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서편에 있는 올림픽 국립공원에는 온대 우림이 있다. 뱀파이어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의 숲 속에는 음지 식물들이 가득하고,

나무 가지에는 이끼들이 잔뜩 끼어있다. 국립공원 측의 설명에 따르면, 온대 우림 속의 공기는 너무나 영양분이 풍부해서, 몇몇 식물들은 빗물과 공기 중 포함 된 영양분 만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도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온대 우림이라고 하니 뭔가 임팩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들리기로 했다. 이름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호 or 불호 중 Hoh~ 호~!! 올릭픽 국립 공원에서 대충 초입 정도에 있는 Sequim에 숙소를 잡아서, Hoh 온대 우림까지는 2시간이 좀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

사진을 찍기 위해서 한낮의 빛은 언제나 환영받지 못하므로, 나는 새벽 빛을 잡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럼 목적지에 6시 정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숙소에서 새벽 4시에 출발을 해야만 했다.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으러 왔으면 이정도 고생은 해야지. 컴컴한 상황에서 운전을 하는데,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마주오던 차는 10대 이하였던 것 같다. 가는 길에 Crescent호가 있는데 어두워서 딱히 보이지는 않았고, 귀신이 나오지 않을까 마음의 대비를 하며 운전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모바일 신호가 사라져 한국에 있던 뷰엉이와 통화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꽤 오랜시간을 달려 좁은 길로 들어섰을 때 오른편으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새벽의 빛과 특이한 모양의 나무들이 시선을 끌었다.

새벽의 Hoh river

 

나름 오묘한 경치는 좋았으나,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흑백 사진을 건질만한 장소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상 적인 흑백사진을 건지려면 명확한 라인을 잡아낼 수 있어야 하고, 흑백의 대비를 만들어 내는 피사체가 풍부해야 한다. 그런데 이곳은 빛 자체가 충분히 들어오지 않는 숲이라 빛의 그라데이션을 만들어 내기 쉽지 않아 보였고, 이끼 낀 나무와 어두운 나뭇가지가 모두 어두운 톤이라 흑백의 대비를 만들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좀 더 운전을 해서 들어가자 Hoh rain forest visitor center가 나왔다. 7시 쯤 도착을 한 탓에 아직 센터가 문을 열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 홀로 산 속으로 들어가는데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이 곳 역시 전화나 인터넷이 아예 터지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건 사진에 대한 열정과, 이른 시각에 출발 했으니 꽤 오래 해가 떠있을 것이란 사실이었다. 차선으로 나의 위치를 기록해 줄 GPS tracker를 켜고 오솔길로 들어섰다.

이 곳에는 세 가지 트레일이 있는데, 하나는 휠체어를 밀고 갈 수도 있는 아주 짧은 코스, 다른 하나는 돌아서 오는데 3~40분 정도 걸리는 코스, 나머지 하나가 내가 택했던 Hoh river trail인데 편도만 해도 30km 정도 되는 먼 코스였다. 군대 행군도 아니고 당연히 나는 완주할 생각은 없었고, 적당히 가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다.

총 6km 정도 걸은듯…

본격적으로 산 속으로 들어갔을 때, 뱀파이어 등에 대한 두려움 보다 내가 길을 잃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럴줄 알~~~~고~~~~~ 가방에 두꺼운 옷도 하나 넣어왔지만, 길을 안 잃는게 더 낫겠지…ㅋㅋ 구글에서 여기 사진을 보고 기대를 하고 왔으나… 이건 뭐 그냥 고사리 많은 숲이었다. 뭔가 요정이 나올 것 같은 환상적인 모습을 기대했는데, 빛이 들어오지 않는 아침의 숲은 우중충한 모습 그 자체였다.

이 사진 보고 속아서 다른 사람들도 가보면 좋겠다…;

산 속을 따라 가다가 강 쪽으로 나갔더니 길이 좀 흐리멍텅하게 되어 불안감이 더 커졌다. 강에서 다시 주 트레일로 들어오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저 나무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걸까…

계속해서 걷다 보니 비슷비슷한 우중충한 풍경만 계속 나왔고, 아무리 지구가 둥글어도 이 숲 속에서 온 세상 어린이들을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 숲 속에서 찍을만큼 찍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왔던 길로 되돌아 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확실히 오솔길 표시가 나는 쪽으로 왔음은 물론이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이 숲 속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이 장소에서는 먼 과거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어디서 씨가 날아와 이 나무들은 여기에 자리잡았고 이토록 키가 큰걸까. 키가 엄청나게 큰 나무들 가지에 지저분한 이끼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걸 보고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강수가 많은 기후에 키 큰 나무들은 꼭대기로부터 따뜻한 햇빛을 충분히 받고 키가 이렇게도 자랐다. 그 꼭대기에서 양분을 아래쪽까지 충분히 내려주었을까. 과연 낙수효과라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면서, 키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로 막아 버린 숲 속에는 지저분한 이끼와 고사리 만이 자라고 있었다. 낙수효과는 허구이며, 우중충한 생활을 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Hoh rain forest에서 느꼈다. 우림 속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니, 내가 좌빨인건가…

끊임없이 이런 장면들이 나오니 그만 걸어도 될 듯??!!

어쨌든 글은 마무리 해야 하니, Hoh rain forest를 추천하면서 훈훈하게 끝내야겠다.

이런 분들께 적극 추천합니다.

  • 신비로운 온대 우림을 느끼고 싶으신 분
  • 서늘한 날씨 속에 오솔길을 따라 숲속 산책을 하고 싶으신 분

이런 분들께는 비추입니다.

  • 흑백사진을 찍을 장소를 찾으시는 분
  • 뱀파이어에 대한 두려움이 과도하신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