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규제 사이의 줄다리기
지난 2년여간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들은 자유를 제한 당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비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유럽 국가들조차 마스크 착용등이 강제되기도 하고, 이동의 자유를 제한 당하기도 했다. 보통 국가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국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유의 제한에 대해서는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자유의 제한은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해야 한다. 현재의 마스크 정책만 보더라도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실외 마스크 필수 착용이 해제 되기 전까지는 더 비합리적이었다. 실외에서는 실내에 비해 바이러스의 전파가 약해지는 상황임에도 실내에서 밥 먹을 때는 마스크를 벗고 다들 먹으면서도,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현시점에서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실내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이것 역시도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치명도가 낮아진 오미크론으로 인해 위드 코로나가 이미 진행중이며, 식당에서 사람들이 밥이나 술을 먹을 때는 마스크를 벗은 채로 활동한다. 결국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할 때까지만 보여주기 식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상한 상황인 것이다. 이는 내가 자유의 제한에 대해 생각하는 두번째 전제와도 연결되는데, 자유의 제한은 최소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수한 위험 상황에서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지만, 그 제한은 최소화 되어야만 한다. 코로나 19가 덜 치명적이 되고, 실내 영업이 24시간 허용된 상황에서 개인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요하는 것은 최소한의 제한으로 보기 힘들다. 결국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최소한의 제한도 아닌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빠른 시간 내에 사라져야 할 것이다.
부활
오미크론의 영향에서 이제 겨우 벗어난 느낌이다. 아직 목이 상쾌하진 않지만, 목에 커터칼로 긋는 느낌이 사라진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지. 전쟁같았던 지난 일주일이 지나고, 오늘에서야 바깥 풍경을 내다볼 수 있었다. 벚꽃이 피어 있었다. 다시 살아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