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가운과 야광조끼가 가지는 동일한 마법
오늘 아침 출근길, 아파트에서 경비 아저씨가 교통을 관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신호등이 바뀌었는데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차를 지나가게 하는 그의 손짓에 나는 잠시 의문이 들었다. ‘왜 저렇게 뒤 상황을 보지 않고 지시를 내리지?’ 그 순간 나는 무심코 사람들이 그 지시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의문을 넘어서, 사람들은 왜 권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특정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걸까? 그 의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많은 권위를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각적인 요소는 권위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주차 안내요원의 손에 들린 빨간 안내봉만 보아도 우리는 그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전문가라고 쉽게 믿어버린다. 실제로 그는 하루 아르바이트생일지도 모르고, 교통 흐름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만, 우리는 그가 들고 있는 아이템 하나만으로 그의 권위를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야광조끼 효과라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콘서트장이나 운동 경기장 같은 장소에서 야광조끼를 입고 있으면 사람들은 그가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동으로 생각하고, 별다른 의심 없이 통과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야광조끼라는 시각적 신호가 그 사람의 자격이나 역할에 대해 선입견을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 야광조끼를 보고 무조건 ‘공사 관계자다’라고 단정 짓고,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진짜 역할이나 자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일은 드물다.
의사의 하얀 가운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사람들은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가 실제로 의사인지, 혹은 얼마나 숙련된 전문가인지에 대한 검증 없이, 그저 가운 하나로 전문성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 아이템은 사람들에게 그 사람이 전문가임을 믿게 하고, 그 신뢰는 곧 선입견으로 굳어진다.
다니엘 카너먼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는 사람들이 ‘빠르게 생각하는 뇌’로 일상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깊이 고민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선입견과 직관에 의존해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주차 요원의 안내봉, 야광조끼, 의사의 흰 가운이 모두 그러한 빠른 결정을 돕는 시각적 요소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권위가 진짜로 신뢰할 만한지 판단하지 않고 그저 따르게 되는 데 있다. 그 순간에 잘못된 권위에 의존한 결정이 결국 큰 리스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권위를 따르는지 보여준다. 주차 안내요원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나, 의사의 말에 무조건 신뢰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권위에 의존하고 싶은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 권위가 진짜로 적절한지 검증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늘 옳은 선택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권위에 대해 의심하는 습관을 기르는 일이다. 주차 요원의 지시도, 의사의 말도, 심지어 야광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의 행동조차도 그 자체로 절대적인 권위일 수는 없다. 우리는 그 권위가 적절한지, 그 지시가 합리적인지 늘 한 번 더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불필요한 위험을 줄이고, 잘못된 결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