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죽삐죽 솟아 있는 사람들의 머리 사이로 현재 역을 알려주는 팻말을 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목적지역을 정확하게 안내해 주는 카카오 지하철 덕분에 매일 아침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다. 귀에 끼고 있던 이어폰에서 내릴 역 한정거장 전인 석촌역이라는 알림이 나온다.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의 내 정신은 곧 일어나는 내 육체에 따라 깨어나게 될 것이다. 잠시 후에 내릴 역은 잠실역이라는 안내가 나온다. 나와 같이 내리는 수많은 사람들에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느끼며 열차 밖으로 나온다. 중력에 의해 물이 흘러가듯이 나는 의식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걷는 방향으로 발을 맞추어 움직인다. 앞서 계단을 오르는 사람의 속도보다 내 속도는 빨라서 더 빠르게 계단을 오르려 움찔 앞으로 나섰다가도 앞선이의 등을 보고 이내 얌전해진다. 앞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걷다가 카드를 찍고 게이트를 통과한다. 계단을 한 번 더 올라야 하는데 평소에 운동을 못하는 점을 고려해 허벅지와 발목에 꼼꼼히 힘을 주어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고 오른쪽을 바라보면 예술 작품이 하나 보이는데, 이 작품은 그 위에 얹혀져 있는 ‘예술 작품입니다. 앉지 마세요.’라는 매우 못생긴 팻말로 비로소 완성된다. 뭔가 우주정거장 같은 느낌의 긴 지하통로를 걷다 보면 맹인을 위한 노란색 바닥을 가끔 밟게 되어 울퉁불퉁한 느낌이 든다. 마주오는 출근길의 행인들은 거의 무표정하게 나를 지나쳐 거울을 보는 것 같다. 왼쪽 눈을 감은 채로 기계적으로 걷다가 통로의 끝에 다다르면 왼쪽 분식집에서 김밥이나 떡볶이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뒤에 있는 벽을 돌아본다. 그 벽에는 꽤 가끔 노숙자가 앉아 있다. 어느날은 딱 한 번 젊은 여자가 망연자실하여 그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다. 순간 노숙자가 그 여자로 변신한걸까 생각을 했다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노숙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 벽이 지겨워진건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았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그 벽 앞을 지나는 1초간 나는 항상 그가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는 것이 의식처럼 되어버렸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왔네’라는 가사는 누구나 나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 노숙자가 다시 그 벽으로 온다면 꽤 반가울 것 같다. 그 벽을 지나치면 오른쪽에 휴대폰 관련 악세사리를 파는 가게가 나온다. 잡다한 악세사리를 파는 셔터만 달랑 달린 공간이라 할지라도 잠실역의 위치를 감안하면 꽤 비싼 임대료를 내어야 할 것이다. 그걸 고려하면 잠실역 안의 허름한 임시상점은 좀 이질적인 곳이다. 악세사리 점을 지나면 괜히 신나는 기분이 드는 세계 과자를 파는 공간이 있다. 시속 11킬로 정도로 걸어가면서 모두 살펴보기는 불가능 하지만, 익숙한 프링글스가 색깔별로 눈에 띄고, 내가 좋아하는 녹차맛 키캣도 있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다이어트 중이니 사먹지는 않을 것이다. 오른쪽으로 돌면 드디어 지상으로 나가는 계단이 보인다. 건강을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간다. 광역버스 정류장이 연달아 있고 버스 대기석 뒤로 토스트를 파는 리어카가 있다. 입김이 세어 나오는 추운 아침 토스트를 굽는 따뜻한 열기가 후끈 볼로 다가온다. 열기와 함께 나를 덮친 냄새가 역겹게 느껴진다. 이건 참 이상한 일이다. 길에서 파는 토스트는 분명히 맛있는 음식인데, 몇 년 전 당구장 가기 전에 매일 먹었던 음식인데 말이다. 갑자기 기차 옆자리에서 과자를 먹으면 그 냄새가 엄청 강하고 역겹게 느껴졌던 기억이 났다. 사람의 감각이란 이처럼 상대적이고 이기적인 것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방귀냄새는 토할 것 같은데, 자기 방귀 냄새는 견딜만 하다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는다 생각하는 것들에 얼마나 우리의 주관이 들어가는지. 먹을 때 맛있는 그 음식의 냄새가 너무 역겹다. 배고플 때 맡으면 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