
누군가와 함께 무엇인가를 하기로 할 때는 그만큼 복잡해지고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 쉽다. 대학 시절에 후배와 함께 영어학원을 다니기로 한 적이 있다. 등록일이 되자, 후배가 부모님께 돈을 받지 못해 이번엔 힘들 것 같다고 연락을 해왔다. 후배의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나의 결심마저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후배와 함께 하기로 계획한 일이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내 의지도 한풀 꺾여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할 때 겪을 수 있는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와 맞추어 무언가를 할 때는 잘되면 시너지가 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오히려 내 결심까지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의지나 상황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결국 내 계획에 최대한 외부 변수를 줄여놓고 오롯이 나의 의지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 성공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성취하려고 하지만, 그 목표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적다. 솔직히 주위를 둘러보면 계획적이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쉽게 의지가 흔들리고,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해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굳이 나의 계획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높이며 다른 사람과 함께할 필요가 있을까? “함께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이 있지만, 경험을 돌이켜보면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이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나 혼자만의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실천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복잡한 변수를 줄이고, 온전히 나만의 의지와 꾸준함을 믿고 가는 것이다. 이 방식은 내가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혼자 하는 방식은 마치 일관된 길을 걷는 것과 같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천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와도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이뤄낸 일들이 몇 가지 있다. 젊은 시절 매일 빠짐없이 운동을 꾸준히 했던 것도 그중 하나다. 운동을 혼자 계획하고 정해진 시간에 실천해 나가며 내 나름의 루틴을 만들었고, 덕분에 원하는 건강과 체력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와 함께 운동을 하기로 했다면, 상대의 사정에 따라 내가 계획을 바꾸어야 할 상황이 생겼을 것이다. 영어 학원을 꾸준히 다닌 것도 같은 이유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다니기로 했지만, 결국 나 혼자 꾸준히 다니면서 성과를 얻어냈다. 혼자만의 의지로 실천해 나갔기에 내 실력에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외부적인 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성취하는 습관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결정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나의 선택과 나의 책임 안에서 이루어나가는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느낀다. 내가 온전히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단순한 방식이 나에게는 훨씬 안정적이다. 혼자서만 계획하고 실천할 때는 모든 것이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기에 훨씬 차분하게 목표에 집중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과 함께할 때 얻는 즐거움이나 시너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계획이 불확실해지거나 나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 일정을 조율하거나 다른 사람의 상황에 맞추기보다는, 내 결심을 중심에 두고 혼자 일관되게 해나가는 방식이야말로 목표 달성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음성 명령이 열어준 새로운 창작의 시대
예전에는 걸어 다니며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메모지나 휴대폰을 꺼내 타이핑을 해야 해서, 현실적으로는 기록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떠오른 생각을 기억해두고 자리에 앉아 적어두려 했지만, 일상 속에서 그 순간을 기다리다 보면 막상 아이디어는 잊히기 일쑤였다. 이런 순간들이 반복될수록, 짧고 단편적인 생각들이 메모장에 적히기보다는 머릿속에서 사라지곤 했다. 이는 새로운 생각을 위한 기반이 되는 아이디어의 손실로 이어졌고, 창의적인 흐름을 이어가는 데도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음성 인식 기술의 발달은 이 모든 과정을 새롭게 바꿔놓았다. 특히 모바일 환경에서 음성 명령을 통한 기록은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사고와 기록의 연결성을 극대화해준다. 이제는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이동 중일 때도 타이핑의 불편함 없이 음성으로 곧바로 생각을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스치는 생각 하나까지도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라면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들이 놓치지 않고 축적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일상의 순간들이 실질적인 아이디어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훨씬 높여 준다.
특히 GPT와 음성 인식을 결합하면서 이러한 기록 방식의 효용성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단순히 생각을 남기는 수준을 넘어, GPT가 기록한 단서들에 프롬프트를 더해 아이디어를 체계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구체적인 글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GPT는 아이디어가 어떤 방식으로 글로 풀어질 수 있을지 물어보며, 질문을 통해 주제와 세부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그 덕분에 아이디어는 단순한 메모가 아닌, 깊이 있는 글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거치며 더욱 명확하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바뀌어 간다.
음성 명령을 통해 GPT와의 대화로 글이 발전하게 되면서, 즉흥적인 생각의 구체화는 물론, 새로운 주제와 관점이 연달아 떠오르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제는 걸으면서도 손쉽게 기록하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과거라면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창의성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기록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는 곧장 문장과 단락으로 구체화될 수 있으니, 글쓰기의 심리적 장벽도 낮아졌고, 결과적으로 글로 마무리되는 아이디어가 훨씬 풍부해졌다.
이 과정은 ‘기록의 허들’이 낮아지면서 얻게 된 수많은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예전에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도 기록의 번거로움에 포기하고는 했다면, 지금은 음성 명령으로 인해 이러한 장벽이 허물어졌다. 덕분에 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고, 일상 속에서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실질적인 결과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단순한 기록의 변화를 넘어, 생각을 하나씩 글로 옮기는 과정 그 자체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이어가면서 축적할 수 있게 된 것은 음성 명령이 일상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결과이며, 앞으로도 더 많은 아이디어가 기록과 글로 구체화되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렇게 음성 인식을 통해 작은 아이디어들이 보다 풍부하고 구체적인 콘텐츠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은 창작을 위한 새로운 기회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구체화되지 못하고 사라질 생각들이 음성 인식 덕분에 기록되고, GPT의 도움으로 정리되며, 글의 형태로 발전해간다. 이제는 순간적인 생각조차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기록과 창작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시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노인은 신문지가 가득 담긴 봉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잠시 후, 그 노인은 자기가 방금 배송을 끝냈는데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집주인이 팁을 준 것 같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나는 그의 말을 정확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묘한 인상을 받았다. 그가 주위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애쓰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작은 만남에서 나는 문득 현대의 소통 방식과 연결되는 점을 발견했다. 이제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 덕분에 누구나 특정한 대상에게 맞춘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게 된 시대다. 노인의 경우처럼 주위의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거는 대신, 기술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게만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생긴 셈이다. 이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가 더욱 효율적이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플랫폼을 알아보고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소통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노인은 이 기술의 혜택에서 다소 소외된 듯 보였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조차 어려워하는 세대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디지털 접근성의 문제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선다. 이는 말하고자 하는 이들이 더욱 구체적이고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에 반해, 일부 사람들은 그 기회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나 블로그 같은 플랫폼은 새로운 세대에게 더 많은 소통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 개인의 목소리를 넓은 세계에 전할 수 있는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메시지가 무작위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관심사에 맞춰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거대한 플랫폼의 공습 속에 사라지는 로컬 서비스들
현대 사회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는 결국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초기의 다양한 플랫폼들은 점차 특정 목적에 따라 시장이 한곳으로 집중되며 강력한 독점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집적화 현상은 한 국가 내에서 시작되지만, 이내 글로벌 경쟁으로 확장된다. 한때 한국의 대표적인 SNS였던 싸이월드는 페이스북에 밀려 사라졌고, 멜론 역시 유튜브 뮤직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지역적 특성이 강한 로컬 서비스들이 점차 글로벌 거대 플랫폼에 잠식되는 현상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로, 동네 상권이 점차 사라지고 거대한 쇼핑몰 중심으로 상권이 재편되는 흐름을 들 수 있다. 쇼핑몰은 다양한 상점들을 한곳에 모아 주차 편의성부터 쇼핑의 편리함까지 제공하며 고객을 끌어들이는데, 이런 이점 덕분에 소비자와 상점 모두 거대 집적 공간에 의존하게 된다. 결국 많은 서비스가 집적적 이익을 통해 군집 형태로 바뀌며, 쇼핑몰 내에서만 살아남는 상황으로 재편된다.
강력한 글로벌 플랫폼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상황 속에서도 독자적인 로컬 시장에서 자리를 지킨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아프리카TV와 쿠팡이 있다. 아프리카TV는 ‘숲’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면서도 한국적 정서에 특화된 콘텐츠를 제공하며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이는 한국적인 음지 문화에 특화된 콘텐츠로 차별화된 영역을 구축한 결과이지만, 규모 면에서는 글로벌 플랫폼과 맞서기 어려운 구조다.
두 번째 사례인 쿠팡은 더욱 독특하다. 쿠팡은 미국의 아마존이나 월마트 같은 거대 플랫폼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물류 환경 속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일상생활에 밀접한 제품을 신속하게 배달하는 쿠팡의 시스템은 물류센터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며 가능해졌고, 이는 국내 시장에서 큰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배송’이라는 물리적 특성은 글로벌 기업이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장점이 되었다. 그러나 쿠팡 역시 이 독보적 위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투자가 필수적이다.
결국 글로벌 플랫폼에 잠식되지 않고 시장을 지키는 로컬 서비스들은 다양성의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사례들이다. 당근마켓처럼 지역성을 강조하는 서비스가 로컬 시장에서 경쟁력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로컬 특화 전략은 확장성에 있어 명확한 한계를 가지며, 글로벌 진출이 필요할 때 오히려 약점이 되기도 한다. 또한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요소는 물리적인 요소에 비해 쉽게 복제되기 때문에, 글로벌 플랫폼을 상대로 방어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정된 로컬 시장에서 충분한 이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거나, 물리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 강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틈새 전략만으로는 장기적인 생존이 쉽지 않다. 이 모든 흐름은 로컬 서비스들이 점차 글로벌 플랫폼의 거대한 흐름에 흡수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 피할 방법은 마땅치 않으며, 로컬 시장에 집중하거나 규제라는 형태로 글로벌 플랫폼의 유입을 지연시키는 정도가 현실적인 대응책이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결국 다양한 플랫폼 생태계가 사라지고 획일화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정서를 반영한 로컬 서비스들은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다양성이야말로 로컬 서비스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며, 시장에 더 많은 선택지를 부여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AI 채용으로 인재 발굴의 한계를 넘을 수 있을까?
AI 기반 레퍼런스 체크는 채용 과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의 채용 과정에서 레퍼런스 체크는 주로 지원자의 경력과 평판을 통해 그 사람이 정말 적합한 인재인지를 마지막에 확인하는 절차에 머물렀다. 하지만 단 몇 번의 면접과 간접적인 레퍼런스로는 지원자의 성향과 마인드셋을 깊이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AI가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레퍼런스 체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까지의 AI는 사람들이 업무에서 남긴 기록이나 일상적인 히스토리를 바탕으로,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이나 사고방식, 가치관을 분석해내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단기적인 이미지 관리로 꾸며낸 모습이 아닌 진짜 성향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통해, 회사는 지원자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기존 레퍼런스 체크의 단편적 평가를 넘어, 채용 실패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AI 레퍼런스 체크의 활용 가능성은 더 나아가 채용 과정 전반에서 인재 발굴 단계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지금의 채용 방식은 주로 회사에 이미 지원한 사람 중 적합한 인재를 선별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AI 데이터를 통해 세상에 있는 다양한 인재 풀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제적으로 발굴해내는 방식이라면 채용의 가능성은 훨씬 넓어진다. 필요와 역량을 갖춘 최적의 인재를 정확하게 찾아냄으로써 팀과 조직의 조화를 높이고, 나아가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AI 기반 레퍼런스 체크가 모든 면에서 긍정적 반응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여전히 중요한 이슈로 남아있다. 회사가 AI를 통해 지원자의 숨겨진 성향이나 일상적인 사고방식까지 평가 지표로 삼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지원자의 사적인 이면까지 AI가 들여다보는 것이 정말로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윤리적 측면에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지원자의 자발적인 동의를 제시할 수 있다. 모든 지원자가 자신의 성향과 업무 스타일, 사고방식까지 공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진정성과 강점을 자신 있게 드러내고 싶은 지원자라면 AI 레퍼런스 체크에 동의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방식이다. 자신의 데이터를 공개하는 데 동의한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의 진정성이나 성향에 대해 스스로 신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며, 반대로 공개를 원하지 않는 지원자는 상대적으로 약점이나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AI 레퍼런스 체크 동의 여부 자체가 그 사람의 진정성과 신뢰성을 평가하는 또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결국 AI 기반 레퍼런스 체크는 지원자가 자신의 진정성을 자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기업에게는 더욱 적합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 방식을 제시한다. 다만, 프라이버시 보호와 윤리적 검토를 충분히 수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AI가 제공하는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지원자의 성향과 사고방식, 진정성이 검증된 채용 과정이 구현된다면, 기업과 지원자 모두에게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