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나치는 그들이 공산주의라서, 사회민주당원이라서, 노동조합원이라서 덮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권력에 반하는 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을 뿐이고, 거짓된 명분을 위해 프레임을 씌웠을 뿐이다.

80년대 우리 역사에서도 광주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 그들이 빨갱이라는 거짓된 이유로.

택시운전사인 송강호는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외부인이었다. 그는 운좋게 탄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데모를 하는 대학생들을 욕했다.

운좋게 탄압대상이 아니었던 그는, 운나쁘게도 광주에 택시를 몰고 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운이 나쁘게 되었지만 하루에 10만원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사실 운이 좋은 일이었다.

운이 좋게 또는 나쁘게 세상의 일은 일어난다.

운이 나쁘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권력에 희생당하는 일도 생긴다.

송강호는 그 점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소시민이었다.

사글세를 내지 못해 집주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도 못하고, 집주인의 아들과 싸우는 딸에게 참으라고 말한다.

‘사람이 참을줄도 알아야지.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송강호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적당히 억울한 일에는 참고 사는 전형적인 소시민이었다.

그렇게 광주 민주화운동에서의 외부인이었던, 서울 사람인 그가 광주로 들어가게 된다. 광주에 도착한 그는 아직까지 외지인으로 현지인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표면적으로는 광주 안으로 들어갔지만, 송강호는 여전히 외부인이자 관찰자였다.

내가 느낀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외부인이었던 송강호가 광주 민주화운동의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독일기자등과 건물 옥상에서 길을 내려다보던 송강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길거리로 내려가게 된다.

광주의 안으로 들어간 송강호는 뉴스에서 말하는 ‘광주사태’가 아닌 광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모인 그들은 부인을 잃고, 사랑하는 딸과 살며 사글세를 걱정하는 넉넉하지 않은 송강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노래는 못하지만 기타리스트로 대학가요제에 참가하기 위해 대학을 갔다는 류준열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명감에 불타는 진지한 독일 기자는 구멍 뚫힌 양말을 보여줌으로써 타지에서 고생하는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보였다.

이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그들이 서로 공감하고 교감하는 순간이다.

공감한 사건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이때부터 송강호는 자기의 일처럼 뛰어 다닌다.

 

이 영화에서는 외부의 관찰자로 머물지 않기를 권한다.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해, 광주 시민이 아니었던 사람들은 공간적 외부인이었다. 민주화를 겪지 못한 젊은 세대는 시간적으로 외부인이다.

나조차도 영화를 통해 시각적인 것을 보지 못했을 때 이 사건은 교과서에서 본 불행한 사건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았을 때 어이없음과 잔혹함에 눈물을 흘렸다.

어느 시대나 권력자는 존재하며, 크고 작은 갑을 관계가 있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항상 관심을 가지는 것만이 세월호 참사나 503사태 등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