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나에게 추천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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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정보와 콘텐츠의 양이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서는 순간부터였다. 어떤 콘텐츠를 보여줄지를 정하는 행위가 곧 권력이 되었고, 큐레이션의 방향은 우리의 관심과 시간을 지배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큐레이션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은 진정한 선택지가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이라는 기준 뒤에 숨겨진 것은 사실 자극적이고 흥미를 끌기 쉬운 콘텐츠에 가중치를 둔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방식은 전통적 큐레이션이 가졌던 독창성과 특별함을 앗아가고 있다.

전통적인 큐레이션은 그 과정에 큐레이터 개인의 경험과 판단, 그리고 취향이 녹아 있었다. 물론 한계가 있었다. 큐레이터가 선택할 수 있는 콘텐츠의 폭이 제한적이었고, 특정 주제에 대한 편향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 덕분에 오히려 독특한 취향과 창의적인 선택이 가능했다. 큐레이터를 통해 전혀 예상치 못한 콘텐츠를 접하게 되거나, 나의 기존 관심사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반면, 오늘날의 큐레이션은 한 가지 기준에 매달려 있다. 바로 대중성이며, 그 안에서도 특히 분노, 시기, 질투 같은 강렬한 감정을 자극하는 콘텐츠들이 부각된다. 이는 취향의 평균화를 가속화하고, 모두가 비슷한 콘텐츠를 소비하게 만드는 폐해를 낳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는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자극적 콘텐츠의 범람과 그로 인한 정신적 피로를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단순히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깊이 생각하거나 느끼게 하는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좋아요나 클릭 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체류 시간이나 읽기 위해 멈추는 스크롤 지표를 활용할 수 있다. 더불어 진지한 글이나 평온한 감정을 유도하는 콘텐츠는 본질적으로 좋아요를 많이 받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자극적인 콘텐츠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지만, 깊이 있는 콘텐츠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들여 읽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런 새로운 큐레이션 방식을 구현하려면 기술적인 발전뿐 아니라 콘텐츠 소비 습관의 변화도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기회를 주고, 깊이 있는 콘텐츠의 가치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이는 기술이 독자들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결국 큐레이션의 기준이 다양해질수록 우리는 자극적 콘텐츠에 매몰되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큐레이션은 독창성과 창의성을 다시 회복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판단을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단순히 대중성과 자극성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콘텐츠만 소비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과 창의적인 선택이 존중받는 큐레이션을 위해 이제는 더 나은 기준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상을 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