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느끼는 두렵거나 불편한 감정이 명확한 대상이 있는 경우 공포가 될 것이고, 대상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불안이 될 것이다. 공포는 실재하며 이미 다가왔다는 점에서 심각하지만, 실체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보다 나을 수도 있다. 불안은 명확한 대상이나 이유도 없이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조금 더 찜찜한 느낌을 준다. 흔히 공포영화에서는 공포의 감정을 이용하고(공포영화이니 공포를 이용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가), 범죄나 스릴러물에서는 불안의 감정을 소재로 삼는다. 불안한 사건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행운과 유사하다. 그러나 결과의 극명한 차이에 의해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 ‘불현듯’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행운을 수식할 때는 ‘뜻밖의’라는 단어를 쓴다.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막연하게 불편함을 느낀다. 귀납의 한계로 종종 설명되는 칠면조의 일화가 있다.

칠면조를 기르는 주인은 몇 달 간 칠면조의 이름을 부르고 먹이를 주었다. 칠면조는 주인의 소리가 익숙했고, 그 소리가 들리면 먹이를 먹을 수 있는 상황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추수감사절 전 주인은 평소와 다름없이 칠면조의 이름을 불렀고, 칠면조는 먹이를 먹으러 나갔지만 칠면조 구이가 되고 말았다.

‘폭력의 역사’라는 영화에서 인간에게 내재된 불안감을 잘 묘사하고 있다. 잘 살고 있는 주인공의 삶에 어느 날 누군가가 찾아오고 주인공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사건들이 생긴다. ‘퍼니게임’이라는 영화에서도 ‘불현듯’ 찾아오는 초현실적인 존재가 주인공의 삶을 망가뜨린다. 행복한 오늘이 행복한 내일을 반드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안의 원천일 것이다.

나는 1999년경 의경생활을 하던 중에 첫 번째 사랑니를 뽑았다. 나는 어렸고 무지했다. 발치 후에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고통이 크지 않아, 나는 파출소로 복귀하기 보다는 친구를 불러 당구를 쳤다. 게임이 무르익어 갈 때쯤 통증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파출소로 복귀를 했는데, 그 후 며칠 간 지옥을 맛보게 되었다. 죽을 먹을수도 없었으며, 제 시간에 항생제와 진통제를 챙겨 먹지도 못했다. 볼이 퉁퉁 불어 나는 병가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제대 후에 2001년쯤 뽑았던 두번째 사랑니는 나에게 기절하는 경험을 선사했다. 첫번째 사랑니로 엄청나게 고생을 했던 트라우마가 있었던 터라 대학병원에서 긴장이 극도로 달했었다. 그런데 간호사가 사인을 하라며 내밀었던 종이에는 마취주사에 대한 동의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마약성분 어쩌고 저쩌고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극심한 고통이 있을 때 마약성분이 들어간 진통제를 사용한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던터라 나는 혼란상태에 빠졌다.

아니… 얼마나 아픈 작업을 하길래 마약 성분의 진통제를 쓴다는거지…

발치가 끝나고 계산을 하기 위해 수납 창구에 서있던 나는 저혈압으로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나는 링거를 맞으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걱정이 심했던 탓에 철저하게 얼음 찜질을 하고, 약을 제 때 챙겨 먹어서 별 문제가 없이 발치부위가 회복이 되었다.

세번째 사랑니는 언제, 어디서 뽑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별 문제없이 잘 넘어갔었나 보다.

엑스레이를 통해 나는 사랑니 4개가 풀세트로 장착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고, 그 놈들은 모두 편안하게 누워있는 매복사랑니였다. 사랑니 3개를 뽑은 후 나는 언제나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2015년 잇몸이 욱씬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치과로 가서 잇몸이 아픈데 사랑니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내가 욱씬거리는 느낌이 들었던 쪽 잇몸에는 사랑니가 없었다. 일시적으로 피곤해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나의 마지막 사랑니는 오른쪽 위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에버노트에 적어 두었다.

에버노트의 효용

사랑니를 뽑지 않게 된 상황에서 안도감이 들면서도, 또 다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청객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얼마 전, 드디어 오른쪽 위의 잇몸이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니 발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불청객과의 길었던 전쟁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이 밀려왔다. 대학병원으로 가서 30분 정도 걸려서 마지막 사랑니를 제거했다. 두번째, 세번째 사랑니를 뽑을 때 그리 힘들지 않았던 기억이, 첫번째 사랑니의 트라우마를 조금은 없애 준 상태였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마취가 깨기를 기다리며, 진통제를 먹고 얼음을 볼에 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예상 밖의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잇몸과 나의 턱근육을 누군가 드라이버로 조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이미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나는 얼음을 볼에 대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극심한 고통은 저절로 나를 명상하도록 만들었다. 고통이 지속되자 나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듯한 느낌을 느끼며, 그 고통을 나로부터 분리해 객관화 하고 있었다. ‘으악! 아파 죽겠어!’가 아닌, ‘아… 지금 아프구나…’의 상태로 변해간 것이다. 고통이 객관화 되자 그 후에는 삶의 의지가 따라왔다. 이 고통을 끝내고 나면, 나는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일주일 넘게 운동을 안한 것이 다반사이면서, 내가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 ‘사랑니 발치 후에는 일주일 간 무리한 운동을 하지 말라’는 지시 때문 것인양 위안이 되었다. 고통만 사라진다면, 난 착하게 살 것이며 운동도 열심히 할 것이라는 다짐을 수도 없이 했다. 행복의 상대성과 가속성을 또다시 느끼며, 나는 고통 속에서 고통의 효용과 그 후의 희망을 보았다.

네 개의 사랑니를 모두 뽑은 지금, 불청객이 사라져 나는 몹시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