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혜성의 덫: 무료지만 빚지는 마음
가을이 오면 언제나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먼저 나를 반긴다. 온도가 내려가면 자연히 타이어의 공기압도 줄어들고, 그 결과 불안한 마음이 들게 된다. 작년엔 경고등이 뜨고 나서야 급하게 타이어 가게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마침 나들이 중이었고, 예고 없이 찾아온 상황은 내게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선사했다. 그래서 올해는 선제적으로 타이어 가게에 들러 미리 공기를 채우기로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불편함이 따라왔다.
타이어 가게에서 제공하는 공기압 주입 서비스는 무료였다. 그 자체로는 분명 고객을 위한 배려라 할 수 있을 텐데, 무료라는 점이 나를 미묘하게 불편하게 만들었다. 무언가를 받았으니 나도 무언가를 제공해야 할 것 같은 감정, 일종의 빚진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공정성에 대한 불균형을 느끼는 순간, 가게 직원이 아주 가볍게 “여름 타이어네요?“라는 말을 던졌다. 그 말은 겨울 타이어로 교체하는 것을 고려해보라는, 아주 약한 권유이자 넛징이었지만, 내가 이미 받은 서비스 덕분에 그 권유는 더 무겁게 다가왔다.
내가 이 상황을 불편하게 느끼는 이유는 명확했다. 무료로 제공된 서비스가 결국은 세일즈로 이어지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했다. 나는 이미 그들의 도움을 받았고, 따라서 이 도움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는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돈을 내고 공기를 주입했다면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을 것이다.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공정한 거래가 성립되고, 더 이상 어떤 빚진 감정도 느끼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 상황은 나를 과거로 데려갔다. 어린 시절, 바람 빠진 공에 바람을 넣기 위해 문방구에 갔을 때의 그 기분 말이다. 당시엔 내가 너무 어렸기에 ‘호혜성의 원리’ 같은 개념을 몰랐지만, 뭔가 사지 않고 바람만 넣어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의 그 묘한 불편함은 지금의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가게 주인의 눈치를 보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사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도 이미 호혜성의 원리에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타이어 가게에서의 무료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나는 무료로 제공된 서비스의 대가를 치르고 싶어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속에 계속해서 부담이 남는다. 그렇다면, 타이어 공기압 문제를 매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마도 가장 마음 편한 해결책은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무료 서비스를 선택하는 이유는 접근성 때문이다. 눈에 띄는 타이어 가게 대부분이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호혜성의 원리는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서 강하게 작용한다. 작은 서비스에도 우리는 빚진 마음을 느끼고, 그것을 갚으려는 무언의 압박감을 받는다. 이 원리가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