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키우고, 개를 좋아하다 보니 EBS에서 방영하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이하 세나개)를 빠지지 않고 보는 편이다. 초기에는 말썽 부리는 강아지들을 어떻게 훈련 시키는지 강형욱의 노하우를 보기 위해 시청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즌 1부터 오랜 기간 시청을 하다 보니 강아지의 말썽 행동을 보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 미리 생각을 해보고, 그 방식이 강형욱이 진행하는 방식과 거의 다르지 않은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이런 덕분에 우리 집의 탕콩이는 거의 완벽한 강아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산책 때 다른 강아지를 보면 미친듯이 짖는건 차차 고쳐나가자ㅠ

세나개 시즌 2에서는 분량이 조금 더 길어졌다. 웬만한 문제견들은 다 등장했다 싶었는데 점차 더 자극적인 문제견들이 등장한다. 강형욱은 세나개를 진행하면서 강아지를 훈련시키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주인을 교육하러 간다고 말한다. 애초에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제목 자체가 강아지의 주인이 잘못된 교육으로 개를 나쁘게 만들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요즘 나는 세나개를 볼 때 강아지가 아닌 그 주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시청한다.

강아지의 문제가 심각할수록 강아지 주인의 문제도 심각하다. 강아지를 대하는 방식 자체의 문제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 자체가 너무도 열악하다. 이들은 주체적이지 못하고 독립성이 부족하다. 그들은 무분별한 사랑을 강아지에게 쏟아 붓지만 그건 결코 사랑이 아니다. 이들이 키운 강아지가 문제견이 되었듯이 이들이 키우는 아이는 문제아가 될 것임이 자명하다. 이들은 강아지에게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며, 칭찬을 할 때와 야단을 칠 때를 구분하지 못한다. 또는 구분하더라도 표현방식이 부적절하다. 지나친 관심은 강아지를 의존적으로 만든다. 잘했을 때와 잘못했을 때 피드백을 적절히 받지 못한 강아지는 어떤 일을 해야 사랑받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요즘의 세나개는 너무 자극적이다. 나름 정상적인 환경에서 강아지의 문제를 수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개를 키우는 사람 자체가 너무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듯이 세상에 나쁜 사람도 없다. 그들의 소득과 교육 수준에 따른 그들의 생활이 너무나 안타깝다. 강아지의 문제 행동을 고치겠다는 애초의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세나개는 우리사회의 하층민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되어 버렸다.

더러운 이불과 뜯어진 벽지, 몇 평 되지 않은 공간에서 커다란 강아지와 섞여 살아가는 하층민의 삶이 너무도 힘들어 보인다. 강아지의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의 삶 자체를 관찰하는 자체가 마음이 불편하다. 생활 지원과 교육으로 그들의 삶이 극단적으로 개선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아 해결책을 제시하기에는 가식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당분간 그대로 간직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