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은 ‘역지사지’라는 개념이다. 이 말은 소극적인 의미로는 상대방을 조금 더 이해하고 배려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상대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알아준다는 말이다.

‘지음’은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이다. 이 고사에서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가 그 소리를 듣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종자기가 죽고 나서는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는데, 세상에 다시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였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의 진심이나 신념이 타인에 의해 오해받거나 왜곡당할 때 좌절감을 느낀다. 반면 누군가가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 때 그 사람에게 한없는 호감을 느끼게 된다. 옛말에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 그렇다면 리더십은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적극적인 의미로서의 ‘역지사지’는, 상대를 파악하고 이해하며 인정하여, 결국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역지사지’를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로, INTJ인 나는 MBTI를 높게 평가한다. 각 상반된 성향 네 가지가 조합되어 총 16가지의 분류가 나온다. 이를 통해 극단적인 이분법이 아닌, 각 성향의 조합을 통해 꽤나 세밀하게 사람의 성향을 분류할 수 있다. INTJ는 MBTI를 훌륭한 분류 도구로 볼 것이나, INTP는 MBTI를 ‘변화하는 인간을 틀에 고정하려는 무모한 시도’, 또는 ‘본질적으로 분류는 차별과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식으로 폄하할 것이다. ENFP는 ‘아…MBTI라는게 있어요?’라는 질문을 하고는 다음날 MBTI에 대해 잊어버릴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MBTI를 부정하는 성향마저도 MBTI의 틀 안에서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내가 인간의 상대성과 상황의 설명에 MBTI를 종종 사용하는 이유는, MBTI가 복잡한 인간 행동을 조금 더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프레임워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INTJ인 나는 형식적인 권위를 하찮게 여기고, 내 주관이 뚜렷하며 감정적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상견례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직장 동료인 ESFJ는 나에게 말했다. ‘상견례 자리는 내가 겪은 자리 중 가장 불편한 자리였어. 나는 음식을 하나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니까’. 그 말을 들은 나는 딱히 그럴 것 같지 않다고 얘기를 했지만 ESFJ는 한 번 그 자리에 가보면 알 수 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에게 상견례 자리는 나름 즐거웠다. 상견례 자리의 어색함은 수많은 소개팅과 맞선을 통해 단련된 나에게는 참을만한 정도였다. 상견례 자리는, 아무런 부담없이 나를 어색한 맞선자리에 내몰았던 우리 아버지에게 그 어색함을 경험하게 해드릴 좋은 기회였다. 나는 아버지가 말씀을 하시는 동안에 음식을 몇접시나 먹었다. ESFJ가 겪었던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자리’는 INTJ에게 소화불량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또 다른 예로는 나는 주식을 하고 있다. 셀프펀드라는 방식으로 매달 세 개의 종목을 매수하고, 일 년이 지나면 기계적으로 매도한다. 저평가 우량주를 분산투자 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방식이다. 이 방식을 통해 첫 해의 펀드는 약 10% 이상의 수익율을 기록중이다. 나는 누구나 이 방식대로 투자를 할 수 있다면, 안정적인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위에 같이 셀프펀드를 시작한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이 투자원칙을 지키는 것을 보지 못했다. ESFJ 한 명은 떨어지는 종목을 보며 싸게 사겠다며, 그 종목을 추가 매수했다. ENFP는 지금이 싼 적기인 것 같다며 한 달에 여섯 종목을 사들였다. 그리고 다음달 이후로 영원히 매수를 하지 않았다. 36개로 종목을 분산시키고, 매달 매수/매도함으로써 시기적으로 분산하며, 저평가주가 제 가치를 찾을 때까지 일 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린다는 단순한 원칙과, 여기에서 나오는 효용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행위는 너무나도 비합리적이다. 나는 누구나 셀프펀드 방식으로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내 기준에서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몇 가지의 판단기준으로 나는 상대의 MBTI 유형을 판단한다. 일단 상대의 유형이 판단되고 나면, 상대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그들의 말과 행동 자체를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왜 상대가 그렇게 하는지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만 이해가 되어도 굉장한 성과다.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모를 때 우리는 상대에게 적대심을 가지게 된다. 또한 상대가 부모님이나 직장 상사 같이 나에게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관계라면 무력감까지 느끼게 될 것이다. MBTI를 통한 상대의 이해로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다. 상사가 폰트크기와 스테이플러를 찍는 방향까지 태클을 건다면 그가 ISTJ임을 이해하고 어여삐 여기면 된다. 상사가 말도 안되는 목표치를 설정하고 궤변을 늘어놓는다면 ENTJ의 현실왜곡장을 봤다고 생각하면 된다. 매일 같이 회의에 불려 다니다가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다음날 다크서클이 내려온 사람은 ESFJ일 확률이 높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거울로 삼아 상대를 판단한다. 감성적인 사람은 철저히 이성적인 동료를 보며, 같이 밥을 안 먹어줘서 기분이 상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이성적인 사람은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런 방식의 생각은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투영하는 것이다. 이런 ‘공감’이 인간사회를 지속시킨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지만, 다른 성향의 인간을 대하는 방법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내 감정의 투영이 아닌, 객관적으로 상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계속해서 한다면,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게 될 많은 사람 사이의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