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개연성
나는 예전부터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생각해 왔다. 말 그대로 무한하다는 것이다. 처음 아프리카 대륙 어딘가에서 인류가 나타나 추위나 맹수와 싸울 때, 어떻게 인류가 달에 간다고 상상을 했겠는가. 인류는 날개 없이 하늘을 날았고, 모래 더미에서 반도체를 만들어 내고 컴퓨터를 만들었다.
이제 AI를 통해 인간의 뇌까지 모방하고 있다. 인간이 앞으로도 더 무한하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의 상상력 때문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실현 가능성 보다 수십년 또는 수백년 앞서 일어날 일을 상상해 내고는 한다. 80년대 신문 만화에서 상상했던 2000년 대의 모습을 보면, 그 당시 상상했던 대부분의 것들이 실현되어 있다. 뉴럴링크가 하고 있는 뇌에 대한 실험들과 그에 대한 가치와 철학에 대한 고민들 역시 오래전부터 인간이 상상해 오던 것들이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해도 ‘토탈리콜’이라는 영화에서 가상과 현실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고 있으며, ‘매트릭스’가 그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상상하는 것은 모두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상상력이 무서운 이유는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완전하게 깜깜한 무(無)의 공간에서 컴퓨터를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아니 만들어 내는 것은 차치하고 컴퓨터라는 개념을 상상할 수도 없다. 기술은 테크트리를 따라서 개연성 있게 발전한다. 그래서 ‘기술의 충격’이라는 책에서는 비슷한 시대에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비슷한 기술이 나왔던 사례를 보여준다. 결국 우리의 상상력은 이전에 알게 된 사실들이나 이미 구현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상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인간이 하는 상상들 중 실현이 멀어만 보이는 과거여행, 미래여행, 순간이동 역시도 기존의 과학 지식을 활용한 개연성 있는 상상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간여행의 컨셉은 다음과 같다. 미래여행은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라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인다면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빛의 속도로 이동 가능하게 되고, 먼 우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면 지구에서는 수 천년이 흘러 있을 수 있다. 또는 냉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을 수 천년 잠재웠다가 깨울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기술이 상용화 되면 우리는 미래로 떠날 수 있다.
그러면 다시 과거로 돌아올 방법이 있을까? 나는 저장매체의 발달이 과거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시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이 쌓인 것과 다른 개체와의 상호작용을 과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저장매체의 발달로 모든 시점, 모든 데이터가 스냅샷처럼 남아있게 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그 상황을 로딩할 수 있다. 뇌과학의 발달로, 그 시점의 오감과 상호작용을 뇌가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고 가정하면, 이 사람이 느끼는 과거는 실제 과거의 시점과 다른 것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론적으로 특정 미래로 가는 것이 가능해지고, 촘촘히 저장된 스냅샷을 이용해 특정 시점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해진다.
내가 하는 이 상상 역시 일반상대성 이론, 엔트로피, 뇌과학, 가상과 현실이라는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지식들을 바탕으로 한 ‘개연성’ 있는 상상이다. 이런 사실과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이 합쳐진다면, 무한한 발전은 이미 정해진 미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