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가득한 세상

어디에나 꼰대는 있고, 어디에나 꼰대는 없다

누구나 꼰대를 싫어하고, 자신은 꼰대가 아니라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나 꼰대는 존재한다. 사회에서의 꼰대는 표면적인 특성을 이용해 우위를 점하려는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나이를 빌미로 꼰대짓을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1. 나이가 많다는 것이 그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2. 나이가 많다고 나이 어린 사람에게 함부로 할 권리는 없다.

이는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우리나라의 이상한 존대말 문화부터 손을 대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한 살 적은 사람에게 말을 놓는 것을 당연시 하는 풍조는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좋게 봐줄 수가 없다. 애초에 출생시점으로 존대와 하대가 갈리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12월생과 다음해 1월생의 출생자의 경우 한 달 차이가 나는 상황임에도 형, 동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존대와 하대문화가 얼마나 대화의 자유로움을 해치는지, 나아가 의사소통의 비용을 얼마나 증가시키는지는 따로 기회가 되면 한 번 글을 써볼까 한다. 품위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상대의 나이가 어리다고 하대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고 욕을 먹는 사람은 젊어서도 욕을 먹던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바른 생각을 하고 산 사람은, 품위를 가진 노인이 된다.

회사에서의 권위란

회사에서 리더가 일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하다. 리더의 권위는 보통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로는 공식적으로 회사에서 부여되는 권위이다. 공식적인 권위 중 가장 표면적인 것은 직급에 의한 권위이다. 회사에서는 직급에 따라 직원이 그 정도의 업무능력이 있다고 가정한다. 과장이 대리나 사원을 지도할 수 있고 업무를 지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부서장이 가지는 결재 권한이나 평가 권한 역시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부여받는 권위이다. 대부분의 리더는 이 공식적인 권위를 사용하여 상황을 통제하려 한다. 다음으로는 리더의 전문성에서 나오는 권위가 있다.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실무 경험이 많이 쌓이고, 그런 경험을 통해 리더는 전문성을 가진다.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전문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리더는 권위를 가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간적인 매력에서 나오는 권위가 있다. 자신이 맡았던 일에 책임을 지고, 부서원들을 배려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자연히 리더를 따르게 된다. 세 가지 종류의 권위중 공식적인 권위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고, 존경을 받는 리더는 자신의 전문성과 인간적인 매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

꼰대의 전형을 보여주는 개콘의 ‘불상사’

난 내 권위를 누릴꼰~~대~~

회사에서 부여받은 공식적인 권위는 가장 꼰대와 가까이 있다. 공식적인 권위는 반드시 필요한 권위이지만, 날카로운 칼처럼 잘 사용해야 한다. 공식적인 권위를 사용할 때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점은, 이것을 스스로 드러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권위는 리더 스스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자연히 구성원들이 느끼게 된다. 구성원들은 휴가를 신청하고 결재를 기다릴 때, 평가 시즌이 되어 평가면담을 할 때 리더의의 공식적인 권위를 자연히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 권위를 스스로 과시하고 드러내는 리더들이 많다. 다시 말하면 이런 리더는 자신의 전문성과 인간적인 매력으로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부여받은 공식적인 권위에 더 기대는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때때로 농담이라는 형태로 행해진다.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에게 ‘어? 일찍 퇴근하네? 요즘 일이 없나봐?’라는 소리를 하거나, 휴가 결재를 올린 구성원에게 웃으면서, ‘나, 결재 안할껀데?’라는 소리를 하거나, 평가 시즌이 가까워진 시점에, ‘우리 일 열심히 해야하지 않겠어? 평가 시즌도 다가오고…’ 등의 이야기를 농담처럼 던진다. 분명히 해두자. 이건 농담이 아니다. 농담은 서로가 즐거운 경우만 성립한다. 리더가 시덥지 않게 실실 웃으며 하는 저런 이야기들은 농담이 아닌 공격이다.

꼰대를 권하는 사회

우리 사회는 꼰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역설적으로 꼰대가 되기를 권한다. 사회가 꼰대를 권한다고 한 이유는 모두가 그것을 당연시 하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재미있지도 않은 꼰대에 대한 희화화들이다. 라디오스타에 이경규가 나온 편을 보고 나는 무척이나 불편했다. 이경규와 네 제자들이라는 컨셉으로 진행된 방송에서는 이경규와 이윤석, 윤형빈, 유재환, 한철우가 출연했다. 이경규가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버럭버럭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묘사되었고, 나머지 네 명이 신하처럼 이경규에게 쩔쩔 매는 것 역시 당연하게 그려졌다. 이경규에게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는 그들이기에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겠지만, 시청자들이 굳이 그들의 주종관계를 봐야할 이유는 없으며, 그것이 당연시 되는 것은 더더욱 안되는 것이다.

최근 정관장 홍삼정 광고 역시 꼰대를 당연시 하고 있다. 금요일에 모두가 퇴근을 하려는데, 상사가 야근을 한다고 하니 나가려는 직원들이 부랴부랴 가방을 다시 놓고 같이 야근을 한다는 내용이다. 꼰대와 야근이 당연시 되는 문화를 풍자하고 공감을 얻으려는 의도는 충분히 알겠다. 그러나 희화화와 공감이라는 이유로 나쁜 문화를 당연하다는 듯이 보여주는 광고 역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노예는 스스로가 노예임을 자각할 때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꼰대가 지배하는 사회가 당연하다는 인식이 우리의 무의식을 계속해서 지배한다면, 우리는 자조하며 사는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