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연대기를 그린 책들이 있다. 개인의 연대기를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연대기를 보는 것은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사피엔스’는 인류가 탄생한 순간부터 그 긴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현재, 그리고 종말까지 이야기 하는 책이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종을 말한다. 책은 시작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호모 사피엔스 종은 진화의 최종단계가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에렉투스 등의 종과 같은 시대를 살아갔을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가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지금의 인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류가 수렵, 채집 생활을 하다가 농업혁명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는 사실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농업혁명은 결코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향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고 한다. 인간이 밀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노동시간의 대부분을 밀을 돌보는 것에 사용했다. 덕분에 밀은 지상 최대의 식물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인류 역시 성공한 종이 되었다. 밀을 재배하며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종의 입장에서 보면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종의 성공 척도가 된다. 그러나 종의 성공과 개별 개체의 성공은 별개라는 것이다. 밀은 인간을 유혹해 농경생활을 시작하게 만들었고, 급격히 늘어난 인구 때문에 인간은 다시 수렵, 채집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가축이 된 소는 개체수가 급격하게 늘어나 성공한 종이 되었지만,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고기가 되는 운명인 소 개개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결코 과거에 비해 행복해진 상황은 아닐 것이다.

다음으로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은 ‘관념화’이다. 예전에 이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축구라는 놀이는 한낱 공놀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각 국의 축구리그는 전세계 수많은 팬들이 지켜본다. 팬들의 관심은 무형이었으나, 그 관심이 모이는 곳에 돈이 모이고, 축구라는 스포츠는 세계 최대의 규모로 돈을 벌어 들이고 있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마음을 모아 종교는 거대한 단체를 만들어 냈다. 요는 허상과도 같았던 것이 여러 사람들의 지속적 믿음으로 인해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나의 이런 생각들을 좀 더 명쾌하게 정리해 준다. 150여 명 정도가 모여서 통제받는 것이 가장 큰 규모였던 인류가 어떻게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대답으로 상상력을 뽑는다.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들과 가장 달랐던 점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상상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현대의 기업까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주식회사라는 개념은 실체가 없다. CEO가 사라지면 새로운 CEO를 뽑으면 될테고, 종업원들이 해고 되면, 새로운 사람을 뽑으면 된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라는 개념 역시 상상의 산물이다. 이 상상은 시대별, 장소별, 상황별로 모두 달라지지만 핵심은 모두 같다.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는 이야기로 모두를 결집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자의 발견 또한 관념화를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었던 요소이다. 문자는 인간 기억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해주었고, 숫자의 발견은 세상의 복잡한 현상을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태초의 인간은 마인드맵을 그리는 것처럼 무수한 생각을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종이었다. 그러나 관념화가 진행됨에 따라 세상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고 정돈된 인간을 요구한다. 많은 것들을 분류하고 구분하며, 추상화 시키고 관념화 시키는 능력은 인간이 더 먼 곳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정리정돈을 못하는 사람은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사람이다. 너무 슬퍼하지 말자.)

이 정도 소개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볼만한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나 싶다. 나 역시 남아있는 뒷내용을 마저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