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술을 드신 날이면 여느 아버지들처럼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오셨다. 내 볼에 까칠한 턱수염을 일부러 세게 비비기도 하고, 턱수염보다는 조금 더 길이가 길어 부들부들한 느낌이 드는 콧수염을 비비기도 하셨다. 딱히 유쾌한 기분은 아니라 나는 몸을 버둥거리며 피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런 의식 뒤에는 용돈이 따라오는 경우가 많아서 수염과 접촉한 대가로 적절했다. 아버지가 사온 것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슈샤드’ 초콜렛이다. 지금도 머리 속에 광고의 짧은 한구절이 맴도는데 ‘슈슈슈샤드~ 초콜렛~’ 대충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슈샤드가 유독 기억에 남았던 이유를 지금와서 떠올려 보면, 일단 슈샤드는 나에게 배송되는 벌크 제품이었다. 하나씩 사 먹는 2~300원의 초콜렛이 아닌 10개 이상이 들어있는 박스는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산동네 허름한 집의 마루에서 펼치는 그 박스에서 나는 풍족함을 느꼈던 것이다. 슈샤드의 포장지를 보면서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짙지도 않고 옅지도 않은 보라색은 약간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흰색으로 그려진 소를 보며 유럽의 우아한 목장을 상상하기도 했다. 당시에 많은 초콜렛이 있었겠지만 아버지가 가끔 사오시던 보라색 슈사드는 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슈샤드 초콜렛 광고]

 

또 다른 기억은 돈까스에 대한 기억이다. 동래시장 안으로 들어가 동래성당이 있는 쪽에서 100미터 정도 걸으면 있는 사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경양식 가게였는데, 엄마와 동래시장 쪽에 갈 일이 있을 때 가끔 들러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가게가 유명하다면 얼마나 유명했겠는가. 엄마도 무심코 들렀던 식당이었겠지만 어린 나에게는 그 식당이 의미있게 다가왔었다. 깨끗하게 닦여진 하얀색의 플라스틱 둥근 쟁반 위에 쟁반 색과 거의 같은 하얀 쌀밥이 꼬들꼬들한 채로 올려져 있었다. 보통 집에서 먹는 밥을 이렇게 꼬들거리게 짓는 법은 잘 없어서 유독 더 맛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회용 휴지로 돌돌 감아 놓은 스푼과 포크와 나이프를 풀면서 나의 품격이 높아지는 느낌도 들었다. 꼬들거리는 밥은 포크로 떠서 먹는게 제격이었다. 돈까스 옆에 있는 마카로니와 마요네즈에 버무려진 사라다도 일품이었다. 요즘이야 수프를 슾이라 하고, 사라다를 샐러드라 하지만 그 때 내가 먹었던 음식은 사라다였다. 지금도 나는 신선한 야채에 드레싱이 뿌려진건 샐러드라고 부르고, 양배추를 대충 채 썰어 마요네즈를 뿌린 것을 어디선가 보게 되면 주저없이 사라다라 부른다.

초등학교 1학년 가야시장 쪽에 화랑을 하는 아저씨가 계셨다. 키가 크고 마른 몸집에 작은 눈에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인상이었다. 당시에 아버지는 가야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셨는데, 화랑 아저씨와는 친한 사이셨고, 그 인연은 지금도 이어져 근처 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화랑을 하는 아저씨는 나를 귀엽게 여겼는지 아니면 아버지 낯을 봐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햄버거를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버거킹이나 맥도날드가 없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롯데리아도 없었던 시절이다. 또는 가야시장 쪽이 충분히 번화하지 않아 입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햄버거 가게는 가야시장 초입의 삼거리에서 약간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햄버거 빵은 촉촉하지 않아 빵의 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안에 들어가는 패티는 100% 고기라 하기에는 뭔가 퍼석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도 양배추가 채 썰린 채로 들어가 있었는데, 케찹과 마요네즈를 섞은 소스가 버무려졌다. 싸구려 햄버거 집의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레시피였는데 내 인생에서는 유일한 햄버거여서 맛있고 특별한 햄버거였다.

마지막 떠오르는 기억은 빵집에 대한 기억이다. 어린 시절 영도 골목에서 뛰어논 기억을 가진 채로, 다 자란 후에 영도에 갔다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마음껏 뛰어 다니던 그 넓은 골목이 차 한대도 겨우 지나다닐만큼 이렇게 좁았던가 하고. 내가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망미 주공아파트 단지에서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57번 210번 49번 등의 버스가 지나다니는 큰길에서 86번 87번만이 올라오는 망미주공 단지내의 정류소로 올라가는 비탈길에 오른 편으로 아파트 단지 상가가 하나 있었다. 어릴 때 느낌으로 이 상가는 프리미엄 아웃렛 같은 느낌이었는데, 역시 어른이 된 후에 봤을 때는 가게가 연달아 5~6개 붙어있는, 주차장 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 작은 상가였을 뿐이다. 이 상가의 가장 왼쪽 편에 끄레용이라는 빵집이 있었다. 상가의 끝 편에 있어 상가 앞으로도 들어갈 수 있고, 옆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하나 더 있었던 것 같다. 이 빵집에서 엄마가 주로 사주셨던 빵은 꽈배기빵이었다. 사자의 갈기처럼 노릇노릇한 색깔에 굵은 댕기머리를 꼬아놓았다가 납작하게 누른 것 같은 모양이었다. 엄마 옆 조수석에 타고 이 빵을 먹을 때면 비닐에서 꽈배기를 반쯤 꺼내서는 비닐 채로 잡고 한입씩 베어 먹었다. 꽈배기는 페스추리처럼 되어 있어 씹을 때 식감이 폭신했고, 겉에 설탕이 까칠까칠하게 발라져 있어 맛이 좋았다. 작은 아파트 상가 안의 별 특별할 것 없는 빵집이 내 기억속에서 끄레용, 끄레용 하면서 가끔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