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포인트는 명확했다.

기본적으로 발언자의 ‘선의’를 믿을 것

악의 평범성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의를 가지고 행동한다. 나쁜 결과가 도출되는 경우라도 애초에 나쁜 마음을 먹고 시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현 시국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태극기 부대’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서석구라는 사람도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돈을 받고 활동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일부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그 신념은 ‘빨갱이’에게서 나라를 구해내겠다는 우국충정이다. 그 신념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잘못된 것인지 차치하면, 그들의 신념은 진실하다. 나라를 사랑하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MB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나는 대통령이 되면, 온갖 나쁜 짓을 해서 내 재산을 부정축재하고 최고의 부자가 될꺼야…’라는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잘못된 방법으로 4대강 사업이니 언론장악이니 온갖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내었지만, 그의 시작은 선의와 사명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악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자체는 오만이다. 비정상적인 결과로 의도가 비정상적일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개연성이 전혀 없다.

파충류의 뇌

상대의 말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대화와 타협의 시작점이다. 이전에 내가 썼던 ‘역지사지’에 대한 글이 있다. 상대의 ‘선의’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상대는 마음을 닫는다. 마음이 닫힌 상대에게는 어떤 미사여구도 통하지 않는다. ‘파충류의 뇌’를 사용하는 상대와 합리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대화와 타협’을 전제로 한다면, 상대의 의도를 인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의도보다는 결과

‘선의’를 인정하더라도 결과에 따른 대응은 가능하다. 선의를 인정하다는 것이 상대를 완전무결한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번 안희정의 발언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MB와 박근혜의 예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들이 선의로 했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과 대화와 타협을 하는 것에서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들이 저지른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하며,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안희정은 법적 처벌에 대해 관용을 베푼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극단적인 사람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안에 대해 극단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것이 자신의 강한 신념에 반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민주당 내 대선 주자들의 포지션을 보면, 이재명은 징벌적 원칙주의자이고, 문재인은 온건한 원칙주의자다. 그런데 안희정은 원칙적 원론주의자다. 민주주의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원론적인 판단을 하는 안희정이 사람들의 분노와 적개심에 공감할 수는 있지만 편승할리는 없다. 당신들의 감정에 올라타지 않는 안희정이 답답한 것은 알겠으나, 안희정은 원래 그런 고고한 사람이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일반화 한다. 다른 모든 사항이 달라도 일반화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것은 쥐와 코끼리를 보고는 둘 다 눈, 코, 입이 있으니 같은 동물이라 주장하는 꼴이다. 당 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사람들은 ‘친문’과 ‘친박’을 동일하다 말한다. (‘친문패권 좋아하네’)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박근혜와 안희정을 동일시 한다. 박근혜의 비문은 그의 생각없음과 천박함에서 나온 것이지만, 안희정의 모호한 말은 깊은 사고와 개념의 본질적인 복잡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 역시 안희정이 지금 시국에 대통령으로 적합한가 하는 점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시국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수는 저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줄 알았다는 것이다’라는 이재명의 말이 훨씬 적합할 수도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안희정의 ‘대통령 적합성’에 대해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원론적으로 옳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당신이 이해할 수 없다 해서 그가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