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유서의 그림자

우리나라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말을 놓고, 나이가 적은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말을 높인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원래부터 그래왔기 때문에’라는 것은 가장 바보스러운 이유이므로 제외하면, 유교사상 중 특히 장유유서의 영향을 받아 존대와 하대의 문화가 생겼을 것이다.

장유유서 —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는 사회적인 순서와 질서가 있음

장유유서에서는 어른과 어린아이의 관계에 대한 정의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두 주체는 ‘성숙한’ 어른과 ‘미성숙한’ 어린아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지식과 경험이 많은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가치있는 것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다. 사회적인 순서와 질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런 가르침이 진행될 때 가르침을 주는 쪽의 우위가 확보되면, 가르침의 효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매사에 가르침에 대해 반발한다면, 가르침의 효과는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장유유서라는 개념을 통해 어른에게 주어진 명시적 주도권은 학습비용을 최소화 시키는데 일조했다. 이런 점에서 어른과 어른 사이나 어린아이끼리 장유유서를 적용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 내 나이가 많으니 개기지 마라… ]

반말 문화

오래 전 기억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쯤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 때 중학생 몇 명이 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당연히 반말로 대답을 했는데, 그들은 내가 반말을 하는 것에 대해 윽박지르며 겁을 주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말을 놓는 초등학교 제국과 한 살이라도 차이가 나면 말을 높여야 하는 중학교 제국 사이에 문화적 충돌이 발생한 순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알지 못하는 그들이 왜 나에게 다가와 높임말을 강요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도 2학년 선배에게 높임말을 쓰고 있었다. 그것은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하고 무거운 압박이었다.

반말문화는 한국사회의 왜곡된 장유유서 개념을 더욱 강화시키는 주범이다. 사회에서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나 점차 친해지면서, 나이 많은 사람은 말을 놓고, 나이가 적은 사람이 말을 높인다. 이 사회적인 질서 속으로 들어가며 두 사람이 느끼는 안도감은 대단하다. 관계의 정립을 통해 수많은 충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은 형이 사주는거고, 동생은 형의 의견에 웬만하면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반말문화가 비판받아 마땅한 이유는 존대와 하대를 하는 기준자체가 너무나 멍청하기 때문이고, 심지어 일관성도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지 못한다. 10살이 많은 사람도 살아온 인생과 가치관에 따라 10살 어린 사람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애초에 명확한 이유나 기준이 없으니 존대와 하대를 결정하는 요소도 명확하지 않다. 이런 불명확한 존대/하대의 기준은 수많은 ‘꼬인 족보’ 문제를 야기한다.

  • 1980년 3월31일생 A는 1980년 2월28일생 B에게 말을 높여야 한다.
  • 빠른생일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던 시절, 같은 년도에 태어난 사람끼리 존대와 하대가 발생한다. 이 두 사람이 태어난 시점의 차이는 단 하루이다.
  • 1990년 3월31일생 A는 1990년 2월28일생 B에게 말을 높이지 않는다.
  • 빠른 생일이 사라지면서, 이 둘은 같은 학년이 되어 서로 말을 높이거나 낮추지 않는다. 역시 두 사람의 태어난 시점 차이는 단 하루이다.
  • 1980년 12월생 A는 1980년 3월생 B에게 말을 높이지 않는다.
  • 이 둘이 생일 차이는 9개월이나 되지만, 이 둘은 서로 존대/하대 하지 않는다. 하루만의 차이로 존대/하대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볼 때 9개월의 차이가 서로 말을 놓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 같은 중학교 선후배 사이인 1980년 3월생 A는 1980년 2월생 B에게 말을 높인다. 반면 사회에서 만난 1980년 8월생인 C는 B에게 말을 높이지 않는다. A, B, C가 한 자리에 모이면 A와 C는 서로 말을 놓고, A는 B에게 말을 높이고, C는 B에게 말을 놓는 기이한멍청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탈 장유유서의 시대로

어릴 때 형에게 무조건 따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은 학교에서, 또는 사회에서도 윗사람을 무조건 따를 것을 강요 받는다. 상사는 ‘어른’이고 부하직원은 ‘어린아이’ 취급을 받으며 수동적으로 변한다. 수동성은 모든 문제를 야기한다. 수동적인 사람은 자율성과 자발성이 떨어진다. 윗사람이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된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그대로 따를 것을 강요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은 윗사람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 질문이 억압받는 사회는 지배구조를 공고히 유지하는 것에는 가장 효율적인 사회지만, 내부에 갈등이 응축되는 사회이기도 하다. 인간은 납득되지 않는 일에 대해 참지 못하는데, 그 해답은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

말은 권력을 낳는다. 말을 놓는자는 상대를 자신보다 낮추어 보게 되고, 말을 높이는 자는 상대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직장에서는 나이가 많든 적든, 직급이 높든 낮든 무조건 상호존중이 원칙이다. 친하다고 반말을 내뱉는 ‘사람좋은’ 상사는 본질적으로 존경받을만한 사람은 아니다. 반말이 일상화 된 사회는 수직적인 사회이며, 작은 갈등을 막는 대신 갈등을 누적시켜 더욱 큰 사회적 비용을 만들어 낸다. 누적된 갈등은 아랫사람들이 화병이 나는 것일수도 있고, 수평적인 문화를 형성하지 못하는데에서 오는 조직의 경직화일 수도 있다. 전자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고, 후자는 미래를 만들어갈 창의성을 끌어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처음 본 사람이 한 살이 적다고 반말을 찍 내뱉는 양아치들이 사라지는 한국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