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은 버리고 강점 강화를 하라면서요?
세상에 전해지는 대부분의 조언은 일반화되어 적용되기 쉽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을 때도 많다. 대표적으로 ‘강점을 강화하라, 약점은 버려라’는 조언이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강점을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강점만 강화한다고 해서 항상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는 영역에서는 약점의 보완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자들이 보완해온 부분에서 격차가 생기고, 이는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강점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약점을 보완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문제는 약점의 보완이 강점 강화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약점이란 대부분의 경우 자신에게 맞지 않거나 능숙하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더 큰 투자를 요구한다. 특히 경쟁이 극심해진 환경에서 효율성이 낮은 작업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스스로 리스크를 높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선택은 바로 약점을 외주화하거나 위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디테일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중요한 경우라도 그 디테일이 목표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해당 작업을 맡을 담당자가 이미 디테일에 강점이 있는 경우라면 이를 위임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반면, 그 디테일이 목표 성과에 큰 영향을 주거나 이를 담당할 인력조차도 디테일에 강점이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약점을 외주화해 에너지를 덜어내고, 자신이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결론적으로,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최소화하라는 조언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경쟁이 극심하고, 더 완벽한 준비가 요구되는 상황이 도래할 때, 약점은 오히려 리스크가 되기 쉽다. 따라서 약점의 보완이 중요해지는 시점에서는 직접 보완하기보다는 외주화를 통해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몰입, 일상의 모든 순간을 바꾸는 힘
몰입은 단순히 특정 일을 할 때만 필요한 특별한 상태가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몰입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인형의 눈알을 붙이는 단순한 작업조차 온전히 집중해 몰입할 때, 그 작업의 깊이가 달라지고, 진정한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몰입은 일의 종류나 난이도와 무관하게,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일에 어떻게 몰입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도 달라진다.
몰입의 경험이 주는 만족감은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과는 다르다. 몰입은 집중이 주는 몰입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글을 쓰거나 사진을 편집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것처럼, 몰입의 순간은 고요하면서도 깊은 만족을 준다. 그 순간의 경험은 신체적으로 피로감을 남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취감과 충실한 포만감으로 채워진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넘어, 몰입을 통해 우리는 더 큰 의미와 가치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몰입을 방해받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책 ‘도둑맞은 집중력’이 지적하듯, 우리의 주의력은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빼앗기고 있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 끝없이 울리는 알림은 우리의 관심을 갈라 놓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려는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몰입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도 그 도달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낀다. 몰입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분산시키려는 수많은 자극을 의식적으로 차단해야 하기에, 몰입의 과정은 이제 더욱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에서 강조하는 진정한 성장은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깊은 몰입의 순간을 쌓아가면서 이루어진다. 시간이 쌓이는 동안에도 집중이 흩어져 있다면, 그 시간은 양적으로만 의미가 있을 뿐 질적인 성과는 따라오지 않는다. 몰입된 상태에서 경험하는 시간은 더욱 큰 성취와 성장으로 이어진다. 몰입이 필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작은 작업에서조차 몰입을 통해 우리는 일의 깊이를 발견하고, 그 순간의 진정한 기쁨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몰입을 통해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진정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몰입의 경험은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고, 나아가 우리 자신을 충실히 쌓아올린다.
더 이상의 빠른 표범이 사라지는 시대
생산성의 향상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는 경쟁을 심화시키며 더 나은 삶을 약속했지만, 정작 그로 인한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더 빠른 가젤이 포식자의 위협을 피하려 진화하듯, 그 가젤을 잡기 위해 더 빠른 표범이 등장하고, 이보다 더 빠르게 도망치는 가젤이 다시 나타난다. 끝없이 순환하는 이 경쟁 속에서 서로는 서로의 한계를 끌어올리며 발전을 거듭하지만, 그 과정은 어느덧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전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 상황은 마치 군비 경쟁처럼, 한쪽의 발전이 상대방의 발전을 불러오며 본질적으로 나아질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해버린 것이다. 개인의 생산성은 계속해서 증가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삶의 여유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산성은 본래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의 행복과 만족이라면, 생산성의 향상이 그 목표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경쟁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AGI(인공지능 일반)의 등장으로 인간의 생산성은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생산성 경쟁을 주도하던 인간이 더는 AGI의 효율성에 필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인간이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 또한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다가오는 AGI 시대에는 생산성조차도 인간의 영역이 아닌 기계의 몫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더 이상 ‘생산성’이라는 잣대로 평가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할 때, 인간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각자가 지닌 고유한 특별함에 있다.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관심사와 열정을 통해 특별함을 발휘하고자 할 것이며, 이런 특별함을 서로 공유하며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때의 특별함은 단순히 성과나 성취의 기준이 아닌, 개인이 지닌 독특함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생산성 중심의 인간관계가 아닌, 관심과 취향에 따라 만들어진 인간관계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제공할 것이다. 이제 인간은 성과나 효율성에서 자유로워져 각자의 정체성에 기반한 네트워크 속에서 연결된다. 성과가 흔들릴 때마다 불안정해지는 기존의 소속감과 달리, 정체성에 기반한 소속감은 훨씬 더 끈끈하고 안정적이다. 각자가 지닌 정체성과 고유성을 중심으로 얻게 되는 소속감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하며, 인간은 그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이처럼 AGI 시대가 도래한다면, 인간은 본래의 인간다움을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고 강화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일 수 있다. 각자의 고유한 가치와 열정을 표현하며 안정적인 공동체 속에서 인정받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생산성 중심 사회가 제공하지 못했던 진정한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실현할 가능성 중 하나로 떠오른다. AGI 시대가 본격화되며 지금껏 놓쳐온 인간다움의 본질이 회복될지, 우리는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불편함이 만들어 내는 가치
변화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반복된다. 우리는 모두 변화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변화가 안고 있는 어려움과 불편함에 대해 한 발 물러서기 마련이다. 특히, 내가 추진하는 변화가 조직 전체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큰 규모라면, 이는 기존에 자리 잡은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만큼이나 이해와 설득이라는 난제를 함께 동반한다.
사람들은 보통 변화에 반발한다. 특히 거버넌스나 프로세스와 같은 구조적인 변화는 더 강한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변화는 조직 전체에 걸쳐 강제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한 개인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 흐름에 따라야 한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만의 효율성을 잃는 일로 여겨질 수 있고,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는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대개 이런 변화는 소규모 그룹을 대상으로 배경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진행하는 것이 정석으로 여겨지지만, 내가 담당한 변화는 일종의 ‘광역 타격’에 가까웠다.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주는 수동성에 불만을 느끼기 쉽고, 이에 대한 반응을 접하는 나 역시 어느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거버넌스의 도입이 꼭 필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뛰어난 개인들이 아무리 많은 성과를 낸다 해도, 그들을 통해 전체의 효율을 담보할 수는 없다. 즉, 상향 평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거버넌스나 프로세스라는 체계적 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뛰어난 개인에게 자칫 족쇄처럼 느껴질 수 있다.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형태로 전달되는 큰 변화일수록, 왜 이런 일이 필요한지, 왜 지금 해야 하는지를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마주했던 반응들도 대부분 무관심하거나, 굳이 바꿔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새로운 프로세스를 시도해 보고 싶어도 개념 자체가 어렵다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향 평준화’라는 커다란 명분이 현장에서는 당장의 필요와 맞물리지 않을 때 반발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때가 있다. 프로세스의 효용을 발견하고 이를 실제로 경험한 일부가 조금씩 긍정적인 경험을 공유할 때다. 그들이 주도적으로 템플릿을 활용하고, 이로 인해 업무가 원활해진 사례들을 보며, 내가 전하고자 했던 변화가 조직에 조금씩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변화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점진적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그 어떤 결과보다 값지게 다가온다. 템플릿이 반복해서 사용된다는 사실은 그 유용성을 증명하는 일이며, 정말 쓸모없는 변화였다면 이미 모두가 외면했을 것이다.
변화는 단지 현재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상태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기존 상태가 문제가 아니더라도, 전체 효율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체계성과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큰 변화는 모두에게 구체적인 비전을 즉시 제공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화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꾸준히 강조하려고 한다. 특히 기존 방식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설명함으로써, 왜 우리가 이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세부적인 어려움과 장기적인 손실을 함께 설명할 때 변화의 필요성은 자연스럽게 와닿는다. 이는 단순히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없이는 불가피하게 닥쳐올 문제를 피할 수 없음을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며 점진적으로 정착된 변화는 조직의 일상에 스며들고,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체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더 나은 길로 나아가게 된다.
사람들이 사소한 것에 화를 내는 이유는?
사람들이 왜 여유가 없고, 왜 사소한 일에 쉽게 화를 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는 단순히 그들의 성격 탓이 아닐 수도 있다. 깊이 생각하는 데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만큼 시간과 집중을 요구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일상적인 생존의 스트레스 속에서 깊은 사고를 할 여유조차 가지기 어렵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보다 단순하고 빠른 결정을 내리고, 이분법적인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고민할 때마다, 스스로를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매슬로의 욕구 이론을 보면, 기본적인 생존 욕구나 안전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높은 차원의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나 역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나는 그들의 환경을 이해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려고 한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면, 그들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나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화를 나에게 돌리기보다는 그들이 겪는 어려움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동정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 덕분에, 나는 그들이 화를 내는 상황에서도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분노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상관없이, 그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성장의 여부는 그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내 역할은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진 능력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데 있다고 본다.
회사에서의 소통에서도 나는 효율성을 중시한다. GTD 방식을 통해 내가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머릿속에 여러 가지를 동시에 떠안는 부담을 줄이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사고를 요구하기보다는, 내가 미리 생각한 결론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대부분 문제가 없지만, 만약 상대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면 날카로운 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회사의 비즈니스 논리를 명분으로 삼아 설득하려 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상위 관리자를 만나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상대방과의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기대치 조절이다. 모든 스트레스는 기대 수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가 나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가정하고 대화한다. 상대가 아직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되지 못한 상태일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그에 맞춰 기대를 낮춘 채로 대화를 시도한다. 이는 갈등을 줄이고, 상대방과 더 원활하게 소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성공은 언제올지 모른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래깅 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래깅 효과는 어떤 행동의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현상을 말한다. 마치 채찍을 휘두를 때 손잡이와 끝부분이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행동이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약간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이렇게 행동과 결과 사이에 지연이 있을 때 사람은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해 동기 부여를 잃기 쉽다.
많은 경우 성과는 시간이 지나야 나타나지만, 당장의 결과를 보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노력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도 한동안 구독자 수가 줄어들어 영상 제작 의욕이 점차 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가끔 예상치 못한 순간에 교육 문의가 들어오기도 하고, 기존 영상의 조회수가 폭발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꾸준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성과가 없을 때보다 성과가 나올 때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성과가 보이면 그 순간에는 만족감에 젖어 더 큰 성과를 기대하게 되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꾸준히 하던 루틴이 쉽게 깨어지곤 한다.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성과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이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 결국 핵심이다. 이런 꾸준함이 진정한 성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를 위해 유튜브 채널 운영 주기를 조절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하나씩 영상을 올리려 했지만, 그 주기를 맞추는 것이 점차 부담으로 다가왔다. 결국 주기를 한 달에 한 번으로 바꾸었고, 오히려 이 방식이 더 적합했다. 채널의 특성상 최신성을 요구하는 콘텐츠가 아니기에 주기를 조절했음에도 큰 변화는 없었고, 무엇보다 루틴을 깨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콘텐츠 제작 시에 소스가 없으면 난감한 경우가 많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도 마련했다.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이나 말이 떠오를 때마다 음성으로 녹음하고, 자동으로 요약해 노션이나 옵시디언에 정리해둔다. 이런 프로세스를 통해 생각을 놓치지 않고 정리해두면, 그 아이디어들이 모여 글로 작성되거나 유튜브 영상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준비된 소스들이 쌓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안정감을 준다. 그 덕분에 심리적 압박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꾸준함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결국 꾸준함을 지속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재미’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그 말들을 기록하고 정리해두면서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 이 재미가 있기에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다.
꾸준함은 단순히 성과를 향해 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성과와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생각보다 소소한 곳에서 온다. 소스가 쌓여 있을 때 주는 안정감, 그리고 그 과정을 재미있게 느낄 때, 꾸준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좋은게 좋은거 맞아?
“좋은 게 좋다”는 말은 겉보기에는 서로 간의 윈윈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주 사용한다.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소소한 손해는 감수할 수 있지만, 문제는 테이커들이 주로 이 말을 이용해 자신은 받기만 하면서도 결코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버와 테이커가 있다면, 기버는 협력의 출발점이 되지만, 테이커는 언제나 받아들이기만 한다. 기브앤테이크가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테이커들은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익을 취하고도 나누지 않는다. 결국 기버들은 자신의 호의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호의가 반복적으로 이용당하면, 기버는 지치고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과거에 테이커와의 관계에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이 처음부터 주차비 같은 사소한 금액조차 내지 않으면서도,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세 번 정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나는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 사람은 당황했지만, 본인의 행동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듯했다. 나에게는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관계를 끊는 게 최선이었다.
테이커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을수록 나만 피폐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테이커인지 아닌지를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테이커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낫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기 시작하면, 인생 자체가 점점 더 힘들어질 뿐이다.
결국, 나는 사람과 그들이 하는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관계를 맺는다. 인생에 신경 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테이커들과의 불건전한 관계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 그들과 관계를 끊고 나니 인생이 더 단순해졌다. 인생에서 불필요한 복잡함을 제거하고, 나에게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쁜 피드백에 대처하는 방법
사람은 누구나 부정적 피드백을 받으면 기분이 상한다. 잘못을 지적받는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즉각적인 감정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는 단순히 자존심이 상해서가 아니라, 본능적인 방어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고자 변명하거나, 심지어 화를 내며 피드백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반응은 논리적인 사고에 기반한 것이기보다는, 단순히 그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차츰 가라앉고, 그제야 사안을 더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부정적 피드백을 바로 수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그 순간 감정적인 불편함을 느끼고 반발하려는 마음이 들지만, 성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피드백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더라도, 상대방에게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결과 상대방은 이 사람을 성숙하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인다. 이러한 성숙한 대응이 장기적으로 관계를 더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피드백을 받자마자 즉각적으로 방어하거나 변명으로 일관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이 사람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피드백이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나에게 개선을 기대하고 주는 것이다. 그러나 피드백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면, 상대는 더 이상 피드백을 하지 않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된다. 이는 관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결국, 순간적인 방어 반응은 그 순간의 불편함을 피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손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부정적 피드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본능적으로 방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감정을 억제하고 성숙하게 반응하는 것이 상대방의 신뢰를 얻고 관계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각적인 감정적 반응을 억누르고, 피드백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자세가 장기적인 신뢰를 쌓는 데 필수적이다.
우아한 임원들의 처절한 발버둥
비즈니스 세계에서 임원들이 겪는 불확실성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경기 변동, 경쟁사의 돌발적인 전략 변화, 고객의 변덕은 그들의 통제를 벗어난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워도, 세상은 그들의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문제는 이 불확실성이 단순한 예측 실패로 끝나지 않고, 전략적 실패가 곧 책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정의 성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매 순간 임원들은 스스로의 판단이 옳은지 의심하면서도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길을 걸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링 위에 오르기 전에는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임원들은 이미 그 링 위에서 계속해서 맞고 있는 샌드백이다. 맞을 때마다 흔들리고, 쓰러질 것 같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 버티고 서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하고, 그들이 떠나면 곧바로 그 책임의 무게는 팀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들이 견뎌야 할 책임감은 단순히 회사의 성과를 떠나, 조직을 유지하고 이끄는 문제이자 개인의 생계와 명예가 걸린 문제다. 결국 이들은 두들겨 맞으면서도 일어나 다시 한 번 계획을 세우고, 또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런 반복은 그들에게 일상이다.
우리가 종종 착각하는 것은, 임원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고요하고 우아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물 밑에서 누구보다도 바쁘게 발을 굴린다. 경쟁사의 움직임에 대응할 방법을 고민하고, 시장에서 차별화 될 전략을 찾고, 조직의 자원을 최적화할 수 있는 해법을 끊임없이 연구한다. 그들의 하루는 항상 새로운 고민으로 시작되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을 밖에서 보기에는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임원들의 고민과 갈등은 수면 아래 숨겨져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들의 노력을 쉽게 폄하하기 일쑤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은 쉽게 판단되기 마련이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오리가 우아하게만 보이는 것처럼, 임원들의 하루는 고요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발을 굴리고, 방향을 잡으며 온갖 변수를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의 머리 속은 24시간 가동 중이다. 그들은 매 순간 실패할 수도 있는 전략들을 고민하고, 그로 인한 책임을 감내할 각오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임원을 반드시 존경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그들의 발버둥을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누군가는 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자리에 서지 않은 이들이 쉽게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그들의 우아함 속에 감춰진 치열함을 이해하고, 조금은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도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살고 있을 테니까.
과거의 말, 현재의 나: 변화와 성장을 이야기하다
면접에서 과거 트위터 글에 대해 질문을 받아서 불편하다는 글을 보았다. 그 불편함은 아마도 당시의 미숙함이 현재의 자신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은 시간과 함께 그 맥락이 희미해지거나, 처음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면접과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 과거의 발언이 현재 자신의 모습과 대조될 때, 그것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오히려 자신의 성장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먼저, 과거의 글이 왜 작성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시의 생각이나 감정이 어떠했는지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현재의 시점에서 그 글을 돌아봤을 때, 미숙했던 부분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배운 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과 고민을 통해 생각이 바뀌고, 성숙해진다. 따라서 면접관의 질문이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과거의 자신이 지금과는 다른 기준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고,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직장 내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조직의 논리와 복잡성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식의 설명이 가능하다. 경력을 쌓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감정보다 더 큰 시스템을 이해하고 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배움을 얻었는지 면접관에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과거의 미숙함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를 강조하는 것이 면접에서 더 긍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다. 트위터와 같은 공개된 공간에서의 발언은 언제나 다시 거론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자신이 했던 말에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발언이 지금의 가치관과 다르다면, 왜 그 변화가 일어났는지, 어떤 경험이 그것을 이끌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면접관은 단지 과거의 잘못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장과 현재의 성숙함을 보고자 하는 것일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솔직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과거의 발언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성숙해지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