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기능들이 다 필요할까?

예상치 못한 일정 지연이 발생했다. 사용자 유입을 위해 2주 내 출시해야 할 바이럴 이벤트가, 새로 추가된 보상 시스템 때문에 한 달 이상 걸릴 수 있다는 개발팀의 피드백이 돌아온 것이다. 이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모든 기능을 한 번에 담으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핵심 목표에 맞춰 릴리즈를 쪼개는 것이었다. 릴리즈를 쪼갠다는 것은 곧 전달할 가치를 독립적으로 분리하는 일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우선시할 가치는 빠른 유입 창출로, 사용자 초대 보상 기능은 후순위에 놓아도 무방했다. 이를 바탕으로 팀을 설득하기 위해 세 가지 주요…

침팬치 폴리틱스와 우리의 정치

최근 유시민 작가가 소개한 ‘침팬지 폴리틱스’를 읽었다. 침팬지 사회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을 관찰한 이 책은 인간과 침팬지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권력의 상층부에 올라선 개체는 끝없는 불안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 하고, 그 바로 아래 위치한 2위는 기회만 생기면 1위를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 단순하고도 치열한 구도는 인간 사회의 권력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특히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저마다 취하는 ‘우쭐 과시’ 행동이 흥미로운데, 회사에서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이 처음 만난…

흰가운과 야광조끼가 가지는 동일한 마법

오늘 아침 출근길, 아파트에서 경비 아저씨가 교통을 관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신호등이 바뀌었는데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차를 지나가게 하는 그의 손짓에 나는 잠시 의문이 들었다. ‘왜 저렇게 뒤 상황을 보지 않고 지시를 내리지?’ 그 순간 나는 무심코 사람들이 그 지시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의문을 넘어서, 사람들은 왜 권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특정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걸까? 그 의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많은 권위를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쓰는 과정은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나는 특정 사건이나 감정에 자극받아 즉흥적으로 내 생각을 풀어놓는다. 그만큼 당시의 나는 감정과 사고가 증폭된 상태라서 평소보다 편향된 시각에서 글을 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감정이 시간이 지나 가라앉고, 생각이 차분히 정리된 후에 다시 그 글을 읽어보면, 마치 제3자의 시선으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느낀 감정과 사고를 거리를 두고 평가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런 점에서 글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도구다. 물론 당시의…

내가 나서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들

나는 성격이 급하고, 업무 처리 속도가 빠른 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속도를 기다리는 것이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내가 1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담당자가 하루가 지나도 피드백을 주지 않을 때는 속이 타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도 모르게 담당자의 몫을 대신 처리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너십이라는 것은 매우 묘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누군가가 대신 나서서 처리하게 되면, 담당자가 그 일에 대해 오너십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는 특히 일정이 빡빡한 상황에서 더…

제복은 멋있어

어릴 때는 제복이 멋있게 보였다. 보이스카우트나 학창 시절 교복처럼, 제복을 입으면 특별한 소속감이 느껴졌고, 친구들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의 제복은 단지 옷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나를 어떤 그룹에 속하게 해주고, 그 속에서 안정감을 주는 보호막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제복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운전을 하다 교통 경찰이 제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제복은 이제 더 이상 단순히 멋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속에는 무거운 책임과 함께 제약이 담겨…

결정의 매너리즘, 모방이 가져온 위험한 함정

결정을 내릴 때 회사에서 “A사는 이렇게 했다”는 식의 사례를 근거로 삼는 방식이 반복되며, 논의와 고민이 사라진 상태로 중요한 사안들이 결정되는 과정을 많이 경험했다. 이러한 방식은 마치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느낌을 주었고, 깊은 사고 없이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상황에 맞는 맞춤형 해결책이 아니라면, 표면적인 따라 하기는 결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문제는 단순히 성공 사례만을 쫓는 것이 세부적인 차이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때로는 이러한 세부적인 차이가…

AI보다 먼저, 나는 이미 RAG였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동일한 존재일까? 6살의 나와 46살의 나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공통점이 없는 서로 다른 인격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공유하는 기억의 조각들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는 많이 달라져 있다. 마치 두 개의 다른 주체가 같은 기억 저장소를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우리의 기억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데이터와 같다. 나는 과거의 데이터들 중 일부를 여전히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지만, 많은 기억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흐릿해졌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

나는 강아지와 말이 통한다

내 강아지는 귤을 유독 좋아한다. 내가 귤을 손에 들기만 해도 이 놈은 눈을 반짝이며 지그시 나를 바라본다. 말은 하지 않지만, 그 눈빛은 마치 “귤 하나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계속 나만 먹으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다. 오히려 말로 하는 것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 소통 방식은 나로 하여금 비언어적 표현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우리 삶에서, 특히 직장에서도 언어가 아닌 눈빛, 표정, 자세 등이 얼마나 많은 것을 전달하는지 실감하게 된다. 회의실에서 비언어적 소통은 매 순간 이루어진다. 질문에 대한…

사공이 많으면 배에서 내리고 싶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라. 다시 말해 사람을 배제하기 위한 공식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선의를 가지고 도와주려는 사람도 확고히 배제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비밀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프로젝트는 한 사람의 린치핀에게 책임을 맡겨야 한다. 두 사람에게 공동책임을 맡기거나 태스크포스나 위원회를 만들어 이끌어서는 안 된다.” – 세스 고딘, 하나의 축구팀에는 반드시 한 명의 감독이 있어야 한다. 감독이 여러 명이라면 그 팀은 승리를 목표로 달리기 어렵다. 각 감독마다 철학과 전술이 다르기 마련이고, 선수들은 누구의…

직무를 배제한 개인의 성장이 가능할까?

부하 직원을 관리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성장과 기술 축적에 시간을 쓰고 싶다는 직장인들의 비율이 72%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은 조직 내에서 성공을 이루기보다는 자유롭게 일하며 개인의 성장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실전을 경험하지 않고 온전히 성장할 수 있을까? 축구 선수들이 훈련만으로 실력을 다지기 어려운 것처럼, 직장인 역시 실전 경험 없이는 성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감독들이 신인 선수에게 경기 종료 1~2분 전이라도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를 주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 짧은 시간에도 실전의 압박감을 느끼고 경기의…

혼자가 더 나은 이유

누군가와 함께 무엇인가를 하기로 할 때는 그만큼 복잡해지고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 쉽다. 대학 시절에 후배와 함께 영어학원을 다니기로 한 적이 있다. 등록일이 되자, 후배가 부모님께 돈을 받지 못해 이번엔 힘들 것 같다고 연락을 해왔다. 후배의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나의 결심마저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후배와 함께 하기로 계획한 일이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내 의지도 한풀 꺾여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할 때 겪을 수 있는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와 맞추어 무언가를 할 때는 잘되면 시너지가 나지만,…

음성 명령이 열어준 새로운 창작의 시대

예전에는 걸어 다니며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메모지나 휴대폰을 꺼내 타이핑을 해야 해서, 현실적으로는 기록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떠오른 생각을 기억해두고 자리에 앉아 적어두려 했지만, 일상 속에서 그 순간을 기다리다 보면 막상 아이디어는 잊히기 일쑤였다. 이런 순간들이 반복될수록, 짧고 단편적인 생각들이 메모장에 적히기보다는 머릿속에서 사라지곤 했다. 이는 새로운 생각을 위한 기반이 되는 아이디어의 손실로 이어졌고, 창의적인 흐름을 이어가는 데도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음성 인식 기술의 발달은 이 모든 과정을…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시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노인은 신문지가 가득 담긴 봉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잠시 후, 그 노인은 자기가 방금 배송을 끝냈는데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집주인이 팁을 준 것 같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나는 그의 말을 정확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묘한 인상을 받았다. 그가 주위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애쓰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작은 만남에서 나는 문득 현대의 소통 방식과 연결되는 점을 발견했다. 이제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 덕분에 누구나 특정한 대상에게 맞춘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게 된…

거대한 플랫폼의 공습 속에 사라지는 로컬 서비스들

현대 사회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는 결국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초기의 다양한 플랫폼들은 점차 특정 목적에 따라 시장이 한곳으로 집중되며 강력한 독점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집적화 현상은 한 국가 내에서 시작되지만, 이내 글로벌 경쟁으로 확장된다. 한때 한국의 대표적인 SNS였던 싸이월드는 페이스북에 밀려 사라졌고, 멜론 역시 유튜브 뮤직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지역적 특성이 강한 로컬 서비스들이 점차 글로벌 거대 플랫폼에 잠식되는…

AI 채용으로 인재 발굴의 한계를 넘을 수 있을까?

AI 기반 레퍼런스 체크는 채용 과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의 채용 과정에서 레퍼런스 체크는 주로 지원자의 경력과 평판을 통해 그 사람이 정말 적합한 인재인지를 마지막에 확인하는 절차에 머물렀다. 하지만 단 몇 번의 면접과 간접적인 레퍼런스로는 지원자의 성향과 마인드셋을 깊이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AI가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레퍼런스 체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까지의 AI는 사람들이 업무에서 남긴 기록이나 일상적인 히스토리를 바탕으로,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이나 사고방식,…

힘의 논리에 밀린 초기 스타트업 문화

회사의 문화가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때로는 힘든 도전이 되곤 한다. 작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회사가 커지면서, 초기의 자유롭고 독창적인 분위기는 점차 퇴색되고, 외부에서 유입된 새로운 기준들이 자리를 차지해 나간다. 특히 외국인 A가 회사를 비롯한 여러 외국계 직원들과 함께 들어오면서 기존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되었고, A는 ‘글로벌 표준’이라는 기준으로 회사의 모든 것을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A는 회사 위키페이지에 붙여진 여자 아이돌 사진을 문제 삼으며,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일반적인…

차장이 더 이상 화내지 못한 이유

한 차장이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의 첫 회의가 열렸다. 그는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오래 일했던 터라, 직원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충분히 드러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날 회의 중 대리 두 명이 실수하자 차장은 이유가 가벼운 문제에도 예전처럼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강하게 지적하기 시작했다. 순간 회의실은 조용해졌지만, 보통 상사의 다그침에 위축될 법한 이 분위기 속에서 한 대리가 차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차장님, 왜 그러세요?” 그 예상치 못한 반응에 차장은 잠시 당황한 듯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내가 답없는 글을 쓰는 이유

세상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고, 해결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남아있는 문제도 많다. 특히 회사 운영이나 조직문화, 거시적인 경제 문제와 같은 큰 주제들에서 우리는 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만을 접하게 된다. 경영 서적이나 전문가들의 논의에서도 종종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정작 마지막에 제시되는 해결책은 공허하게 들릴 때가 많다. 구체적인 방안이 없거나 단순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식의 추상적인 제안들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해결책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관련된 역학관계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채…

결핍의 심리학

돈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자기 삶에서 결핍된 것일수록 더 자주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돈이 아니라며 계속해서 돈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려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돈을 늘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말 자체는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말을 반복한다면 오히려 돈이라는 대상에 매여 있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반복해서 언급하는 주제는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이라는 해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