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곳곳에서 친문패권이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친문’은 무엇이며, ‘패권’은 무엇인가.

‘친문’이라는 단어는 문재인의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친문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먼저 ‘친노’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때, 모든 실패에 대해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자동응답기 같은 답변이 나오면서,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 저 말도 안되는 답변이 세뇌가 되어 버렸다. 노무현의 실책은 단 하나, 이명박이 정권을 잡게 했다는 것 뿐이다. 말도 안되는 노무현 비판의 프레임 속에서 어느 순간 ‘친노’는 죄인처럼 되어버렸다. 정의가 통하고, 불필요한 권위를 탈피하여,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노무현의 유산이 왜 악으로 치부되어야 하는건가. 그럼에도 ‘친노’는 드러나면 큰일이 나는 주홍글씨 같은 것이 되었다. ‘친문’이 등장한 것은 ‘친노’를 비난할 수 있는 유효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하는 적자인 문재인이기 때문에 아무 의미없는 비난의 프레임은 ‘친노’에서 ‘친문’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그렇다면 패권이란 무엇인지 사전적인 정의를 보자. (출처-네이버 사전)

패권(覇權)

  1. 어떤 분야에서 우두머리나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여 누리는 공인된 권리와 힘.
  2. 국제 정치에서, 어떤 국가가 경제력이나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압박하여 자기의 세력을 넓히려는 권력.

정당은 신념, 이념, 정책 등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정치적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단체이고, 이들의 목표는 정권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패권의 정의 중 1번에 따르면, 정권을 잡은 정당은 여당으로서의 공인된 권리와 힘을 가진다. 이를 정당 내부로 축소해 보면 당의 대표 또는, 대선 후보가 역시 패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당의 중심이 잡히고, 목표를 향해 강력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패권’을 가지는 것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패권, 즉 당의 장악력은 목표 달성을 위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왜 ‘친문패권’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비난을 받는걸까? 그것은 바로 ‘친문패권’을 주장하는 자들이, 문재인이 가지고 있는 힘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이 당 내에서 힘을 얻은 과정이나, 얻은 힘을 행사하는 방식이 공정하지 않았나? 문재인은 국민의 당이 떨어져 나가기 전에 안철수가 주장하는 혁신전대까지 수용하였으나, 안철수는 ‘고맙게도’ 구태 정치인 무리를 이끌고 국민의 당으로 나가주었다. 문재인은 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당대표 사퇴 후 문재인의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갔다. 지지율은 국민이 문재인에게 보내는 힘이다. 국민이 실어준 지지율로 패권을 가지게 된 것이 불공정한 힘의 획득은 아니다. 그렇다면 문재인이 자신이 가진 힘으로 부정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내에서 저질렀나? 현재 국회의원도 아니고 당대표가 아닌 문재인이 휘두른 힘은 없었다. 지지율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친문’은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한 ‘친노’의 같은 이름일 뿐이다.

‘친문패권’이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친문패권’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한 방식의 당 장악력이라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문재인의 경쟁자들은 끊임없이 ‘친문패권’을 주장하며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요즘 나는 수동적인 TV 시청에 싫증을 느껴 TV 조선과 채널A를 종종 보고 있다. 금이 여기저기 널린 노다지를 캐는 마음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어이없는 프레임 설정을 비판하며 시청하면 재미가 있다. 얼마 전 남경필이 출연한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를 보았다. 자신이 게스트로 나가는 토론에서는 사자후를 뿜으며, 진행자의 제지조차 무시하는 전원책은,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에서는 누구보다 온화하고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게스트를 바라보며 진행을 하고 있었다. 전원책은 남경필에게 ‘친박은 OO이고, 친문은 OO이다’라는 문장의 빈 칸을 채워넣기를 요청했다. 친박과 친문을 대등하게 놓는 그 프레임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내 주도 세력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그 어떤 유사점도 없는 두 부류를 대등한 구문으로 배치해, 보는 사람들에게 친박과 친문은 똑같은 나쁜 놈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그에 대한 남경필의 답은 더 걸작이었다. 남경필은 ‘친박은 초록이고, 친문은 동색이다’라는 답을 내놓았다. 남경필은 유약해 보이는 이미지이지만, 젊은 느낌과 중도적인 성향으로 좀 더 자신의 존재를 어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가 인터뷰 과정에서 제시한 중소기업을 위한 프레임워크나, 최종적인 모병제 모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듣고 있었다. 그러나 친박과 친문을 동일하게 보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으로 인해 적어도 내 시선에서는 남경필은 없는 정치인이 되었다.

정책 대결이 아닌 비합리적인 이념의 대립, 이념의 대립보다 더 조잡한 비난의 프레임 설정은 공격을 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격을 하는 당사자의 저열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