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위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관심에 대한 갈구를 하는 사람을 ‘관심종자’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예전에 진정한 자아란 무엇일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내가 만들어 가는 나의 내면이 완성된 것이 진정한 자아일까, 아니면 그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내 자아일까. 내 자아는 본질적으로 내 안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지만, 외부의 평가가 없이는 표현되지 않으므로 외부의 관점 또한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갈구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생성한 자아를 외부로 드러내고, 외부의 평가와 자신의 생각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과정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이 느끼는 자아와 외부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달라 인지부조화가 발생하는 경우 개인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에게 보내는 타인의 관심은 자신을 더 알아가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주려는 노력의 시작이 바로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옛날부터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 제갈량이 대기업 경영자인 조조의 진영으로 가지 않고, 스타트업 유비의 휘하로 간 것도 자신에게 떨어질 스톡옵션 역시 고려했겠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인정하고 힘을 실어 준 유비의 믿음 때문이다. ‘지음’이라는 고사가 보여주는 것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정으로 알아봐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갈구하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관심의 무대는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초기 성공은 사람을 기반으로 한 관계성과 폐쇄성에 기인한다. 초기 인터넷 사이트는 정보를 공유하는 성격이 강했다. 검색 엔진을 통해 각종 정보를 찾아보는 것이 인터넷 서비스의 초창기 모델이었다. 미니홈피는 정보 위주가 아닌 사람이 위주가 되는 서비스였다. 미니홈피를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며, 그 사람의 지인들과 네트워크를 구성(관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끼리’만 볼 수 있는 글과 사진(폐쇄성)들이 미니홈피의 정체성이었다.

왜 미니홈피는 사라지고, 페이스북이 온라인 세계를 점령했을까. 나는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한다. 싸이월드가 가지고 있던 관계성은 유지된 채로 범주가 세계로 확장(scale-up)되었고, 폐쇄적인 서비스는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규모의 확장과 개방성이 성공요인이 된 것은, 이 특성으로 인해 관심을 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더 넓고 손쉽게 뻗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슬픈일이나 고민거리는 쉽게 드러내지 않으며, 소규모의 친한 사람들과 나누려 한다. 반면 기쁜 일이나 자랑거리는 더 쉽게 드러낸다. 전세계가 연결된 페이스북에 왜 친구들의 잘사는 이야기만 들리는지 이해가 된다.

상호성의 원칙

규모의 확장과 개방성을 가진 플랫폼이 페이스북의 성공을 만든 한 축이라면, 나머의 축은 서비스 요소 중 ‘좋아요’ 기능이다. 플랫폼은 사람들이 관심을 갈구할 수 있도록 글과 사진을 올릴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 주었다면, ‘좋아요’를 할 수 있는 서비스는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준 것이다. 로버트 치알디니가 쓴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는 상호성의 원칙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가 호혜적이어 하기 때문에, 사람은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으면 부채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갚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호의는 굳이 클 필요가 없으며, 상대가 원하지 않는 호의라 해도 충분히 부채의식을 줄 수 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는 굉장한 호의다. 관심을 갈구하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수백명의 페이스북 친구 중 자신의 글에 ‘좋아요’를 자주 눌러주는 사람은 반드시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쓴 글을 보게 된다면, 딱히 공감가지 않는 내용이라도 ‘좋아요’를 누르는 경우도 종종 생길 것이다.

값 싼 관심 한 조각

페이스북은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과 관심을 주는 사람을 하나의 무대로 모아줌으로써 성장했다. 관심을 주는 사람 역시 관심을 받고 싶어 그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면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속적으로 ‘좋아요’를 주었음에도 한 번도 자신에게 ‘좋아요’를 보답하지 않은 사람을 친구에서 삭제하는 경우도 있다하니, 분명 ‘좋아요’는 서로 주고 받는 부채같은 것이리라. ‘좋아요’가 이렇게 활성화 된 것은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좋아요’ 이전에는 답글 문화가 있었다. 어떤 서비스에서는 최소한 10자 이상 입력하도록 제한을 두기도 한다. 값 싼 관심을 뿌리는데 10자 이상을 입력하는 것도 가끔은 필요 이상 힘이 든 일이다. ‘오늘 운전 조심하세요’ 같은 보험사 스팸이 아니라면, 자신의 뇌에서 문장을 생성해내는 것은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다. 그런데 ‘좋아요’는 한 번의 클릭만으로 자신의 관심을 보여줄 수 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자신의 관심을 보여주며, 상대에게 부채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나는 정말 관심있는 내용이거나, 많이 공감이 가거나, 아니면 정말 친분이 있는 사람에 대한 표현이 아니면 좋아요를 거의 날리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나는 정보의 생산자이지, 남들의 정보를 소비하며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반면 나의 글에도 ‘좋아요’를 주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그 ‘좋아요’가 정말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글을 올린지 1초 만에 ‘좋아요’가 올라오는 경우 무슨 일인가 싶다. 그 사람에게는 글의 내용이 아니라 내가 글을 올렸다는 행위 자체가 좋은 모양이다. 내 블로그에 글을 쓰고 페이스북으로 링크를 걸어두면, 좋아요가 10개 있는데 실제 글 조회수는 2회인 경우도 있다. 이 역시 글을 읽지도 않고 날리는 ‘좋아요’다. 관심을 주고 받는 페이스북 세상에서 이런 무분별한 ‘좋아요’가 나는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