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는 쉐프들이 게스트의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2016년 출연했던 쉐프 중 몇 명이 나가고, 2017년에 새로운 쉐프들이 들어왔다. 냉부에 출연하는 쉐프들 중 특이한 캐릭터가 하나 있다. 김풍은 웹툰 작가라는 경력을 가지고, 나머지 7명의 쉐프와 당당하게 요리 솜씨를 겨룬다. 게스트가 요리를 독자적으로 평가하고, 때때로 김풍이 프로 쉐프에게 승리를 한다는 점이 냉부가 예능임을 다시 한 번 말해준다. 김풍은 전문 쉐프가 아니면서 그 가운데서 승부를 겨룬다는 점 뿐 아니라, 승부를 겨루는 중에 주눅이 절대 들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눈에 띈다. 특히나 최현석 쉐프를 과소평가 하며 독설을 퍼붓는 것이 딱히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의아스럽기도 하다.

쟁쟁한 쉐프들 사이에서 김풍은 어떻게 주눅 들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었을까. 기본적으로는 김풍이 냉부에 오래 출연하며 다른 출연자들과 친해진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지나온 시간만으로는 김풍의 캐릭터를 설명하지 못한다. 2017년부터 새로 합류한 주배안 쉐프는 중식 전문 쉐프이다. 냉부에서는 중식으로 유명한 이연복 쉐프가 활약을 하고 있었다. 주배안 쉐프는 대선배인 이연복 쉐프와 대결을 펼치면서 각오를 묻는 질문에, ‘냉부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미리 대본에 있었던 말이겠지만, 대선배를 도발하는 대사를 내뱉은 후에 주배안 쉐프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때 화면에 잡힌 김풍은 ‘잘한다!’라고 외치며, 주배안 쉐프의 도발을 응원했다. 김풍은 이연복 쉐프에게 그 정도의 도발을 하는 것을 전혀 어려워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김풍이 직설적인 도발이나 독설을 어려워 하지 않듯이, 다른 출연자들이 그런 김풍의 언행을 불쾌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풍은 기대 수준 관리를 제대로 해냈다. 기대 수준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대하는 정도를 말한다. 김풍 정도의 무례함은 김풍이라면 으레 그 정도는 할 것이라고 모두가 기대하고 있으므로, 김풍의 언행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정도의 기대 수준을 만들어 낸 것은 김풍의 능력이다. 기대 수준 관리라는 거창한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우리는 기대 수준 관리가 중요하며, 그것의 관리 정도에 따라 편하게 살 수도 있고 불편하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을 감으로 알고 있다.

회사에서도 기대수준을 관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평소에 말수도 적고 머뭇거리던 사람이 화를 참지 못하고 싫은 소리를 한 번 하면, 그 사람은 소심하고 신경질 적인 사람으로 인식된다. 반면,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라면, 싫은 의견을 직설적으로 말하더라도 사람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거나 그럴법한 의견이라고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내가 신입사원으로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 금요일에 정시 퇴근을 하려는데, 차장 한 명이 ‘야, 어디 가?’라고 물었다. 나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운동하러 갑니다.’하고 답했다. 차장은 다시, ‘갔다가 다시 올꺼야?’라고 물었다. 나는 씩 웃으며, ‘주말 잘 보내십시오’라고 회사를 나섰다. 이후에도 나는 24층 칼퇴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내가 정시 퇴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때때로 7시쯤 남아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서 남는거냐고 물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사람들의 기대 수준을 조정했다. 그렇게 5년 동안 정시 퇴근을 했지만, 나는 평가나 인간 관계에서 어떠한 피해도 받지 않았다.

기대 수준의 관리는 내 이익을 챙기기 위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수준의 기대 수준을 설정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절대적이다. 잘못된 지시에 대해, 또는 자신의 역량에 무리가 따르는 요구에 대해서 거절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거절이 쌓여감에 따라 상호 간의 적정 선을 찾아낼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서로 이익이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기대 수준 관리를 위해서는 어렵고 복잡한 계산은 필요하지 않다. 나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자연히 적정한 기대 수준이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