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보다 먼저, 나는 이미 RAG였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동일한 존재일까? 6살의 나와 46살의 나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공통점이 없는 서로 다른 인격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공유하는 기억의 조각들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는 많이 달라져 있다. 마치 두 개의 다른 주체가 같은 기억 저장소를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우리의 기억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데이터와 같다. 나는 과거의 데이터들 중 일부를 여전히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지만, 많은 기억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흐릿해졌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 하드디스크를 새로운 케이스와 CPU를 장착한 컴퓨터에 장착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마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전자에서 비롯된 기본적인 성향이나 몇몇 기억이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일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성향은 변해왔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도 완전하지 않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단지 몇 가지 기억을 공유할 뿐, 그 외에는 많이 달라진 별개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 머릿속에 남은 기억조차 없다면, 나는 과거의 나와 전혀 연결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라는 주장은 무의미해진다.
여기서 나는 기억이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정체성이나 가족과의 관계로 형성되는 정체성도 분명 존재하지만, 결국 내가 인식하는 나의 정체성은 기억에서 비롯된다. 기억이 없다면 나의 정체성 역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래된 기억이든, 불과 몇 분 전의 기억이든 모두 중요하다. 기억이 없다면 내가 나임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은 그저 기억의 파편들이다. 이 파편들이 있어야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잠깐씩 만나며 연결된다. 만약 이 기억들이 없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동일한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결국 공유된 기억에 달려 있다.
결론적으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기억이라는 작은 조각들 덕분에 연결된 존재일 뿐이다. 이 기억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동일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