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필요한 시대가 온다
90년대의 직장 문화는 엄격하고 보수적이었다. 정장 차림이 기본이었고, 상사의 말에 대꾸는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문화도 점차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구성원 간 격의 없는 대화가 가능해졌고, 복장 역시 자유로워져 가벼운 복장으로 회사에 출근하거나 외부 미팅에 나서는 이들도 생겨났다. 형식과 제약을 탈피해 자율성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자유가 어느 순간 방종으로 이어지면서 직장 내 규율이 무너지고, 직책자의 권위까지 도전받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자유의 남용은 프로젝트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의 전체 관리자로서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필수적인 미팅을 요청했을 때도 특정 팀의 구성원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유를 들며 참석을 거부하는 일이 생겼다. 또한 자유로운 발상이 필요한 미팅임에도 불구하고, 회의 내용이 미리 구체적으로 정리된 자료를 요구받기도 했다. 발산 단계에서의 아이디어를 제한하려는 이 같은 요구는 자칫 회의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 관리자 입장에서는 비협조적인 태도와 정보 부재로 인해 전체 프로젝트의 진척이 어려워지며, 실패 확률마저 높아지는 것이다.
수평적인 분위기와 자유가 주는 장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율과 책임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의견을 존중하되,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절차와 책임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젊은 직원들 중에는 수평적 문화를 추구하면서도 직장 내 규율의 중요성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유와 방종은 분명히 다르며, 수평적 문화 속에서도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규율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제 직장 내 문화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과정에 있다. 예전의 보수적인 문화와 지나치게 자유로운 문화를 모두 경험한 끝에, 직장 내 원칙과 규율이 다시금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예의를 중시한다기보다, 회사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원칙과 규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같은 페이지를 유지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려면 효율적이고 명료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순히 논리적으로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을 넘어선다. 특히 상대와 내가 같은 이해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나는 이를 위해 미팅 중에 자연스럽게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을 사용하는 습관이 있다. 상대가 말한 내용을 내 말로 다시 한번 정리해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요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은 각자 머릿속 생각을 기반으로 대화하다 보니, 같은 말을 들어도 해석이 다를 수 있다. 패러프레이징을 통해 서로 동일한 이해를 하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이렇게 해야만 회의 말미에 가서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불필요한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이미 끝나버린 논의의 흐름을 다시 되돌리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나는 패러프레이징을 통해 논의가 엇나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 한다.
이러한 습관은 회의를 효율적으로 만들고,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회의가 명료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중간마다 같은 페이지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덕분에 나와 상대가 함께 논의의 궤도를 잘 유지할 수 있다. 다만, 때로는 상대가 이 방식을 부담스럽게 느낄 때도 있다. 특히 회의에서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방식을 조금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몇 번 함께 하다 보면, 대부분은 오히려 이 방식의 장점을 체감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상대방도 명확한 회의의 효과를 경험하게 되고, 내가 패러프레이징을 활용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 듯하다.
패러프레이징은 복잡한 주제의 논의일수록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복잡한 논의는 한순간만 방심해도 주제가 빗나가거나 각자의 논의 방향이 달라지기 쉬운 만큼,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도움이 된다. 특히 대화의 중심을 잃지 않고 같은 방향을 유지하는 것은 논의와 문제 해결에 있어 커다란 장점이 된다. 따라서 대화를 주도하고 회의를 이끌어야 하는 매니저라면, 패러프레이징을 한 번쯤 시도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매니저 입장에서는 팀의 이해를 하나로 묶는 일이 중요한데, 패러프레이징을 통해 팀원들이 모두 같은 페이지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은 팀워크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패러프레이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상대의 말을 그대로 요약해줄 때, 상대방도 공정하게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편안함을 느낀다. 감정적 판단이 개입되면 상대방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논리적 관점에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회의는 더욱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은 상대와 나 사이의 이해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다. 패러프레이징은 그 간극을 줄여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유용한 도구로, 회의의 효율성을 높이고 업무 목표를 더욱 원활하게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엘레베이터 관리의 책임자는?
최근 여러 분야에서 고객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플랫폼에서 상품을 주문했는데 배송이 지연될 경우, 고객센터에서 받는 답변은 보통 택배사로 직접 연락하라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객이 처음 컨택한 창구에서는 단순히 책임을 외주사나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고객은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며 책임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인다. 이처럼 책임을 전가하고 본인들은 뒤로 빠지는 태도는 매우 무책임해 보인다.
오늘 아침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담당자를 물었는데 돌아온 답변이 현대엘리베이터였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외부 대행업체일 뿐 아파트 내 엘리베이터 관리에 대한 주체적인 책임을 지는 곳은 아니다. 주민으로서 당연히 아파트 관리사무소 내에 있는 엘리베이터 담당자가 고객 응대의 첫 번째 책임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이 아파트 담당자가 아닌 외부 업체를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면, 관리사무소가 하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외부 업체를 언급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이유는 귀찮고 부담스러운 일에서 벗어나려는 편리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고객 응대의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고, 고객이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내부 담당자를 안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명확한 책임 소재가 설정되지 않으면 고객이 겪어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이고 서비스 전체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진다. 더욱이 이런 문제는 매번 지적하지 않으면 그대로 넘어가고, 언젠가부터는 당연한 업무 방식으로 자리잡아 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을 만나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외부 업체일 뿐이고, 관리사무소 내 담당자가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분명히 요구한다.
서비스나 관리 조직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책임 소재가 투명하게 밝혀져야 하고, 고객이 처음 접촉한 창구에서부터 일관성 있는 응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관리 주체가 불분명하고 고객이 문제 해결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야 하는 구조는 결국 그 조직에 대한 고객의 불신을 키울 뿐이다. 이는 단순히 특정 문제의 해결 여부를 떠나서, 서비스 전체의 책임감에 대한 신뢰와 직결된다.
고객이 누군가에게 ‘직접 지적’해야만 해결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은 이미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서비스 제공자와 관리자가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고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한,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는 요원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