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애 관찰 예능을 매우 즐겨보는 편입니다. 예전 ‘짝’의 모든 방영분을 정주행 했었고, ‘선다방’, ‘스트레인저’, ‘로맨스 패키지’, ‘하트시그널’, ‘러브캐처’, ‘한쌍’, ‘나대지마 심장아’, ‘에덴’ 등을 모두 섭렵 했으며, 최근에는 ‘나는 솔로’를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연애의 설렘을 느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인간의 심리가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규홍 PD가 연출한 ‘짝’, ‘스트레인저’, ‘나는 솔로’를 가장 좋아합니다. 다른 프로그램들은 PD의 개입이 큰 편이고, 그림을 예쁘게 만들려는 노력이 보이는 편이라면, ‘나는 솔로’는 날것의 느낌이 있습니다. 애초에 이름을 짓는 것에서부터 남규홍 PD의 철학을 볼 수 있는데, ‘짝’에서는 남자1호, 남자2호 등으로 이름을 정했고, ‘스트레인저’에서는 ‘작은 김씨’, ‘큰 김씨’ 등으로, 최근 ‘나는 솔로’에서는 과거에 유행했던 이름의 순위대로 ‘영수’, ‘영철’, ‘순자’ 등의 이름으로 정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정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일반인들이 출연하고 방송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을 때 악플러의 타겟이 되는 것을 최소화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더해서 호칭 자체로 주는 촌스러움은 이 프로그램이 그럴듯한 포장을 하기 보다는 일반인의 날 것을 그대로 드러낼 것임을 보여줍니다. 매회 되풀이 되는 이름은 개인의 정체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찰 대상이 되는 장기말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저는 ‘나는 솔로’를 보면서 빌런이 탄생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매 회 빌런이 등장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인 욕을 먹습니다. 내 주위에 있는 빌런의 확률을 봤을 때, ‘나는 솔로’에서 빌런의 등장 확률은 지나치게 높아 보입니다. 혹자는 남규홍 PD의 선구안을 칭찬하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시청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빌런을 선별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지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저는 사람들이 악의로 저지르는 일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악인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별 생각없이, 또는 선의로 어떤 행동을 했더니 그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훨씬 많을겁니다. 남규홍 PD가 인터뷰를 통해 의도적으로 빌런을 선발했을 가능성보다, 촬영을 시작했더니 빌런이 탄생했다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라는거죠.
이런 전제로 우리 주변에서 빌런을 발견할 확률보다 ‘나는 솔로’에서 빌런이 발견되는 확률이 왜 높은지를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두 가지 가설을 떠올렸는데요. 첫번째는 고립된 공간에서 제한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빌런을 탄생시킨다는 가설입니다. 생물은 보통 충돌이 생기면 회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돌이 일어난 상황에서 싸움을 하는 것은 서로의 생존확률을 깎아 먹기 때문에 웬만하면 서로 피하는 것입니다. 이기더라도 싸우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게 되면 생존에 유리하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런데 ‘애정촌’이라는 그라운드는 일주일 간 빠져나갈 곳이 없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목적이 다르다면 평화롭게 지낼 수도 있을겁니다. 그런데 모인 모두는 괜찮은 이성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동일한 목표를 가집니다. 고립된 공간에서 희소한 목표물이 있다면 싸움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물론 이성의 마음을 쟁취하겠다는 마음을 일찌감치 포기한다면, ‘CCTV’나 ‘나는 솔로 1열 참관인’, ‘펜션주인’ 같은 타이틀을 얻으며 유유자적하며 일주일을 쉬다가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이건 논외로 하겠습니다. 결국 싸움과 경쟁이 발생하면 인간은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밑바닥까지 보여주게 됩니다.
이 가설보다 좀 더 그럴싸한 것은 ‘내로남불’에 대한 것입니다. ‘내로남불’은 인간의 패시브 스킬이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완벽하게 ‘내로남불’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로남불’이 극대화 되는 과정이 눈에 보인다면 사람들은 욕을 하기 시작할겁니다. 이번 10기에서도 한사람에게 확신을 주고 싶다면서 영식과 포옹을 한 영자, 난척이 가장 싫다면서 누구보다 오픈하고 싶어하지만 매사에 삐지는 상철,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하면서 옆에 있는 모든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영식, 예체능은 싫다면서 현숙에게 대쉬하는 영호 등등 내로남불과 인지부조화가 판을 칩니다. 이들 모두는 빌런 후보로 등극하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이런 빌런들을 보며 욕하는 자체도 ‘내로남불’이라는 겁니다. 제가 저 상황으로 들어간다면 전 빌런이 되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24시간 내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가 촬영합니다. 저의 24시간을 찬찬히 되돌아 보고 편집을 조금 해보면 저도 수많은 빌런짓을 했습니다. 와이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와이프가 집안일을 하는데 폰으로 게임만 하고 드러누워 있었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빠지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걸 보고 시끄럽다고 방에 들어가서 놀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살이 찌는게 너무 싫어서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스크림을 한꺼번에 다섯 개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이거 완전 빌런 아닙니까? 여러분 앞에서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그 지인이, 당신을 만나지 않는 특정 시간에는 빌런 가면을 쓰고 있을 수 있습니다.
두 가지 가설을 합쳐보면, 저런 환경에서 24시간 누군가가 나를 지켜본다면 저는 분명히 빌런으로 등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나는 솔로’에서 빌런이 등장하면 인터넷 게시판이 불타고 시청율이 올라가는 것은 나도 빌런이 될 수 있다는 내 무의식과, ‘나는 저런 놈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합쳐진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저는 연애 관찰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보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빌런이 등장해서 날뛰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지나친 감정이입 없이 보면 ‘나는 솔로’는 비극이 아닌 희극 작품입니다. 매주 수요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나는 솔로’가 오래 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