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도덕의 의미
어제는 혼자 설렁탕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창가에 자리잡았고, 이미 단 간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별로 식욕이 없는 상태에서도 밥 같은 것을 먹고 싶어서 설렁탕을 먹었을 뿐이다. 저 멀리 대각선 건너편으로 행색이 초라한 12명 가량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이미 소주를 몇 병은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그 중 2~3명은 한국말임에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그게 발음 때문이었는지 지나치게 크게 말해 울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끊임없이 좌중을 압도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커다란 웃음으로 보답했다. 밥을 한숟갈씩 뜨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은 의무인가, 아니면 타인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인가. 설렁탕집은 공공장소인가 아닌가? 술을 파는 식당이라면 술집에서 허용할만한 소음을 내는 것은 문제가 없는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빠르게 설렁탕을 비우고 나가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안에서 아이들이 지나치게 시끄럽게 떠들면, "너희들 혼자만 사는 집도 아닌데 좀 조용히 해주겠어?"라고 자제시킨다. 식당에서 아이들이 큰소리로 웃거나 대화하면, "공공장소에서 이렇게 떠드는게 말이 돼?"라고 주의를 준다. 덕분에 아이들은 적당한 크기로 대화하고, 식당 같은 곳에서는 시끄럽게 굴지 않는다. 어제 내가 설렁탕 집에서 만난 그 무리들은 가정 교육을 못 받은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시끄러운 사람은 주위에 피해를 준다. 공공장소에서 조용한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하지만 시끄러운 사람들에 의해 피해를 받는다. 약간은 불공정거래 같다는 느낌이 든다.
주말 오전 컴퓨터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거실에서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조금 크게 들렸다. 주의를 시킬까 하다가 딜레마에 빠졌다. 나는 어제 설렁탕집에서 떠들던, 심지어 아이들의 소리보다 몇 배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그들에게는 왜 주의를 줄 수 없었을까? 그들에게 한 마디 하지도 못하던 내가 아이들에게 주의를 줘야 한다면 그건 어떤 명분 때문일까? 이런 질문을 하다가 그냥 아이들의 소리를 참아 보기로 마음 먹었다. 몇 분이나 참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성의 가치
우리가 인간성을 보존해야 할 당위적인 이유가 있을까? '인간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의 죽음은 세포의 생명이 다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고, 나의 몸부림은 우주적 차원에서 먼지만도 못한 사소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기뻐하고 슬퍼하고 살아가는가? 그것은 우리가 인간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 않으면 너무나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삶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런 삶을 잠시나마 사랑을 통해서 잊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성이란 것은 굳이 가지고 있어야 할 당위는 없지만, 행복하기 위해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상상력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