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진실, 그리고 인간의 한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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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하라리는 특히 진실이 훼손되는 과정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포퓰리즘의 세계관에서는 모든 것이 권력 투쟁으로 환원된다. 진실은 각자의 입맛에 맞게 변조된 무기가 되고, “누구의 진실인가?“라는 질문이 날카롭게 떠오른다. 언어마저 훼손된 사회에서 공통의 객관적 현실은 사라지고, 진실을 주장하는 것은 곧 권력을 위한 계략으로 치부된다. 하라리는 이런 상황에서 언론 같은 견제 장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견제 기관의 건전성을 지키는 노력 없이는 민주주의와 진실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진실과 재현의 관계다. 하라리는 진실이란 현실을 1:1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면을 강조하고 다른 면을 무시하는 선택의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진실이 발전의 기본 요소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거짓으로 선동된 사실은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힘이 없다. 우리가 진실을 추구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속성을 논하는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탈린과 그의 아들에 대한 일화였다. 스탈린은 자신을 소련 권력의 구현체로 보고,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이는 권력이 개인을 넘어서는 상징으로 기능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모습은 현대에도 이어진다.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 브랜드화되거나, 기업들이 개별 상품이 아니라 집단적 아이덴티티를 앞세우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권력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시스템이지만, 때로는 그 시스템에 압도당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관료주의에 대한 하라리의 통찰은 흥미로웠다. 관료주의는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하라리는 그것이 대규모 사회를 유지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관료제는 혼란을 통제하고 질서를 제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하라리는 이 틀 안에서 최소한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민주적 방식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그것이 유지 가능한 적절한 규모를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매우 설득력 있었다.
하라리는 질서와 진실 추구의 상충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은 질서를 흔드는 의구심과 논쟁을 동반한다. 따라서 강력한 자정 장치는 사회 신화의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최소한의 법과 규율로 균형을 잡는 일이야말로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포퓰리즘의 권력 독점 욕구에 대해 다루는 대목은 특히 현실적이다. 포퓰리스트들은 자신들만이 진정으로 국민을 대변한다고 믿으며, 자신들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반국가적으로 규정한다. 이는 독재로 가는 뻔한 길이지만, 이런 단순한 사고방식은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라리는 이런 사고가 가져올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집단적 의식이 이를 견뎌낼 가능성을 제시한다.
넥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