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지고 걷는 시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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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회사에서 느긋한 태도로 일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는 점은 조직의 활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누군가가 “나 정도면 이런 대접은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를 기반으로 업무에 임할 때, 그 느긋함은 단순히 개인의 태도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는 팀원들 사이에서 은연중에 “여기서는 이런 태도로 일해도 되는구나”라는 인식이 퍼질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조직 전체의 태도와 생산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시니어들의 느긋한 태도가 조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단순히 개인적인 효율성 저하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는 조직의 분위기를 경직되게 만들며, 후배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롤모델로 자리잡는다. 적극적으로 배우지 않더라도,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업무 태도가 용인된다는 사실 자체가 조직의 동력을 갉아먹는다. 조직의 성공을 위해서는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시니어가 이러한 태도를 보일 경우, 이는 회사 전체에 지속 가능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시니어가 항상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는 상황에 따라 느긋함과 기민함을 적절히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큰 그림을 보고 전략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여유로운 자세로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장에서 발빠른 대응이 필요한 순간에도 기민함을 잃지 않고 앞장서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진정한 시니어의 역할이며, 조직 내에서 존경받는 리더로 자리잡는 방법이다.
그러나 모든 시니어가 이처럼 균형 잡힌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느긋함과 권위주의가 결합된 태도는 조직을 경직되게 만들고, 후배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조직의 성공을 위해서는 때로는 이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시니어를 과감히 배제하거나 자연스럽게 퇴장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조직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선 냉정한 결단이 불가피하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그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한다. 회사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이고 비효율적인 태도가 용인되는 환경이 될 경우, 구성원들은 이와 같은 태도를 따라가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이는 개인의 성장을 저해할 뿐 아니라, 조직 전체의 역량에도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한다.
회사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곳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회사의 방향을 흐트러뜨릴 만큼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그때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 결단은 어렵고 고통스럽겠지만, 조직의 건강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택일 것이다. 시니어의 태도와 행동은 조직의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적절한 느긋함과 기민함의 조화를 이루는 시니어가 많아질 때, 조직은 비로소 균형 잡힌 성장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잘하는거야"라는 말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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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만으로 당신은 상위 10%에 들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꾸준함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를 인정하며 격려하려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꾸준함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목표를 이루는 성과이지, 꾸준함 자체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꾸준함이라는 행위를 지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심지어 목표를 달성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만큼 했으니 괜찮다”는 태도는 결과적으로 목표 달성이라는 본질을 희석시키고, 성과를 내기 위한 긴장감과 압박감을 약화시킬 뿐이다. 꾸준함은 분명 중요한 첫걸음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목표를 대체할 수 없다.
특히 이런 태도는 기대수준을 지나치게 낮춘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목표는 하위 90%와의 상대평가로 위안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성취를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 꾸준함은 그 자체로 상위 10%에 들어가는 요소일 수 있지만, 그 상위 10% 안에서 실제 성과를 만들어내는 1%에 들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목표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의 잣대로 측정해야 한다.
또한, 꾸준함을 성취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태도는 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화시키며, 실제로는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하는 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꾸준함이라는 과정에 안주한 사람들은 결국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냉정한 평가와 개선을 등한시하며, 무의미한 움직임만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꾸준함을 성취했다면 그 다음 질문은 명확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을 이루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단지 꾸준함 자체를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는 단지 과정을 완수했다는 위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꾸준함은 필요조건일 뿐,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꾸준함을 기반으로 성과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으로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긴장감을 유지하고, 실제 성과를 이루기 위한 압박과 집중을 놓쳐서는 안 된다. 꾸준함은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지만,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꾸준함이란 필요조건을 충족한 뒤에는 충분조건을 만족시키는 결과를 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임직원 특가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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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임직원 특가라는 문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말은 마치 특별한 혜택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임직원에게만 저렴하게 제공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임직원이라서 더 싸게 드린다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는 구매력이 보장된 집단에 광고하고 싶다는 판매자의 계산이 숨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문구를 보고 합리적인 판단을 잠시 내려놓는다. 내가 늘 느꼈던 의문은 이것이었다. 사람들은 정말 이걸 저렴하다고 믿는 걸까, 아니면 알고도 속아주는 걸까.
임직원 특가는 심리적 프레임을 노린 전략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합리적 판단을 하려면 가격 비교가 필수다. 하지만 특가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과 나만의 혜택이라는 착각은 가격 비교의 과정을 건너뛰게 만든다. 여기에 더해 임직원이라는 소속감과 특별 대우를 받는 듯한 감정적 만족감이 결합되면, 결국 손에 든 가격표를 의심하기보다는 신뢰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할인율이 크지 않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가 소속된 회사에서만 받을 수 있다는 한정된 혜택이 주는 심리적 위안이다.
집단적 행동 또한 임직원 특가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동료들이 싸다라고 말하며 구매를 시작하면 나 역시 그 흐름에 휩쓸리기 쉽다. 사회적 증거라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구매하는 모습을 보면 그 제품은 더 신뢰할 만하고, 나도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손실 회피 심리까지 더해지면, 이른바 합리적 소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놓치면 손해라는 두려움이 선택을 서두르게 하고, 가격의 합리성은 그저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린다.
소비자가 이런 마케팅에 속지 않으려면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임직원 특가라는 문구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기보다는, 이 제품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실제 시장 가격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합리적인지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임직원 특가는 할인율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저 심리적 만족감을 대가로 비싸게 구매할 뿐이다.
나는 이 문구를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어딘가 속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특별한 혜택인 척하지만, 그저 보장된 소비자들에게 광고를 더 자연스럽게 전달하려는 전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임직원 특가는 구매자에게는 혜택이 아니라,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된 판매자의 광고비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아니면 그냥 속아주는 척 하고 있는 것인지.
더이상 나에게 추천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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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정보와 콘텐츠의 양이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서는 순간부터였다. 어떤 콘텐츠를 보여줄지를 정하는 행위가 곧 권력이 되었고, 큐레이션의 방향은 우리의 관심과 시간을 지배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큐레이션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은 진정한 선택지가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이라는 기준 뒤에 숨겨진 것은 사실 자극적이고 흥미를 끌기 쉬운 콘텐츠에 가중치를 둔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방식은 전통적 큐레이션이 가졌던 독창성과 특별함을 앗아가고 있다.
전통적인 큐레이션은 그 과정에 큐레이터 개인의 경험과 판단, 그리고 취향이 녹아 있었다. 물론 한계가 있었다. 큐레이터가 선택할 수 있는 콘텐츠의 폭이 제한적이었고, 특정 주제에 대한 편향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 덕분에 오히려 독특한 취향과 창의적인 선택이 가능했다. 큐레이터를 통해 전혀 예상치 못한 콘텐츠를 접하게 되거나, 나의 기존 관심사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반면, 오늘날의 큐레이션은 한 가지 기준에 매달려 있다. 바로 대중성이며, 그 안에서도 특히 분노, 시기, 질투 같은 강렬한 감정을 자극하는 콘텐츠들이 부각된다. 이는 취향의 평균화를 가속화하고, 모두가 비슷한 콘텐츠를 소비하게 만드는 폐해를 낳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는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자극적 콘텐츠의 범람과 그로 인한 정신적 피로를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단순히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깊이 생각하거나 느끼게 하는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좋아요나 클릭 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체류 시간이나 읽기 위해 멈추는 스크롤 지표를 활용할 수 있다. 더불어 진지한 글이나 평온한 감정을 유도하는 콘텐츠는 본질적으로 좋아요를 많이 받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자극적인 콘텐츠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지만, 깊이 있는 콘텐츠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들여 읽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런 새로운 큐레이션 방식을 구현하려면 기술적인 발전뿐 아니라 콘텐츠 소비 습관의 변화도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기회를 주고, 깊이 있는 콘텐츠의 가치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이는 기술이 독자들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결국 큐레이션의 기준이 다양해질수록 우리는 자극적 콘텐츠에 매몰되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큐레이션은 독창성과 창의성을 다시 회복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판단을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단순히 대중성과 자극성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콘텐츠만 소비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과 창의적인 선택이 존중받는 큐레이션을 위해 이제는 더 나은 기준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상을 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