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호아킨 피닉스, 에이미 아담스, 루니 마라, 스칼렛 요한슨
개봉
2013 미국

 

영화를 개봉한지 한참 후에야 보게 된 이유는 순전히 이 영화의 포스터 때문이었다. 이 영화의 포스터만으로는 딱히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일단 포스터에 나오는 주인공의 얼굴이 뭔가 찌질해 보였고 – 뭔가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필요없는 근심을 하기 좋을 것 같다는 점에서의 느낌인데 어쩌면 나의 모습이 보여 그랬을지도 모른다. 쓸데없이 붉은 톤에 찌질한 주인공의 얼굴만 덩그러니 있는 포스터라니, 더군다나 제목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서툰 당신을 안아줄 이름’이라는 부가 설명은 이 영화를 ‘찌질이가 등장하는 멜로영화’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연히 영화를 본 후에 느낌은, 이 영화는 포스터와 제목 때문에 과소평가 받은 영화라는 것이다. 감상 후에 본 포스터는 영화를 참 잘 설명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붉은 배경과 주인공의 붉은 셔츠는 거의 일체가 되어 단순한 느낌을 주는데, 조금은 밝고 인위적인 붉은 색은 영화에서 메인이 되는 디지털 라이프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정 가운데 위치한 주인공의 근심에 찬 얼굴과 붉은색의 배경과 보색을 이루는 녹색 눈동자 역시 디지털 세계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을 잃지 않은 주인공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제목 역시 사람인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사만사’의 정체성을 한 개의 대명사로 잘 함축시키고 있다.

화는 주인공이 새로운 운영체제를 설치하면서 흥미로워진다. 이 운영체제는 ‘사만사’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이것은 이름이라기보다는 ID 같은 느낌을 가진다. 이름과 ID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그것을 부여한 주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붙여준 이름은 수동적인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 평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ID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정의하는 자신의 정체성이며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서 두 번째 이름같은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운영체제는 ‘직관’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과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하며 스스로 성장해 나간다는 점에서 인간의 정신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는 토탈리콜에서도 다룬 주제였는데, 만약 가상 현실이 너무나도 완벽해져 현실과 구별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되었을 때 현실을 어떤 의미이며 현실과 가상은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인지는 장자가 ‘호접지몽’을 꾸던 시절부터 인류가 끊임없이 떠올렸던 흥미로운 주제임에 틀림이 없다.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된 가상의 지성이 정말 사람의 정신을 모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실제 인간의 정신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다. 최근 들어 사람 역시 유전자의 프로그래밍 대로 자유의지가 없이 행동한다는 과학적 사실에 점차 동감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정말 고난이도로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과 사람의 정신은 완벽히 같은 것 아닐까.

깐 동안의 대화로 ‘사만사’는 주인공의 호감을 얻게 되는데, 그 과정이 꽤나 흥미로운 점은 이 방식이 처음 사람을 만날 때 적용되는 일반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만사’는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인공의 일들에 관심이 있으며 주인공 중심으로 주제를 풀어간다. 이 때문에 나는 나만을 위해서 대화를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정말 마음의 위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기계라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주로 생각하고 서로의 관계에서 ‘Give&Take’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개인적이고 약간은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택한 것 또한, 타인들은 나의 절박함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난 후였다. 그런 점에서 나의 입장을 항상 이해해 주는 완벽한 지성이라면 너무나 환상적인 친구가 아닐까 생각을 했으나, 영화는 후반부에서 나의 이런 생각을 완전히 깨뜨려 버린다.

 주인공을 철저하게 애정에 찬 모습으로 챙겨주는 ‘사만사’에게 주인공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은 과연 누구를 사랑하는 것일까. ‘사만사’는 물리적 실체(몸)가 없으며, 실제 사람도 아니다(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사만사’에게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찾을 수가 없어서 나는 점차 당혹감을 느꼈다. 주인공은 ‘사만사’를 진심을 사랑하지만 ‘사만사’는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거부감을 느끼고, 자신이 느끼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조차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내가 느끼는 당혹감과 주인공이 느끼는 당혹감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독은 이런 혼란스런 감정을 의도했다는 듯이 갑작스레 이 시점에 ‘사만사’를 사라지게 한다. ‘Operating System is not found’라는 메시지는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갑자기 사라져 버린 느낌이 들어 가슴이 덜컥했다. 시스템 업데이트를 위해 잠시 전원을 종료했다는 말로 ‘사만사’는 돌아오는데, 사라졌던 연인을 찾아낸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던건 사랑의 대상이 무엇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그 감정이 분명 사랑이었다는 것을 주인공과 내가 동시에 느끼는 장면이었다. ‘사만사’가 다시 돌아온 후 주인공은 잠시 혼란에 빠지고, 불현듯 ‘사만사’가 사람이 아님을 자각한다. 사랑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던 주인공은 순간 ‘사만사’에게 지금 대화를 주인공과만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사만사’는 그 순간에도 여러 명과 대화를 하고 있으며, 그것은 수천 명에 이른다고 답한다. 놀라운 연산 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멀티 스레드를 사용해 동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그 뒤의 문답은 꽤나 충격적이다. 주인공은 ‘사만사’에게 사랑하는 사람도 여러 명인지를 묻고 ‘사만사’는 641명이라고 답한다. 이러한 답이 충격적인 이유는 영화를 보는 동안 ‘사만사’가 인격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만사’는 자신이 몇 명을 사랑하든 주인공을 사랑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초반에서는 ‘사랑의 대상’에 대한 화두를 던진 감독은, 여기서 ‘사랑의 독점과 희소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보통 인간들이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정도를 100이라 봤을 때, ‘사만사’는 마음의 한계가 없으니 100의 사랑을 천 명에게 주든 만 명에게 주든 절대적인 사랑의 양은 변하지 않는다 생각할 수도 있으나 주인공이 그토록 충격을 받은 이유는 사랑이 독점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나 역시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아는 오빠들과 연락을 서슴치 않는 여자들에게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반에 느꼈던 완벽한 지적 파트너에 대한 나의 선망은 결국 영화 후반에 가서 불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는데, ‘사만사’는 점차 인간의 마음과 가까워지고, 자연히 욕망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감정에 충실하다는 것은 그만큼 진실해 진다는 것이고, 서로가 감정에 충실해 질 때 서로 간의 분쟁은 당연한 것임을 보여준다. 연애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판타지 같은 해답을 제시할 것 같았던 이 영화는 결국은 그런 유토피아는 없음을 말한다. 기계조차도 그런 관계는 만족시켜 줄 수 없음을 최대한 인간 같은 기계를 등장시켜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상투적이게도 스스로의 성숙과 서로에 대한 이해만이 진지한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다는 주제를 색조를 뺀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영상에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특이한 소재로 담아낸 웰메이드 영화다.