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빌런들

운전을 하던 중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시장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시내 곳곳에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한두 장도 아니고, 저 많은 현수막을 제작하고 설치하는 데 과연 얼마의 비용이 들었을까?

새해뿐 아니라 명절마다 비슷한 현수막들이 설치될 텐데, 과연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현수막이 건설적인 영향을 주거나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눈에 보이게 걸어 놓기 위한 요식행위 같았다. 만약 그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껴서 공기질을 개선하거나 노후된 시설을 정비하는 데 썼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실제로 그런 식으로 예산이 쓰였다 해도, 시민들은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공기질이 개선되었다고 해서 매일의 숨이 얼마나 맑아졌는지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이런 현수막 같은 눈에 띄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걸까? 현대 정치는 결국 이미지 정치의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다. 시민들은 정치인의 과거 행적이나 입법 사항 등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어렵다. 우리가 투표를 할 때조차 후보의 모든 기록과 말을 꼼꼼히 따지기보다, 방송이나 뉴스에서 비치는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정치인은 자신의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다소 비효율적이라 해도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과연 최선일까? 정치인은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면서도, 동시에 실질적으로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예산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물론 이런 대안을 찾는 것은 내 몫은 아니다. 다만, 현수막 하나가 던진 물음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현수막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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