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빠른 표범이 사라지는 시대

생산성의 향상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는 경쟁을 심화시키며 더 나은 삶을 약속했지만, 정작 그로 인한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더 빠른 가젤이 포식자의 위협을 피하려 진화하듯, 그 가젤을 잡기 위해 더 빠른 표범이 등장하고, 이보다 더 빠르게 도망치는 가젤이 다시 나타난다. 끝없이 순환하는 이 경쟁 속에서 서로는 서로의 한계를 끌어올리며 발전을 거듭하지만, 그 과정은 어느덧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전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 상황은 마치 군비 경쟁처럼, 한쪽의 발전이 상대방의 발전을 불러오며 본질적으로 나아질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해버린 것이다. 개인의 생산성은 계속해서 증가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삶의 여유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산성은 본래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의 행복과 만족이라면, 생산성의 향상이 그 목표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경쟁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AGI(인공지능 일반)의 등장으로 인간의 생산성은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생산성 경쟁을 주도하던 인간이 더는 AGI의 효율성에 필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인간이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 또한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다가오는 AGI 시대에는 생산성조차도 인간의 영역이 아닌 기계의 몫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더 이상 ‘생산성’이라는 잣대로 평가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할 때, 인간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각자가 지닌 고유한 특별함에 있다.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관심사와 열정을 통해 특별함을 발휘하고자 할 것이며, 이런 특별함을 서로 공유하며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때의 특별함은 단순히 성과나 성취의 기준이 아닌, 개인이 지닌 독특함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생산성 중심의 인간관계가 아닌, 관심과 취향에 따라 만들어진 인간관계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제공할 것이다. 이제 인간은 성과나 효율성에서 자유로워져 각자의 정체성에 기반한 네트워크 속에서 연결된다. 성과가 흔들릴 때마다 불안정해지는 기존의 소속감과 달리, 정체성에 기반한 소속감은 훨씬 더 끈끈하고 안정적이다. 각자가 지닌 정체성과 고유성을 중심으로 얻게 되는 소속감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하며, 인간은 그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이처럼 AGI 시대가 도래한다면, 인간은 본래의 인간다움을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고 강화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일 수 있다. 각자의 고유한 가치와 열정을 표현하며 안정적인 공동체 속에서 인정받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생산성 중심 사회가 제공하지 못했던 진정한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실현할 가능성 중 하나로 떠오른다. AGI 시대가 본격화되며 지금껏 놓쳐온 인간다움의 본질이 회복될지, 우리는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