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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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르 봉의 ‘
개인이 아닌 군중의 특성은 훨씬 더 단단하고 굳건하다. 예전에는 나무 가지가 해를 향해 자라듯이 어느 정도 방향성을 이끌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군중의 특성을 ‘굵은 나무 등걸’에 비유하고 싶다. 단단히 자리 잡고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 나무 등걸처럼, 군중은 하나의 고유한 집단 의식을 갖는다. 그렇기에 제도와 법은 군중의 마음을 바꿀 힘을 갖기 어렵고, 오히려 군중의 특성이 법이나 관습을 형성하는 주체가 되는 듯하다. 개인으로서는 이런 군중의 흐름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저 흐름에 순응하며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잘 타고 넘어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책을 읽으며 생각난 또 다른 점은, 회사 생활에서 느끼는 조직의 문화와 군중 심리의 강력함이었다. 많은 경우, 회사의 상위 리더십은 내가 중요하게 여겨온 원칙이나 기준을 이론적으로는 지지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군중의 흐름을 따르게 된다. 결국 다수의 합의에 따라 암묵적으로 형성된 문화는 개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 점에서 르 봉이 말한 “군중을 지배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진 지금, 군중 심리를 이해하는 일이 적어도 군중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는 길”이라는 문장이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어쩌면 군중의 흐름을 완전히 이해하고 이를 수용할 줄 아는 태도만이 개인으로서 무리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 신념과 현실의 괴리는 업무 스트레스로 이어지곤 한다. 마이클 조던이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감독을 하지 않기로 한 이유를 “요즘 선수들이 게임을 대하는 마인드가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비슷한 생각이 들어, 한때 당연하다고 여겼던 원칙들이 무시될 때면 마치 내가 가진 기준 자체가 과거의 잣대에 불과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때 책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옳음이라는 것이 결국 주관적이며,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다수의 합의가 반영된 상대적 기준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때로는 스스로가 ‘기득권’에 사로잡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 자문하게 된다. 크레타 벽화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만이 시대와 상황이 변할 때마다 되풀이된다면, 지금 내가 맞닥뜨리는 괴리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닌지, 나의 기준을 조금은 유연하게 바꾸어 보아야 하지 않을지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개인적 신념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고, 또한 군중 심리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그 속에서 나의 역할을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맡은 바 일을 묵묵히 수행하며, 군중의 흐름 속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신념과 현실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유연성을 가지고 스스로의 기준을 조금씩 조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군중 속에서 한 개인으로서 균형을 유지하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