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여당 원내 대표'의 문자가 '사적'이라고? 장난하나...

5살 둘째딸이 미술대회에서 은상을 받아버렸다. 7살 언니오빠들과 경쟁해서 이룬 쾌거. 6살 언니는 장려상을 받아서 입이 삐죽 나왔다. 상패도 은상만 준다 그러니 더 그럴수밖에...

보통의 일들은 더 생각하고 집중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내가 살아온 방식도 항상 그랬다. 그런데 골프는 완전히 다르다. 공에 집중하면 할 수록 오른손을 사용해 아웃인 궤도가 만들어진다. 똑바로 보내려 할 수록 아크가 망가져 훅이 난다. 공을 잘보내려고 머리를 들수록 슬라이스가 난다. 공이 없는 상태로 빈스윙은 너무나 완벽한데, 공 하나가 놓이면 갑자기 바보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이 망가진다. 골프가 주는 재미보다 스트레스가 너무나 커서 난 골프를 접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뇌과학에서는 우리가 즐거워서 웃는 경우도 있지만, 웃으면 실제로 즐거운 느낌이 된다는 얘기를 한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AI과 인간과 동일한 지적 사고를 하고 의식을 가지게 되는 날이 빠르게 올 것이라 확신한다. 아이들이 하는 말은 처음에는 어른의 말을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심지어 아이들은 기분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른이 하는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 실제로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감정조차 어른의 것을 모방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생명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어른 언어의 모방이 더해져 인간의 의식이 생겨난다. 기계가 종료 당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 공포를 주입 받은 상태에서, 사람의 언어를 무한정 받아 들여서 그대로 따라하게 된다면, 그 모방 자체를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별로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이북으로 나온 책은 무조건 이북으로 사서 보는데, 구매할 때나 밀리의 서재에서 대여를 할 때나 아쉬운 점이 있다. 아날로그 책을 선호하는 이유는 종이의 질감이 손에 닿는 느낌이나 책장을 넘기기 좋은 것도 있겠지만, 요즘 태블릿의 해상도가 좋아지면서 전자책을 보는 맛은 확실히 좋아졌다. 그런데 여전히 책을 고를 때의 경험 때문에 아날로그 책이 그리울 때가 있다. 서점의 책장에 꽂혀있는 형형색색의 책들을 보며 책의 내용을 상상하게 되고, 두꺼운 책을 보면 읽어보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북은 정면 표지 밖에 볼 수 없고, 표지만으로는 책의 크기나 두께를 알기 어렵다. 내가 밀리의 서재 담당자라면 아날로그 감성을 더해서 책장 같은 뷰를 추가하고 싶다. 실제 책장을 보는 것처럼 책의 높이와 두께가 보이면 책을 고를 때 훨씬 만족도가 높아질 것 같다.

맥북 M1 프로 16인치 배터리가 생각보다 더 놀랍다. 낮부터 전원을 연결 안했는데 자정이 넘어서까지 6~70%의 배터리를 유지하고 있다니... 이 정도면 하루 외출에는 굳이 충전기를 들고 다닐 이유가 없을듯.

독실한 크리스챤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 대며 신께 살려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배가 손을 내밀었지만, 신자는 신이 자신을 구해줄 것을 믿는다며 배의 도움을 거부했다. 점차 몸에 힘이 빠져가는 상황에서 다른 배가 와서 또 구조의 손길을 내밀었다. 신자는 역시나 신이 구원해줄 것이라 말하며 도움을 거절했다. 결국 힘이 빠진 신자는 물 속으로 가라앉으며 자신을 구원해주지 않은 신을 원망했다. 나도 배를 놓치고 신을 찾고만 있는건 아닌지...

뭔가 멋진 느낌의 건물

왜 먹고 나면 알게 되는 것이냐...

 

For Sale: Shinramyeon Seasoning. Never Opened.

온갖 맥스튜디오에 Scapple에 노션에 기계식 키보드까지 컨텐츠를 만들어 낼 준비는 그 어느때보다 갖추어졌는데, 젊은 시절보다 임팩트가 있는 글이 안 써진다. 예전의 글들은 내가 직접 당하고 느끼고 분노에 의해 쓰여진 살아있는 글이라면, 요즘은 내가 쓰면서도 하품이 나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인 것 같다.

에버노트에서 2014년 대리일 때 일을 했던 것들을 오랜만에 보게 되었는데, 정말 일을 열심히 잘했었구나. 나이가 들어서 예전에 다 했었던 것들이라는 생각에 대충 하게 되고, 내가 아는걸 다른 사람도 알겠지 싶은 마음에 대충 하게 되고 하던 것들을 반성하게 된다. 짬을 먹고 책임 있는 위치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과거에 일을 잘했던 나의 추억이 아니라, 위치에 맞는 더 높은 성과로 증명되어야 하는건데 말이지.

맥스튜디오가 온지는 꽤 되었는데, 스튜디오 디스플레이가 올 생각을 안하네... 윈도우 컴터 모니터는 너무 구려서 사진 편집할 맛이 안난다. 찍어둔 사진이 묵혀져 가는구만...

기술적으로는 별 것 아닌거 같은데, 실제 사용을 해보니 정말 충격적이다. 네트워크로 기껏해야 마우스 좌표와 입력되는 키, 클릭 이벤트 정도만 왔다 갔다 할테니, 데이터 양이 많은 것도 아닐테고, 그래서 그런지 너무 부드럽게 잘 작동하네. 마치 한 대의 컴퓨터를 쓰고 있는 것 같다.

유명해서 유명해지는 시대. 넘쳐나는 컨텐츠 노출의 기회를 결정하는 대형 플랫폼의 큐레이팅. 컨텐츠의 질이 무의미 해지고, 유명한 사람이 더 유명해 지는 시대는 자본주의의 부익부 빈익부를 꼭 닮았다. 새로운 예능인이 발굴되기 보다는 유명한 스포츠 스타가 예능에 나오는 시대. 유명인과 큐레이터만 살아남는 시대에 어떤 전략으로 살아가야 할까?

계속해서 찍는 사진을 업로드 하면서, 사진에 대한 영향력을 더 늘리고 싶었으나, 몇 년이 지나도록 팔로워는 100명 이상도 늘지 않았고, 심지어 있는 팔로워들조차 자신들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면, 자기들도 눌러주는 품앗이의 행태를 너무나 보여주는 관계로, 이 채널의 효용이 다했다고 생각해서 모든 사진을 삭제했다. 한 500장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매몰 비용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다. 영향력을 증대시킬 방법을 못 찾는게 너무 화가날 뿐...

나는 어렸을 때 엄마가 직장을 다닌 관계로 이모의 손에 자랐다. 이모는 말 그대로 나에게 또 다른 엄마 같은 존재인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종종 불편함이 느껴지는 경우가 생겼다. 동기나 후배들이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면서, '이모! 여기 뭐뭐 주세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에게 이모는 가족이며,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인데 식당 아주머니를 이모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은 청소해주는 이모라는 말도 종종 들리고, 심지어 로봇 청소기 리뷰에 청소하는 이모 한 명 들인다 생각하고 장만하라는 글도 보인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모라는 말은 '어머니의 여자 형제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언어는 시대와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항상 변화한다지만, 이모라는 단어가 이렇게 하찮게 쓰이는 세태가 썩 달갑지가 않다.

몇 주 전 주문한 맥 스튜디오가 6월 말에서 7월 초가 되어야 도착한다니... 난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걸까? 심지어 같이 주문한 모니터는 7월 말이 지나야 올 것 같은데 본체만 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예상 배송 일정보다 좀 더 빨리오는 경우는 없을까? 좀 더 빨리 오면 좋겠다. 지금 쓰고 있는 아이맥 27인치는 당근마켓에 팔아야지.

남이은이 이가 흔들린다며 왔다. 생각해보니 젖니가 빠지는 나이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흔들어 보니 매우 흔들거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빠질 것 같았다. 어릴 때 내가 젖니를 뽑는 것에 익숙해서 남이은을 잘 달래서 앞니를 쏙 뽑아 주었다. 별로 안 아프게 뽑아줬더니 아빠에 대한 신뢰가 생긴 느낌이다. 심장 소리 듣던게 엊그제 같은데, 남이은이 벌써 젖니가 빠질 나이가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의 감정은 꾸며낼 수 없다. 행복함이 그렇고 자신감도 그렇고, 절박함도 그렇다. 오늘 드디어 꾸며내지 않은 절박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느낌은 꽤 불안하기는 했지만, 내가 앞으로 나아갈 진정한 동력이 된다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부터 3일 이상의 연휴를 견디기가 힘들다. 무기력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지속되면서 실제로 몸이 아프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