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관료화’가 진행되는 것을 목격했다면 축하할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관료화의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기업은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게 된 것이다. 회사의 성장으로 인해 직원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관료화의 전제조건이다. 기업은 성장하면서 직원의 수를 늘리고, 그 과정 또는 결과로 수익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에서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150명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그 이상 수천, 수만명이 사회를 이루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이들이 같은 상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국가, 학교, 민족, 회사 등의 개념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라는 상상의 산물을 더욱 강력하게 유지하려는 의도로 관료화는 시작되었다.

관료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계층구조(Hierarchy)이다. 계층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충돌지점이 발생한다. 가장 상위의 CEO가 생각하고 강조하는 비전과, 가장 아래쪽의 직원들이 생각하는 업무의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CEO는 비전을 바탕으로 회사의 방향성과 가치를 제시한다. 추상적이고 희망적인 CEO의 메시지는 계층구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아래에서 올라오는 현실적이면서 비판적인 저항과 맞닥뜨린다. 이런 충돌을 방지, 또는 해결하기 위해 회사에서는 중간 관리자를 고용한다. 회사는 중간 관리자가 회사의 비전을 아래로 잘 전달하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현실적인 문제를 상위로 잘 전달하기를 바란다. 회사는 중간 관리자가 직원들의 불만과 저항을 잠재우고 상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기를 바란다.

계층구조로 인해 생기는 또 다른 특징은 의사소통이 단일한 채널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효율성을 위한 것인데, 단일한 의사소통의 채널이 정말 효율적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효율성을 의사소통의 신속함과 책임소재의 명확함만으로 판단한다면, 단일한 의사소통 채널은 매우 효율적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소통된 정보들이 회사의 정책을 결정하는데 양질의 정보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단일한 통로를 통해 아래 방향으로는 ‘명령이 하달’되고, 윗쪽으로는 ‘리포팅’이 진행된다.

상위 이해관계자가 리포팅을 원하는 이유는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 진행되는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상위 이해관계자가 가장 좋아하는 리포팅은 자신이 결정한 시간과 비용 안에서 이슈없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담은 리포팅일 것이다. ‘정해진 시간과 비용’, ‘이슈없이’, ‘완료되다’. 상위 이해관계자는 이런 아름다운 단어의 조합만이 담긴 짧은 리포트를 원한다.

상위 이해관계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더 많은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했는가?’,  ‘그 과정에서 비용을 절감했는가?’ 늘어지는 일정이 비용의 증가와 직결된다는 것을 늘 생각한다면, 업무를 완료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열성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무자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리지 않은 채로 관성에 의해 맡은 일을 처리한다. 현실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생각하면, 상위 이해관계자와 실무자의 이런 마음가짐의 차이가 상위와 하위의 충돌을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런 이유로 일정이 틀어지는 상황이 지속되면, 위로부터 내려오는 명령은 더욱 단호하고 강력해진다. 그리고 관료화의 구조는 더욱 더 단단해진다.

상위 이해관계자는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때, 우리가 쓸모없이 시간만 낭비한다고 생각하는 리포트를 원하게 된다. 그들은 실패의 원인을 리포팅을 통해 찾으려 하며 관리를 강화한다. 이것은 헛된 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리포팅을 통한 원인을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은 재앙의 시작이 된다. 상위 이해관계자가 원하는 일별, 또는 주별 리포트는 수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먼저, 리포팅은 상위관계자가 보고 싶어하는 ‘진짜’ 정보를 담지 못한다. 모든 것은 사람의 일이다. 업무를 하던 누군가는 실연을 당해 마음 아파하며 업무 능률이 떨어졌을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의존관계 때문에 작업이 지연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리포트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빠지는 대신 숫자가 들어간다. 전혀 쓸모가 없지만 여전히 사용되는 M/M(man month)라는 개념이 대표적이다. 30분 만에 맡은 일을 끝낼 수 있는 수퍼개발자와 열흘이 지나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무능한 개발자는 문서 위에서 똑같이 한 명으로 표현된다. 리포트 위에 있는 숫자를 믿고 안심하는 이해관계자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또 속냐?’

숫자는 상황을 말해주지 못한다.

또 다른 문제는 리포트를 만드는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비용의 낭비를 막고자 하면서, 지속적인 리포트를 요구하는 것은 무너지는 건물 위에서 발을 더 세게 구르는 것이다. 리포트를 작성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리포트에 들어가는 정보를 과거의 정보로 만든다. 예를 들어, 금요일에 리포팅을 하려면 목요일까지 각 담당자들은 정보를 모은다. 목요일까지 정보를 모으는 담당자들은 수요일까지 실제 업무 진행상황을 파악한다. 상위 이해관계자가 금요일에 보는 리포트는 수요일의 내용이다. 업무가 급박하게 진행되는 상황이라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리포팅을 위해 수많은 자원이 사용되지만, 정작 그 리포트는 필요한 내용을 말해주지 않는다. 때문에 관료화는 필연적으로 멍청함을 동반하는 것이다.

관료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는 관료화의 일부분으로 중간 관리자가 투입된다. 관료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업무를 맡은 중간관리자가 철저하게 책임을 지고 업무를 완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위 이해관계자와 중간 관리자 사이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상위 이해관계자는 업무를 지시할 때, 달성해야 할 목적과 가용할 수 있는 자원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목적 달성을 위한 방법에는 관여해서는 안된다.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의 폐해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역량있는 중간 관리자가 상위 이해관계자와 지속적인 신뢰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많은 책에서 관료화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통해 커다란 공감을 얻어내지만, 해결에 대해서는 짧은 지면을 할애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만큼 상황을 해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관료화가 뿌리깊게 들어온 조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없다. 상위에서 오는 명령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율성을 잃게 된다. 달성하기 불가능한 목표와 일정이 내려오면, 의욕조차 사그라든다. 가장 말단 사원에서 CEO의 바로 아래까지 모두 계층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꽤 높은 자리에 있어도 계층에서 바로 위에 자신을 통제하는 상사가 존재한다. CEO는 계층에서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없지만, 썩어가는 조직으로 인해 회사 경쟁력이 떨어지는 가장 큰 벌을 받게 된다. 관료화의 폐해가 이렇게 극명한데도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경직된 방식으로 일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해결책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표류 중인 사람이 목이 말라 바닷물을 계속 퍼마시는 것처럼, 건물 안에 갇힌 사람이 자신의 오줌을 받아 마시는 것처럼 그들은 관료화가 해법이라는 듯이 행동한다.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변명하지만 그건 답이 아니다.

바보스런 리포팅으로 인해 사람들은 정신을 빼앗긴다. 처음에 ‘스마트’하게 일을 하던 사람들은 관료화가 진행되어 가면서 ‘열심히’ 일을 한다. 스마트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잉여로움 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데, 관료화 된 조직에서는 생각할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조금 더 관료화가 심해지면 ‘열심히 일하는 척’하게 된다. 자신의 성과를 끊임없이 리포트 해야하기 때문에 실제 일을 하는 것보다 가짜일을 하고 나서 그것을 예쁘게 포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인재들은 떠난다. 머리를 쓰지 않는 자유없는 생활은 삶을 즐겁게 만드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도 관료화는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든 회사가 가지는 열매라는 점은 너무나 역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