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초의 최후

춤을 추기를 기대하고 화분에 심었던 무초가 결국 모두 죽었다. 너무 쉽게 발아가 되어서 어렵지 않다 생각했는데, 첫 번째 싹들이 조금씩 키가 자라나 싶다가 모두 드러누워 버렸다. 생명을 키우는게 이처럼 쉽지 않다 싶다가도, 무초의 싹이 이렇게 나약하다면 자연상태에서 무초는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열량 마가렛트

고열량의 마가렛트를 한 박스 먹어도 살 안 찌던 리즈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발산과 수렴

방 정리 하고 있는데 애가 와서 자꾸 어지르는 기분. 애야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방정리 하는 사람 입장에서 짜증날 뿐.


거짓 행복

표면적 행복, 일방적 행복, 일시적 행복이라도 행복이겠지


절박감이 만들어 내는 것

나는 비즈니스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기이한 재주를 뽐내는 사람들 중에 대다수는 매우 특별한 시련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련은 그들을 절박하게 만들었고, 그 길이 아니면 안되도록 몰아갔다. 최고의 결과를 만들려면 절박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절박감이라는 놈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만드는 고난은 후에 내가 통제하지 못한 고난의 상황을 줄여준다'는 팀 패리스의 말처럼, 고난으로 들어가 절박감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 다가오는 느낌적인 느낌.


죽도록 사랑하는 일에 대해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시도해 볼만한 것들을 찾아 낸 사람들은 정말 그 일을 사랑해서일까, 아니면 상황에 떠밀려 그 일에 올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만들어져서일까.


중년의 삶

어릴 때는 사오정이니 오륙도 같은 얘기를 들으면 먼나라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된 지금 이런 고민이 현실로 다가온다. 어릴 때는 내 능력만 있으면 어디서든 쓰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내가 혼자 해낼 수 있는 부분은 미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어느 조직이든 피라미드 조직구조이므로 뛰어난 능력이 때로는 그들이 나와 같이 일할 이유보다 나를 경계하고 배척해야 될 이유가 될 수 있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없고 상사의 스타일 대로 일을 해야 인정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결국은 회사가 나에게 먹이를 더 이상 주지 않았을 때 내가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귀결된다. 나는 회사라는 곳을 이용하지 않고 자생할 수 있을까? 회사를 이용하는 것은 과연 몇 살까지 가능할까? 이런 고민들이 깊어진다.


무초의 싹이 자란다

무초의 싹이 생각보다 잘 자라서 10~11개의 싹이 보인다. 무초가 춤을 추는 그날까지 기다려 보자.


베사메무초

아이들이 책을 보다가 노래를 들으면 춤을 추는 식물이 있다는 제보를 해주었다. 반신반의 하다가 유튜브를 찾아봤더니 정말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는 무초라는 식물이 있었다. 흥미가 생겨 화분, 흙, 그리고 무초 씨앗을 주문했다. 물에 무초 씨를 불려 화분에 넣어준지 2~3일째, 모두 발아에 실패했나 생각했는데, 싹 두 개가 쏙 고개를 내밀었다. 남아있던 씨앗들도 물에 불리는 중. 2차 파종을 하고 좀 더 싹이 많이 나기를 기다려 봐야곘다. 다 자라면 노래 들려주고 춤추는 영상도 찍어봐야지.


나는 솔로 7기

늘 챙겨보는 나는 솔로. 이번 7기는 정말 총체적 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