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일은 ‘흑과 백’, 또는 ‘선과 악’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검은색은 누가 봐도 검다고 할 것이고, 흰색이라면 누구나 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중간 어디쯤의 색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는다.

논란의 파검 드레스

논란이 되었던 ‘파검 드레스’ 사건이 있다. 누군가는 드레스의 색깔이 파란색/검은색이라 했고, 누군가는 금색/흰색이라 했다. 나는 사진을 보자마자 갈색/하늘색이라고 생각했다. 각자의 주장은 모두 이유가 있었다. 먼저 파란색/검은색으로 판단한 부류는 이 사진이 노출이 오버된 사진일 것이라 머리 속에서 필터링을 거쳤을 것이다. 밝기가 적정상태였다면 파란색과 검은색이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머리 속에서 판단의 과정을 거쳤다. 사진을 보고 금색과 흰색을 본 사람은 형광등 아래에서의 화이트 밸런스를 고려하여, 푸르스름한 색이 원래는 흰색이었을 것이라고 판단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문제는 각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의 머리속에서 그런 과정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각자의 뇌 속에서 과정을 거친 후 사진의 색은 누군가에게는 파란색/검은색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금색/흰색이었다. 평소 객관성을 가장 중시하는 내 경우에는 아무런 머리 속의 과정없이 색 자체로만 판단했을 뿐이다. 실제로 포토샵에서 사진을 불러 스포이드로 각 지점을 찍어보면, 노란색이 들어간 갈색과 어두운 하늘색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여름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드 버전 출시가 예정되면서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 출시 될 버전에 부대지정이 좀 더 편해지거나, 생산이 더 편해지는 쪽으로 인터페이스가 개선되는 것은 반대한다. 이미 인터페이스의 불편함이 게임성의 일부로 자리잡았고, 그 변화로 인하여 종족 간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다. 이와 반대로 게임 내의 단축키를 개인이 설정하는 기능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찬성한다. 파일런을 건설하고 프로브를 뽑을 때 ‘p’키보다 왼손으로 누르기 쉬운 단축키를 설정할 수 있다면 프로토스 유저들의 플레이가 한결 편해질 것이다. 대다수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이 상황에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한 쪽의 주장은 단축키를 설정하는 것 역시 게임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경이기 때문에 인터페이스 변경건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쪽의 주장은 단축키의 변경은 인터페이스 변경만큼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변경을 통해 게임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두 가지의 변경은 동일하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영향도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차별점이 있다. 대다수가 단축키의 변경은 찬성한다는 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게임에 영향을 줌’ VS ‘게임에 영향을 주지 않음’이라는 극단적인 프레임으로 사안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혼란과 충돌이 생긴다. 영향도가 적다는 것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며, 어느 정도의 영향도까지는 용인할 것인지에 대한 개인의 기준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와 성향, 그리고 살아온 경험에 따라 백 명의 사람은 백 가지 기준을 가질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정량이 아닌 정성적인 요소를 만들어 내는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저울은 결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총론과 각론의 충돌은 (흔히 미러링이라 불리는) 상대에게 상황적 비유를 시도할 때에도 종종 나타난다. 이번 대선토론에서 심상정이 홍준표에게 도지사를 사퇴할 때 꼼수사퇴를 하여 국민들의 참정권을 제한했다고 공격을 했다. 이에 홍준표는 심상정에게 왜 국회의원을 사퇴하지 않느냐며 반격을 퍼부었다. 홍준표의 반격은 하나의 공격을 여러 프레임으로 분산 시켜버림으로써 논점을 흐뜨려 버리는데 효과적이었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홍준표의 사퇴 시점에 따라 국민들이 새로운 도지사를 가지지 못했다는 참정권 문제와, 대통령에 출마할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므로 기존의 역할에서 사퇴해야 하는가 하는 두 가지 논점이 섞여있다. 심상정은 홍준표의 사퇴 시점이 국민의 참정권을 빼앗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홍준표는 왜 자신만 사퇴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홍준표의 관점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대통령 출마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현재 지위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큰 관점만이 존재한다. 이 명분에 따라 안철수 역시 국회의원에서 사퇴 하였다. 그러나 세부 관점에서는 국회의원과 도지사에서 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입법부이고 하나는 행정부라 정치적 중립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근거가 있고, 그에 따라 법이 정해졌을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심상정의 행동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홍준표가 제시한 프레임에서는 심상정 역시 자신의 현재 지위를 버리지 않고 보험으로 들고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옳고 그르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과 판단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지지성향에 따라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듣고, 믿는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각자의 프레임으로 서로를 공격할 때 그 싸움은 결코 어느 한쪽의 KO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분법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두부 자르듯이 재단하려는데에서 대부분의 문제들이 생기는 것이다. 세상의 애매모호함과 기준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가는 것이 충돌을 해결함에 있어 훨씬 더 도움이 되는 태도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