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결혼을 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2015년 당시 37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했거니와 만났던 여자들과의 끝은 항상 같은 패턴이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논리적인 나는 여자들의 감정적인 면을 받아낼 수가 없었다. 나의 이상은 높았고, 관용도는 낮았다. 자기관리를 못하는 여자, 내 유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날카롭게 반응하는 여자, 복잡하고 심오한 주제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여자, 지나치게 감정적인 여자 등등. 나는 도무지 이런 점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의 낮은 관용도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을 지적하게 되면 언쟁이 벌어졌는데, 나는 논리를 바탕으로 여자에게 말싸움을 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결과 나를 만나던 여자들은 ‘난 오빠를 감당 못할 것 같아’라는 말을 남기고 항상 날 떠났었다. 내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세상에는 나와 완벽하게 맞을 여자는 없을 것이기에 나는 결혼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와이프 뷰엉이를 만나게 되었을 때 첫 만남에서 나는 힐링을 받는 느낌을 받았다. (원래 와이프의 별명이 부엉이었는데, 아름다운 마음씨를 뜻하는 뷰티풀 부엉이를 줄여 뷰엉이라고 지어주었다.) 직장에서의 불필요한 야근에 대한 성토, 보여주기 식 업무에 대한 비판 등의 주제로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뷰엉이를 만나고 내가 겪은 경험은 실로 신비로운 것이었다. 뷰엉이는 원래 뷰엉이의 방식대로 행동을 했는데, 그것이 나에게 전혀 거슬리는 점이 없었고, 내가 하는 행동들도 뷰엉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행동들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뷰엉이는 평소에 내가 하는 90%의 실없는 농담들을 모두 소화해 내었고, 때때로 하는 10%의 진지한 주제에 대해서도 귀기울여 들어주었다. 우리는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만난지 한 달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만난지 2년, 결혼 후 일년 반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결혼 후에 발견한 뷰엉이의 모습들은 덜렁거리는 부분이 많았다. 자신의 행동 반경을 잘 파악하지 못해 팔을 휘두르다가 내 얼굴을 치기 일쑤고, 종종 엎드려 있는 나를 발로 밟는다. 스쿼시장에 갈 때 운동복을 챙겨주는데 윗옷을 빼고 바지만 두 개를 넣어주기도 하고, 양말을 짝이 안 맞게 넣어줘서 운동 내내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상황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뷰엉이를 무척 사랑하고, 같이 사는 생활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내가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적어볼 예정인데, 뷰엉이의 선행이 셀 수 없이 많아 좀 길어질듯 하다. 팔불출이란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좋다.

  • 결혼준비를 하며 피로가 누적되어 내가 날카로워진 때였다. 뷰엉이를 옆에 태우고 돌아오던 길에 내가 예민해져서 큰소리로 짜증을 낸 적이 있었다. 뷰엉이는 아무말 없이 그 짜증을 다 받아주고는, 집 근처에 왔을 때 정육점에 들리자고 해서 고기를 사서 구워주었다. 내가 체력이 떨어져서 짜증이 났기 때문에 고기를 먹여서 체력을 보충해 줄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사건 때문에 뷰엉이는 ‘뷰처님’이라는 추가 별명을 획득하게 되었다.
  • 이전에 쓰레기 같은 직장을 다니며 나는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있었다. 어느 날 이마트에 가서 무심코 레고를 가지고 놀고 싶다고 말했다. 뷰엉이는 심슨하우스를 사주었다. 그날 밤 새벽 2시까지 심슨하우스를 몇 시간 동안 조립했다. 뷰엉이는 집중해서 레고를 조립하면 복잡한 내 머리속이 좀 풀리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 1박 2일을 같이 보는데 제기차는 장면이 나왔다. 조금 있다가 밤 11시쯤 뜬금없이 제기가 차고 싶다 했더니, 뷰엉이는 이마트에 제기를 사러 같이 가자고 했다. 이마트에 그 날 마침 제기가 없어서 결국 사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다음날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뷰엉이는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가 문방구에서 제기를 사왔다. 내가 운동화를 신고 거실에서 제기차기를 하는 것도 허락해 주었다.
  • 초등학교 때 마루바닥 위에 앉아 공기놀이 하던 생각이 났다. 뷰엉이랑 같이 문방구에 가서 공기를 사왔다. 보이차를 누가 내려올지를 걸고 공기놀이를 질리도록 했다.
  • 나는 어릴 때부터 코를 푼 휴지를 쓰레기통에 던져서 넣는 것을 좋아한다. 이 얘기를 들은 뷰엉이는 신혼 살림을 마련할 때 내가 코 푼 휴지를 슛 할 수 있도록 뚜껑이 없는 쓰레기통을 골라서 거실에 놓아 주었다. 내가 코 푼 휴지를 던질 때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며 실패 시에는 세 번까지 시도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
  • 내가 낮잠을 자다가 꿈에서 빠삐코를 먹는 꿈을 꿨다. 옆에 있는 뷰엉이에게 빠삐코가 먹고 싶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잠을 깼더니 그 사이에 뷰엉이가 수퍼에 가서 빠삐코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 내가 소니 A7R2를 지르고, 90매크로 렌즈에 눈독을 들이고 있을 때 뷰엉이가 숨겨뒀던 비상금 170만원을 주면서 렌즈를 사라고 했다.
  • 뷰엉이는 매일 자기 전에 등을 긁어 준다. 가끔은 너무 많이 긁어줘서 뷰엉이 손톱이 닳아 긁어도 시원하지 않는 지경까지 된다.
  •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남편을 만난 뷰엉이는 프라하에 신혼여행을 갔을 때 30킬로 정도 되는 거리를 나와 함께 걸어 다녔다. 체력이 그리 좋지 않은 뷰엉이가 프라하성 전체를 돌아다닌 것이다.
  • 뷰엉이는 주말마다 나와 함께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한다. 처음에는 나 때문에 보기 시작했지만, 요즘에는 나보다 더 신경써서 챙겨본다. 경기가 없는 주말에는 아쉬워 하고, 내가 시애틀에 간 동안 혼자서 개막전을 챙겨보기도 했다. 요즘에는 경기 주심의 성향까지 파악해, ‘그나마 프렌드 주심이 나은데…’ 같은 대사도 내뱉는다.
  • 내가 등에 담이 걸린 적이 있었다. 뷰엉이는 담을 풀어 주기 위해 엄청 오랜 시간 내 등을 안마했다. 등의 담은 풀렸지만, 그 다음날 나는 안구통증과 두통으로 회사에서 조퇴를 해야 했다.
  • 프라하에 갔을 때 메모리 리더기가 고장이 났다. 저녁 8시가 가까워 오는데 들렀던 2~3개의 상점에서 CF메모리 리더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뷰엉이가 용기를 북돋아 줘서 나는 다시 구글맵으로 프라하에서 가장 큰 전자제품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둘은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게로 찾아가 메모리 리더를 구매할 수 있었다.
  • 평생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사는 나를 위해 뷰엉이는 내가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닭가슴살 샐러드, 도토리묵 무침 같은 다이어트식을 준비해 준다.
  • 결혼 후 지금까지 뷰엉이는 언제나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같이 일어난다. 내 운동복과 안경을 챙겨주고, 충전된 타블렛도 가방에 넣어준다. 그리고는 탕콩이와 함께 문 앞에서 항상 배웅해 준다.
  • 내가 주말에 스타크래프트를 하거나 풋볼매니저를 할 때 뷰엉이는 한 번도 잔소리를 한 적도 없다. 게임을 하는게 내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되는걸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권장한다고 한다.때때로 내가 이긴 게임의 리플레이를 같이 보며 설명을 들어줘서 내 승리의 자뻑을 배가 시켜준다. 
  • 뷰엉이는 날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내가 잘못했다고 비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 겨울에 뷰엉이가 나를 위해 회를 포장해 온 적이 있었는데, 트렁크에 넣을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 조수석에 회를 놓았다. 그런데 회의 신선도가 떨어질까봐 겨울에 에어컨을 켜도 왔다고 한다.
  • 뷰엉이는 내가 화가 나서 말을 하는 경우 못들은 척 하고 다른 주제로 말을 돌리는 기술을 쓴다. 뻔히 보이는 수법이지만 꽤나 효과가 좋다. 정말로 진지하게 따지고 들어야 하는 주제가 아닌 다음에야 뷰엉이가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려 버리면 나도 굳이 화나는 주제에 대해 계속 파고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뷰엉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딸을 낳아 주었다.

위의 수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뷰엉이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언제나 진지하게 호응해 준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가치있게 여겨준다. 내가 뭔가 고가의 제품을 사겠다고 하면 뷰엉이는 한 번도 사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내 자율성을 인정해 주니 오히려 내가 다시 한 번 구매를 미루고 더 생각을 해서 안 사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의견 충돌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뷰엉이는 언제나 먼저 나를 안아준다. 뷰엉이는 소중한 사람끼리 잠시라도 나쁜 분위기로 시간을 낭비하는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날 사랑해주고 최고라고 말해주는 뷰엉이 덕분에 차갑던 내 마음도 많이 따뜻해졌다. 인간관계에 별 미련이 없었는데, 뷰엉이는 나에게 이 세상에 오래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다. 뷰엉이도 원래 50살까지만 살 생각이었다가 나와 결혼하고 100살까지 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나는 105살까지 살다가 뷰엉이랑 같은날 죽기로 합의를 했다. 날이 갈수록 사랑이 깊어지는 우리 가족. 세상에 천생연분, 소울메이트는 존재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