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초보자들이 맑은 날이 사진 찍기 가장 좋은 날인 양 생각을 하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나는 그림에는 항상 하늘이 있어야 하고, 해가 떠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그냥 하늘을 칠하고 해를 그렸다는 편이 더 맞는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화창한 하늘에 해를 그렸다. 해를 그리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해를 정확하게 관찰하기에는 눈이 아팠기 때문이고, 얼핏 보더라도 해의 색을 크레파스에서 골라내기는 애매했다.
그래서 나는 해를 이렇게 그렸다.
어디선가 동화책에서 본 해의 이미지를 본 따서 그린 것이다. 누군가가 이것을 보고 벌레 같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일정 부분 동의했다.
그래서 나는 해를 다시 그렸다.
이것 역시 해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어디선가 보고 흉내 낸 것이다. 누군가가 보더니 이건 사자 같다고 했다. 내가 봐도 가장자리는 사자의 갈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해를 다시 그렸다.
이건 과학적인 상상으로부터 온 해 본연의 모습이리라. 동그랗게 그린 후에 단순한 원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웃는 눈과 입을 그렸다. 해라해도 항상 즐겁지는 않을텐데도. 그리고 나서 보니 이건 보름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대머리 같은 느낌도 났다.
요즘도 해를 그리게 된다면 난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 내가 그린 해를 보고 지적했던 사람들은 내가 해를 다시 그리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평생 해를 그릴 때마다 망설이는 것도 의도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그저 툭 던진 한마디에 내가 해를 다시 그릴 필요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