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미팅성애자에게,

회사마다 미팅성애자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는걸 알아. 너희들은 하루종일 회의를 다니더라. 회사에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항상 자리를 비우고는 회의에서 돌아올 때면 상기된 표정으로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온 것처럼 한숨을 쉬지. 너희가 회의를 좋아하는만큼 어떻게 하면 회의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을꺼라 생각해.

회의를 잘하고 싶으면 회의 횟수를 줄여. 그게 첫번째야. 회의를 하기 위해서는 회의 준비가 필요해. 네 머릿속에 회의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이 있어야 하고, 회의의 안건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해. 그리고 회의를 통해서 무엇을 얻어야 할지도 미리 고민해야 하지. 회의를 마치고 나면 정리가 필요해. 미팅노트를 작성해서 회의 참석자들에게 보내줘야 하지. 회의에서 나온 액션아이템을 챙기는 시간도 필요해. 보기 쉽게 그림으로 보여줄께.

너희는 회의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회의 준비와 정리에는 소홀하지. 심지어 회의 중에 이쪽저쪽 전화해서 묻는 엽기적인 시간낭비도 보여주더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회의 횟수를 줄여. 하루종일 회의를 하는 네가 회의를 준비하고, 회의를 정리할 시간은 없어. 물론 너희들은 회의를 줄이고 싶지만 줄일 수 없다고 말할꺼야. 모두가 중요한 회의이며, 네가 꼭 들어가야 하는 회의라고 생각하겠지.

틀렸어! 모든 것이 중요하다는건 말이 안돼. 대학 때 21학점을 듣는다고 하면 꽤 바쁜 학기를 보내야 해. 조금 더 무리해서 24학점을 들었다면, 좀 더 정신없는 학기를 보내게 되겠지. 대학에 개설된 전공과목들 중에 중요하지 않은 과목은 없어. 하지만 네가 모든 과목들을 다 들었다면 소화해 낼 수 없었을꺼야. 시험기간에 전과목들을 공부하기도 벅찼겠지. 심지어 과목끼리 수업시간이 겹치는 경우도 있어, 물리적으로 몇몇 과목들을 같이 듣기에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을꺼야. 그래서 네가 21학점을 선택할 때는 좀 더 중요한 과목이거나, 네가 선호하는 과목을 골라서 들었을꺼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언제나 결정하기 어려운 것 중 결정하기를 요구받는다

이것이 바로 ‘우선순위’라는 개념이야. 네 능력은 한계가 있고, 일은 끊임없이 발생해. 넌 수많은 회의를 우선순위에 따라 배열한 후, 우선순위가 낮은 회의는 참석하지 않아야 해.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 특히나 아직까지 ‘우선순위’의 개념도 모른채 이 회의 저 회의에 들어갔던 미팅성애자라면, 능력이 출중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넌 회의의 수를 줄여야 해.

그럼 어떻게 회의를 줄일 수 있는지 알려줄께. 남녀 간의 고백은 최종적으로 상태를 확인하며, 리본을 가위로 자르는 의례같은거야. 사전작업이 충실하고 이미 서로 간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전제하에 성공하는거지. 회의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도 사전 준비가 가장 중요해. 먼저 네 스스로 회의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했는지 생각해봐. 회의의 안건에 대해 충분히 생각한 후에 몇 가지 결정해야 할 사항이 있어.

깜짝고백이 여자를 당황시키는 것처럼, 깜짝회의 초대는 참석자들을 당황시킨다

먼저 회의의 참석자가 누가 될지를 결정해. 너희들은 보통 참석자 수를 늘리는걸 좋아하더라. 회의의 참석자를 최소로 유지해. 너희가 회의를 주최할 때와 회의에 참여하는 입장일 때 둘 다 문제가 돼. 회의를 주최할 때 한 번에 끝내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부르고 싶겠지만, 그건 오히려 회의의 능률을 떨어뜨리는 일이야. 초대할 사람이 많아질수록 회의시간을 조율하기 힘들어. 회의시간과 회의실을 잡는데 들어가는 노력이 상당한데, 그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거지. 또한 많은 사람이 들어오면 회의시간이 길어져. 지루한 회의가 낳는 부작용은 그 중 과반 이상이 침묵하거나 다른 일을 하게 된다는거야. 또 하나는 네가 회사의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시급이 만 원이라고 치면, 네가 열 명을 한 시간 동안 회의에 불러 모으면 넌 십 만원을 사용하고 있는거야. 모두 중요한 사람인데 누굴 빼야 하냐고? 또 그런다. 세상에 모두 중요한건 없다니까! 초대하고 싶은 사람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단순한 사실 관계를 듣고싶은 것이라면, 회의 전에 미리 물어봐. 이메일이든 전화든 찾아가서든 사실 관계만 물어보고 그 답은 네가 기억해. 사실 관계만을 위한 미팅 참석자를 제외하는게 네가 먼저 할 일이야. 또 회의의 내용을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회의가 끝난 후에 회의 내용을 공유해주면 돼. 그런 사람들까지 모두 불러모을 필요는 없어. 그럼 어떤 사람을 초대해야 하는지 알려줄께. 네가 진행할 회의에서 결정이 필요한 안건이 있다면, 결정권자를 초대해. 그 외에는 네가 진행할 안건에 대해 지속적으로 수행할 담당자만 초대해. 이렇게만 해도 회의 참가자는 훨씬 정제된 상태일꺼야.

네가 회의 참여자일 경우에도 주의할 점이 있어. 너는 회사에서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어. 그래서 너의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업무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그래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초대 받지 않은 회의에 초대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 욕심을 버리고 불안함도 버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환영받지 못해. 예전에 처음 본 사람이 회의에 있길래 누군지 모르고 진행을 하고 있었는데, 30분이 넘어서 잘못 들어온걸 알고 나가더라. 네가 회의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아니니까 릴랙스 하고 너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

회의 참석자를 결정했다면, 네가 회의를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결정해. 복잡한 사안을 논의하고 싶은지, 이미 제시된 정보로 결정을 내리고 싶은지 먼저 결정해. 전자의 경우를 너희들은 꽤 좋아하더라. 하지만 회의가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모호한 회의를 만들지는 마. 복잡한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네 스스로 사안의 배경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회의 시작시 빠르고 간결하게 참석자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해. 짧은 시간 내에 배경을 설명한 후에 결과물을 좀 더 구체화 해서 참석자들에게 알려줘야 해. 

예를 들면, 이런거야.

새로운 배송 시스템을 현재의 주문 시스템에 적용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배경) 이 미팅을 통해서 새로운 배송 시스템이 현재 시스템과 충돌이 일어나는지 파악하고, 충돌이 생긴 경우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기대 결과).

이런 내용들이 네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다면, 회의 시작 전에 참석자들에게 미리 메일을 보내. 회의의 안건(Agenda), 회의시간(Time), 회의장소(Place), 기대하는 회의의 결과물(Deliverable)을 적어서 보내야 돼.

이런 준비 작업을 통해 넌 회의의 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으며, 좀 더 알찬 회의를 할 수 있을꺼야. 넌 적절한 참석자만을 초대했고, 적절한 정보의 제공으로 참석자들은 회의에 대해 잘 이해를 한 채로 참석하게 되었어.

그럼 회의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말해줄께. 아무리 복잡한 사안이라도 회의시간을 한시간 반 이상은 넘기지마. 세상에 복잡한 사안이란건 없어. 사안은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논의 과정이 복잡해질 소지가 있는거야. 한시간 반이 넘어가도 정리되지 않을 문제라면 애초에 회의를 잡을 것이 아니라, 각 이해관계자들이 사안에 대해 좀 더 고민이 필요한 상황인거야. 그것도 아니라면 브레인스토밍만을 위한 반나절 또는 종일의 워크샵이 필요한 상황이겠지. 타임박스는 언제나 중요해. 넌 참석자의 시간을 빌린거야. 네 마음대로 회의 시간을 늘이지마. 내가 볼 때 넌 다음 회의가 있어야 회의를 끝내더라? 반드시 약속된 시간에 회의를 끝내도록 해. 네가 약속한 시간만큼만 빌린다는 것을 보여주는건 참석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길이야. 종료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참석자의 발언 시간을 조절해야 해. 지나치게 길게 발언하는 참석자가 있다면 자제 시키고, 참석자 모두에게 발언기회가 돌아가도록 조율해야 해. 아, 그리고 더 중요한거. 회의는 항상 발산을 한 후에, 수렴을 해야 해. 회의에서 발산이 없다면, 여러 명의 머리를 같이 모으는 의미가 사라져. 발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우리는 좀 더 나은 생각을 찾을 수 있어. 대부분 사람들은 회의에서 발산을 하는데 익숙하지. 그런데 수렴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아. 네가 회의시간의 50%, 또는 최대 70%를 발산하는데 사용했다면, 나머지 시간은 수렴하는데 사용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뜬구름 없는 의견 교환만 하다 회의가 끝나거나, 회의종료시간을 넘긴 채로 늘어지는 일이 생기겠지. 둘 다 좋지 않아. 적정 시간이 되면, 지금까지 나온 의견을 정리하고, 처음 의도했던 회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해.

눈 앞에 시한폭탄이 있어도 그렇게 회의를 질질 끌 수 있을까?

네가 제대로 수렴을 했다면 넌 세가지를 가지게 될꺼야. 첫째는 해야할 일(Action item)이고, 둘째는 담당자(Person in Charge)고, 마지막은 마감일(Due date)이야. 회의가 정상적으로 종료되었다면, 그 회의 후에 진행해야 할 업무가 나올테고, 그 업무를 누가 언제까지 처리하겠다는 명확한 결과가 있어야 해. 이 세가지를 정확하게 정리함으로써 너는 추가회의(Follow-up meeting)의 빈도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을꺼야.

내가 말한대로 회의를 종료했다면, 이제 회의를 정리할 일이 남았어. 회의가 끝나고 나면, 당일이나 늦어도 다음 날에는 미팅노트를 써. 미팅노트는 참석자들이 회의 내용에 대해 잊어버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상기 시켜주는 효과가 있어. 또한 회의에서 논의되어 결정된 사항에 대해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하는 참석자를 대비해 증거자료가 되기도 하지. 마지막으로 회의 이후 진행해야 할 업무에 대해 다시 확인할 수도 있지.

물론 공중파를 통해 전국민에게 한 말도 바꾸는 경우도 가끔 있다

네가 회의에 들어갔다 오면서 굉장히 뿌듯해한다는걸 알아. 하지만 회의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돼. 적절하게 관리하기만 하면, 넌 더이상 하루종일 회의를 하느라 일 할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회의 때문에 일을 못해 밤 늦게 야근하는 일도 사라지겠지. 회의에 대한 너의 애정을 조금만 더 생각하는데 썼으면 좋겠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