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에 대해 실체가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은 가상의 개념이다. 비가역적인 현상들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물에 잉크가 떨어져서 번지는 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의 확률이 높기 때문인데, 번졌던 잉크가 다시 모이는 것도 확률이 낮을 뿐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번졌던 잉크가 다시 서서히 모인다면, 우리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인간의 노화를 보더라도, 세포가 노화되는 것과 반대의 방향으로 생체 현상이 진행된다면, 늙었던 사람이 젊어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시간이란 것은 실체가 있는 개념도 아니고 흘러간다라고 표현할만큼 방향성이 있는 것도 아니며, 시계로 측정할 수 있을만큼 절대성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시간이란 것에 대해 ‘비가역적 반응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속도‘ 정도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비가역적 반응들이 진행되는 속도는 여러 요인(온도, 관측자의 상태 등)들에 의해 충분히 변할 수 있으니 개인이 체감하는 시간도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시간이라는 가상의 개념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이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실제 생활에서 시간의 상대성을 너무나 자주 느낄 것이다.
이렇게 자극의 종류에 따라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가끔 있다. 보통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교감신경이 자극되어 우리 몸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데, 컨디션이 무척 좋은 타자가 투수의 공이 느리게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나, 치명적인 사고의 순간에 시간이 느려지면서 살아온 인생이 머리 속에 재생되는 것도 우리가 반응하는 민감도와 빈도에 따라 시간이 느리게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 다른 예는 우리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시간이 더 빨리간다고 느끼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항상 새로운 자극을 느끼며 그것을 받아 들인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모든 것들이 익숙해지고, 그것을 자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응의 사이클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극을 느끼며 살아가면 된다. 이것이 바로 ‘낯설게 하기’이다. 주위의 환경에 대해서 끊임없이 인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같은 세상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모두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같은 티비에서 채널을 돌리면 다른 방송사에서 다른 프로그램이 흘러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식당에 있지만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타자들이다. 길에서 마주오는 사람은 시야에 들어올 뿐 투명인간처럼 지나쳐 버리고, 우리는 그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항상 지나다니는 건물에도 우리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낯설게 느껴보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낯설게 하는 연습에 아주 도움이 된다. 누구나 흔히 보며 지나치는 풍경이나 사람이 낯설게 느껴지며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사진을 찍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새롭지 않은 세상을 늘 새롭게 보려는 노력은 넉넉한 시간 속에서 조금이나마 젊게 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세상, 너 되게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