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지하철역으로 가기 위해서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집에서 공원쪽 샛길을 통해서 나오면 버스가 다니는 길이 있고 차가 그다지 빠르게 달리지 않는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면 바로 버스 정류장이 있다. 집에서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을 보고 나가지만 때로는 버스가 예상보다 빨리 도착할 때가 있다. 이런 이유로 횡단보도를 좀 급하게 건너는 편이다. 물론 사람이 건너려는 기색이 보이면 차는 당연히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미국에서는 횡단보도 저멀리서 사람이 걸어오면 차가 미리 정지해 있어서 굉장히 부담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더니 버스 도착까지는 아직 4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내가 건너온 횡단보도에는 중학생처럼 보이는 학생 한 명이 서있었다. 차들은 간간히 지나다녔지만 길을 못건널 정도로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학생이 건널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 점차 궁금해졌다. 차들이 간헐적으로 지나갔고, 난 계속 횡단보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양방향 모두 차가 완전히 오지 않는 시점이 되자 학생은 건널목을 건넜고,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좀 뜻밖이었다. 내가 움찔거리면서 횡단보도로 진입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운전자들을 멈추게 만드는 액션이겠지만, 횡단보도 앞에서 정승처럼 서있는 액션 역시도 운전자들을 멈추게 하는 액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미국처럼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이 멈추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더 적합한 액션은 점잖은 기다림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횡단보도에서 덤덤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모습을 보고 정지해 주는 차량들이 많아지고 그렇게 차량이 보행자를 보호하는 문화가 점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 학생 세대가 볼 때는 횡단보도로 움찔거리며 전진하는 내가, 보행자를 보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치는 운전자와 동일한 미개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세대에서 당연한 것들이 요즘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차 안에 재떨이가 달려있었던 '빨리빨리' 대변되던 8~90년대를 지나,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시점에서 어린 친구들에게 나의 행동이 어떻게 비춰질까 고민하게 되는 출근길이었다.

누군가의 낙원은 누군가의 지옥 위에 세워졌음을. 행복을 기대하며 시작한 장소는 불행한 기억을 가진 장소로. 새로운 행복을 찾아 떠난 곳은 새로운 불행이 시작되는 곳으로. 더 불행해지게 더 불행해지게.

53평의 번듯한 집과 번쩍이는 플래그십 세단과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과 최고급 카메라와 렌즈들. 예전이라면 엄두도 못냈을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예전보다 점점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꽁냥거리며 15평의 오피스텔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신혼부부의 설렘이 좋다. 지나가는 외제차를 보며 언젠가는 나도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사진을 찍으러 걸어다니던 그 때가 좋았다. 더 가질수록 행복하지 않지만, 이제 와서 덜 가진다고 행복한 것도 아닐테니까.

인간의 오랜 본성인 내로남불은 옛속담에서도 볼 수 있다. 완전하게 동일한 뜻은 아니겠지만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을 보면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빽빽하게 무덤들이 줄지어 있는 공동묘지가 떠오른다. 그 많은 무덤 중에서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다. 내가 한 이상한 일들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나의 가장 치명적인 실패조차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남의 행동에 대해서는 서릿장 같은 잣대를 적용한다. 원칙적으로 잘못된 일이고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어줍짢은 사과는 사과문의 형식에 맞지 않는 변명일 뿐이다. 사과를 하려면 사과만 해야지 이유를 늘어놓는 것은 사과문을 가장한 변명문이라고 생각하며, 대중들은 '순수한' 사과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각각의 무덤에도 핑계가 있다. 핑계는 곧 서사다. 결과로 봤을 때는 하찮기만 한 죽음, 심지어 악인의 죽음에조차 서사가 있다. 인간은 애초에 내로남불 하게 이기적으로 생겨먹었지만 서사를 통해서 공감하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내로남불은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감이고,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게 되고 심지어 악인의 행적에도 불쌍하게 여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범죄자에게 서사를 입히지 말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범죄자에게는 공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철저하게 내로남불의 태도로 그들을 단죄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내로남불과 공감은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의 부모에서 나온 쌍둥이 같은 것이다. 그들의 사정을 모를 때 나는 나의 잣대로 나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 감정이입이 되고 같은 편이라는 느낌이 든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같이 고생하고 회식을 하며 흘러왔던 서사는 그들을 같은 편으로 만들어 준다. '이웃의 신발을 신고 한참을 걸어보기 전에는 그들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고 한다. 결국 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우리편 상대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많이 공유한 사람이 같은 편이 되는 것이다.

인터넷 연결이 없는 상태에서 OTP는 특정 숫자를 생성해내고, 그것을 인증 목적으로 사용하는 원리가 너무 궁금했었다. ChatGPT가 다 설명해 주었다.

https://chat.openai.com/share/d9d017cb-f8bb-4175-bfe8-1cb1b302e339

패션과 유행은 더 낫고 못함이 아닌 그저 지난 세대와 다름의 표현이다

후회, 회한, 그리움, 자책 등은 모두 과거를 향해 있는 감정이다. 이런 것들을 모두 퉁쳐서 매몰 비용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살아가는데 매몰 비용을 무시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처사이지만, 이것이 사람다운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 놈의 강아지가 우리가 자고 있으면 혼자 소파 위에서 자고 있다. 내가 나가면 폴짝 뛰어서 내려오기도 하지만, 많이 졸릴 때는 들킨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자리를 지킨다. 강아지가 소파 위에 혼자 자고 있는게 이게 맞는건가...

그 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리다. 기준은 힘 있는 자가 결정한다.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기는 가능한 것일까? 회식을 극혐하는 내향형이 있고, 회식과 워크샵을 갈 것을 주장하는 외향형이 있다. 내향형은 날 그냥 내버려두라고 생각하지만, 외향형은 같이 회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내향형을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회식을 권하는 외향형은 내향형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걸까? 아니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에서 외향형의 사교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 내향형이 외향형에게 피해를 주는걸까. 사회에 만연해 있는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도 비슷한 것 같다. 그들을 '개독'이라 부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무교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멀쩡하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악담을 퍼붓거나, 이야기만 시작되면 교회를 가야한다고 전도를 한다. 이것은 기독교인이 무교에게 피해를 주는건가? 예전 같으면 가만히 있는 나를 왜 건드리냐고 피해 주지 말라고 단순하게 소리칠 문제들이 그렇게 쉽지 않은 문제로 느껴진다.

지난 4월 초 챗GPT 영상의 폭발로 유튜브 수익화 조건을 만족하게 되었다. 기존 2천명 정도의 구독자에서 빠르게 2천명이 더 늘어났다. 단기간에 늘어난 2천명은 내 채널의 충성 시청자라고 보기 힘든 허수에 가깝다. 실제로 구독자가 두 배 정도 늘어났지만 그 전후로 시청시간은 괄목할만한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멤버십을 통한 수익화 이야기다. 기존 내 영상을 보고 너무 도움이 되겠다고 한 사람들, 멤버십이 있다면 반드시 가입하겠다던 사람들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결국 컨텐츠에 대한 만족은 '무료임을 전제로 한' 만족감인 것이다. 멤버십 가입을 촉진하기 위해서 유튜브에서는 여러가지 제안을 한다. 영상 중에 멤버십에 대해 언급을 하라든가, 멤버십에 대한 혜택을 차별화 하라는 등의 이야기다. 한 두 달 실험들을 해보며 내 채널의 멤버십은 그런 식을 활성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가 운동을 하고 싶어서 헬스장에 등록해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데, 옆에 있던 트레이너가 와서 PT를 받아볼 것을 권유한다. PT를 받으면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굳이 그 정도까지 나는 운동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트레이너는 옆에 다가와서 PT를 받아볼 것을 넌지시 권한다. 나는 점차 부담스러워서 헬스장을 가지 않게 된다. 이것이 지금 내 유튜브 채널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나리오다. 내가 멤버십 언급을 하면 할수록 조회수와 구독자가 줄어든다 (또는 증가세가 줄어든다) 결국은 타겟 고객의 문제다. 내가 큰 돈을 내고 PT를 받는다면, 나는 이미 PT의 유용성에 대해서 느끼고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이다. 그렇다면 내 채널의 멤버십 역시도 이런 주제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대상이어야 한다. 라이트한 시청자들에게 자꾸 "PT"를 권하는 것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멤버십 영상 홍보 게시물을 모두 삭제 했다. 영상 내에서 멤버십 홍보 배너가 딱 두 번씩 뜨는 것만 남겨 두었다. 타겟 고객을 설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예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컨텐츠 분야에서는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받는 고객을 만족 시켜야겠다는 부담감은 점차 나답지 못한 컨텐츠를 만들고 이것은 기존에 내 컨텐츠에 만족하던 시청자들도 떠나게 만든다. 1. 날파리 같이 귀찮게 홍보하지 않기 2. 시청자를 고려하되 나다움을 잃지 않기 개설 후 일 년이 지난 시점 새로운 실험이 필요한 시점이다.

난 푸틴의 강인해 보이는 눈빛 속에서, '내가 찐따가 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같이 보이는데 같은 INTJ라 그런건가...

흔히 시스템이 완성된 곳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과, 맨 바닥에서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한다. 나는 규모가 있는 기업에서 시스템을 만들고 그에 맞춰 일하는 것에 강점이 있다. 반면 맨바닥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쌓아올리는 것을 좋아한다. 후자에 대해 '강점'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환경에서는 일을 잘하고 못함이 결과로 빠르고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대표의 독단에 의해 결과가 평가된다. 내가 그런 제로 베이스에서 일을 할 역량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독단적인 기준에 승복할 마음이 없다는거지.

맥북을 쓴지는 십 년이 넘고 맥스튜디오, 아이패드, 아이폰 생태계를 다 경험한 사람 치고는 애플워치를 뒤늦게 접하게 되었다. 딱히 워치로 할 일이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 있었는데, 조만간 교통카드 지원이 될 것이라고 하는 소식에 바로 질렀다. 근데 역시 생태계의 애플이라는 것에 걸맞게 패스워드 입력 없이 맥 잠금해제 되는 것만으로도 신세계다. 그나마 지문인식 있는 맥북은 괜찮은데, 바밀로 키보드를 쓰고 있는 맥스튜디오는 항상 패스워드를 직접 타이핑 해야 해서 매우 귀찮았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스윽~ 열리는게 기분이 너무 좋은걸...

길을 걷다가 보게 된 광고 문구인데 매우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피부가 좋아진다'는 결과를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이 미용을 받는 본질적인 심리를 조금 더 자극하고 들어간 문구다. 나의 미용은 남을 의식하는 부분이 큰데, 타인에게 피부가 좋아졌다는 칭찬을 듣게 된다니 얼마나 고객의 마음을 자극하는 문구인가.

내일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날이다. 요즘 들어 걱정이 많아진 느낌이다. 가진 것들이 더 늘어나서일 수도 있고, 욕심이 더 늘어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유학 생활 동안의 실패와 고통이 30대의 강한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실패다운 실패를 맛본 적이 없었다. 20대의 고통과 실패의 약발이 다 된 느낌이다. 실패는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 간 다시 실패를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실패를 하려면 무엇인가 도전을 해야 한다. 실패라는 백신을 한 번 맞을 때가 된 것 같은데, 실패를 딱히 하지 못하니 더 불안해 지는 것 같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아진다. 오랜만에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읽었다. 이 책이 나온 시기만을 놓고 보면 진부하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어제 나온 책이라면 혁신적이라 평가 받았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걱정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봤다. 결국 과거와 미래로 가는 문을 닫아 버리고,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것만이 걱정을 없애고 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마음이 꽤 차분해졌다.

애들 동화책 보고 따라 그리는거 재밌쪙~

포베온 센서는 구닥다리 느낌이라 팔아버려야지 싶다가도, 사진 결과물을 한 번 보고 나면 죽을 때까지 갖고 가야지 싶다. 화소수가 낮은데 확대를 해도 디테일이 정말 무시무시하다.

몇 년 만에 혼자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혼자 먹는 짜장은 언제나 낭만이 있단 말이지. 옆좌석에 구마적이 앉아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11승 14패 따리 저그가 APM이 300이 나오지를 않나... 말세다 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