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려지는 현실과 다가오는 가상
커튼 뒤 위엄을 뽐내던 오즈의 마법사가 사실은 연약한 노인에 불과했던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가 이제는 단순한 동화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는 시대가 되었다. 인스타그램 속 멋진 모습들은 사실과 거리가 멀고,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가상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버추얼 BJ가 방송을 주도하고, 남성이 여성 캐릭터와 목소리로 무대를 꾸미며, AI가 댓글로 여론을 형성하는 요즘, 우리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이미 무너지고 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특히 이 변화 속에서 사람들이 어느새 이러한 경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제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 너머에 있을 실제 모습이나 존재는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 대신 화면에 보이는 이미지나 글 속의 캐릭터 자체를 하나의 인격으로 받아들이며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더욱 진짜 같은 현실로 여기게 되었다. 실제 모습이 어찌 되었든, 온라인 속 모습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는 이들은 현실의 무대를 떠나 온라인 속 인격과 캐릭터에 머물고, 그것을 진짜 자아처럼 여기며 가상 세계 속에서 존재감을 확장해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제는 AI와 인간을 구별하기 위한 인증 방법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과연 AI와 인간을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할 때 그 창작자의 오프라인 인격이나 삶의 진정성보다는 화면 속 매력적인 이미지와 메시지에 더 끌리는 것이 현실이다. 연예인의 모습도 그렇다. 사생활이 어떻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스크린 속 모습과 캐릭터다. 그렇다면 온라인에서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AI를 따로 볼 이유가 있을까? 그저 우리는 화면 속에 펼쳐지는 매력적인 모습에 반응할 뿐이다.
어쩌면 AI는 인간이 잊고 지내던 인간성을 다시 일깨워 줄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획일화된 생각과 취향이 만연한 사회에서, AI가 다양한 관점과 감각을 창출해준다면 인간의 정서에 오히려 신선하고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인간의 표현을 자연스럽게 모방하는 AI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다양성은 사람들의 삶에 색다른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인간성과 AI의 구별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온다면, AI는 현실에 없는 존재지만 동시에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든 상징적 인격체, 마치 ‘오즈의 마법사’처럼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이런 변화를 억지로 막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와 정체성을 모색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